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45)

동서독 정당통합(8)

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정당체제의 변모 ⑧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1990년 10월 3일 통일될 때까지의 독일통일 과정에서 동서독의 정당통합은 실질적으로 1990년 3월 동독 최초의 인민회의 자유선거에서 시작해 1990년 12월 통일 이후 첫 연방선거 기간에 이루어졌다.

동서독 정당의 통합 4

동서독 정당 통합의 특징

1989년 여름 이후 평화혁명을 거쳐 1990년 통일에 이르기까지 1년 정도의 짧은 기간은 동독의 정당체계가 사회주의통일당 일당에 의해 지배되는 비경쟁적 체계에서 민주적인 다원주의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통일 된 독일의 정당 체계로 단일화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러한 변화는 네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첫 번째 단계는 동독에서 사회주의통일당(SED)에 의한 일당 지배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인한 위기라 할 수 있다.

이 위기의 출발점은 1989년 동독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의 부정선거와 동독주민들의 동독탈출에서 시작되어 동독 국내에서 다양한 이해를 갖은 사람들이 정치세력화하며 정당 또한 새롭게 자신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시기로 대체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전까지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의 첫 자유선거가 실시되기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각 정당들이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사회주의통일당과 명확한 거리를 두고 새롭게 자신들의 정 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통일당은 사회주의통일당-민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이후 한 번 더 민사당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주의적인 사회주의 정당이 아닌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 신 인도적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였다.

동독 기민당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적 노선과 비사회주의적 노선 간의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또한 동독 내 각 정당과 사회단체가 원탁회를 중심으로 모여 스스로 정부와 의회의 기능을 수행한 시기이다.

세 번째 단계는 동독에서 3월 18일 인민의회 선거를 계기로 서독의 정당 들이 동독에서 형성되는 정당체계에 영향을 강화하면서 의회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또한 동독의 정당과 시민운동 조직이 정 치적 입장과 조직의 목적 및 활동 방식에서 점차 다원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다원화된 동독의 정당과 저항 운동 조직들은 점차 정치력을 상실하고 서독 정당들의 영향 아래 재편·집중화되기 시작했다. 3월의 인민의회 선거에 서독의 정당들이 개입함으로써 동독의 인민의회 선거는 사실 상 서독의 정당 정치로 변하여 서독 정당들의 자금과 조직력, 캠페인 전략과 유명 정치인들의 명성에 의해 지배되었다. 서독 정당들, 예를 들어 기민당이나 자민당은 동독의 자매정당들이 위성정당으로서 활약한 것에 대해 계속적으로 의구심을 갖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 주민들의 통일에 대 한 의지가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동독의 선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동독 시민들의 통일에 대한 입장은 더욱 분명해져서 3월 18일 인민의회 선거는 내용 면에서 서독 마르크를 동독으로 유입하는, 즉 화폐 통합이 주요 이슈가 되었는데, 지지도에서 열세를 면하지 못하던 기민-기사련의 콜 수상은 선 거 5주 전 화폐 통합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선거 사흘 전 화폐 통합 시 동서독 마르크의 교환율 1:1을 발표하여 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2월 초 약 과반의 지지를 받던 사민당은 21.9%를 득표한 반면, 보수 연합 세력인 독일연합(Allianz für Deutschland: AfD)은 48%의 지지를 얻어 이후 기 민·기사련은 통일 정책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사회당(PDS) 16.4%, 자유민주동맹(BDF) 5.3%, 동맹90 2.9%, 독일민주농민당 2.0%를 득 표했다.

네 번째 단계는 1990년 인민의회 선거 이후 11월 통일 후 처음 맞는 연방 의회 선거를 앞두고 서독 정당 체계가 동독의 정당 체계를 흡수, 통합하면 서 단일한 하나의 정당 체계로 되는 시기이다. 인민의회 선거 후 구성된 대연정 정부가 4월 12일의 연정 합의에서 서독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으로 편입되는 방식으로 통일하기로 합의하고 5월 21일 화폐·경제·사회 통합 조 약을 체결한 이후, 동서독 정당들의 통합을 위한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0년 8~10월 사이에 자민당, 사민당, 기민·기사련의 순서로 통합 당 대회가 열렸으며, 구동독의 당 조직은 구서독 정당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통합되었다. 통일되기 전에 녹색당을 제외한 동서독 정당의 통일이 완결되었다.

위의 네 가지 단계에서 나타나는 동서독 정당통합의 특징적인 요소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베를린 장벽의 붕괴 전후 격변기를 거치면 서 동독에서는 서독의 지원 없이 자체적인 선거를 준비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서독 정당 후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과연 동독 사회에 민주주의적인 정당체 계가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하는 점이다.

둘째 동독의 정당들은 스스로 위성정당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사회주의통일당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필요한 당내 민주주의적 개혁 등에 있어서는 미비한 상황이었다. 셋째, 동독 평화혁명에 주역들이었던 사회단체들은 사회주의통일당에 대한 비판에는 명확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의 제시가 부족하였고 정치적 경험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서독의 정당과 이합집산에 머무르는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동서독의 정당통합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서독 정당들의 역할이 라 할 수 있다. 서독 정당들은 동독의 정당체계 확립에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다른 한편 동독 정당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독일의 통일이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이듯이 정당 또한 동독의 정당, 사회단체들이 서독의 정당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결국 동독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의 부재로 연결되고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1221호 31면, 2021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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