독일을 이해하자(41)
좌파당(Die Linke)

독일은 ‘정당국가’라고 칭해질 정도로 정당의 법적·정치적 위상이 높은 국가이다. 이러한 정당의 높은 위상은 독일 민주주의와 나치즘의 역사, 그리고 선거와 국가체제 등 제도적 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낳은 결과이다. 세계에서 정당정치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독일정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독일 기본법상의 정당과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연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을 창당 순서로 살펴본다.

좌파당(Die Linke)

2007년 창당한 좌파당(Die Linke)은 구 동독의 지배정당 사회주의통일당(SED)을 전신으로 하는 민주사회당(PDS), 그리고 사민당(SPD)에서 분당 한 좌파세력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등 두 정당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 통일 이후 구 사회주의통일당 세력은 1990년 민주사회당을 창당 하였다. 민주사회당은 다수의 구 동독 지역 주정부 의회선거에서 20% 전 후의 지지를 동원하여 주정부 연정에 참여함으로써 구 동독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으로 성장하였다. ‘선거대안’은 ‘제3의 길’ 노선에 기반한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하면서 2005년 분당한 사민주의자들과 노동조합 세력이 창당한 정당이다.

양 정당의 2007년 좌파당 통합은 두 가지 독일 정당체제의 변동을 시사한다. 첫 번째, 좌파 스펙트럼에 사민당보다 더 좌파적인 좌파당이 창당됨으로써 독일 정당체제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보다 양극화되었다. 두 번째, 그 동안 민주사회당 세력이 구 동독지역에서만 확장됨으로써 구동독과 구서독 지역 간의 정당체제 성격이 상이하게 전개되었으나 좌파당 통합은 양 지역 간 정당체제의 수렴 현상을 시사한다.

좌파당의 창당과정

독일총일 직전인 1989년 12월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은 이제까지의 ‘지도이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1990년 2월, “민주사회당” (Partei des Demokratischen Sozialismus, 약칭 PDS, 민사당)을 출범시켰다.

1990년에 전 독일에서 실시된 연방선거에서, 민사당은 그레고르 기지를 포함한 17명의 의원이 원내에 진출하게 되었고, 1994년의 연방 선거에서는 4.4% 득표, 1998년에는 전국적으로 5.1%를 득표해, 37명의 의원들을 원내에 진입시키며, 5% 조항을 충족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 정당으로서 완전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민사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동독의 선거구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그러나 서독 지역에서의 당세는 여전히 미약했다.

한편 2005년 7월 사회민주당 탈당파와 노조를 중심으로 형성된, 좌파 성향인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 (WASG)”이 출범하였다.

민사당과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은 협상을 거쳐, 우선 2005년의 연방선거에서의 선거연합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는 2007년을 기해 양 당이 합당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의 연방선거에서 양 당은 동일한 지역구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에, 전 사민당 대표였던 오스카어 라퐁텐을 포함해 모든 선거대안의 후보들을 민주사회당의 정당선거 명부에 등재하기로 했다. 두 당 간의 새로운 관계를 상징하기 위해, 민주사회당은 이름을 ‘좌파당/민주사회당’으로 바꾸는 한편 여전히 민주사회당에 대해 불신의 벽이 높은 서독 일부 지역에서는 새 명칭에서 ‘민사당’을 빼기로 결정했다.

2005년의 연방선거에서 좌파당은 8.7%를 획득해 53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며 원내 제4당의 자리에 올랐다. ‘좌파당/민주사회당’과 ‘선거연대’ 사이의 통합 협상은 계속되다가 마침내 2007년 3월 27일, 합의에 도달했다. 좌파당은 6월 16일, 베를린에서 창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연다.

좌파당 약사

좌파당의 이러한 상승 추세는 “수퍼 선거년”인 2009년에도 이어졌다.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 좌파당은 7.5%를 획득해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1994년 4.7%, 1999년 5.8%, 2004년 6.1%) 연방 내 6개주에서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도 좌파당은 높은 지지를 얻었다. 구체적으로, 튀링겐주 선거와 헤센주 선거에서는 약진했으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의석을 획득했다. 특히 자를란트주 선거에서는 19.2%를 획득해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에 이어 주 의회 내 제3당이 되는 기염을 토해, 서독 진영에서 처음으로 당세를 과시했다.

2009년 9월 27일에 치러진 연방선거에서 보인 사민당(SPD)의 참패는 좌파당에게는 큰 기회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좌파당은 정당득표에서 이전에 비해 높은 11.9%를 얻었으며, 의석수도 54석에서 76석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좌파당이 원내 제2야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은 8.6 %를 얻어 총 631석 중에서 좌파당은 64석을 차지하였다. 2013년 연방선거에서 적적녹연정을 이루었다면 연립여당이 되어 진보정당의 집권이 가능했지만 SPD의 거부로 무산이 되었다. 그러나 2014년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1당이 되어, 적적녹 연정을 이뤄 사상 처음으로 주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2017년 연방선거에서 9.2%를 득표하여 독일 연방하원의 총 의석수 709석 중 69석을 차지하여, 원내 5당이 되었다.

좌파당의 정강 및 이념으로는 반자본주의와 부의 분배 강조, 미국의 대항자로서 EU의 국제적 역할 확대 기대, 유럽헌법 채택 찬성, 군축 지지, 해외 파병 거부, NATO 해체 요구 등을 들 수 있다. 2020년말 기준으로 약 5만9천여명의 당원을 지니고 있다.


교포신문사는 독자들의 독일이해를 돕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교육등에 관해 ‘독일을 이해하자’라는 연재란을 신설하였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1213호 29면, 2021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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