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30년 (46)
동서독 정당통합(9)

통일 후 동서독 정당지형 ➀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공식적으로 통일된 후 동서독 정당 간의 통합을 가속화시킨 사건은 1990년 12월 2일 전독일 연방의회 선거의 확정이었다.

통일 후 연방의회 선거에서 구 동독지역에도 서독 선거법이 적용되기로 합의되면서 동서독 정당 간 통합이 가속화되었고 이를 통해 정치적 지형의 변화가 눈에 띄게 촉발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연방하원 선거 결과 구 서독과 구 동독지역 간의 정당지지는 통일 전에 비해 크게 변모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구 동독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지역성 요인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재편 작업과 이에 적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이데올로기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정당 지형의 변화: 연방하원 선거 결과

통일 후 정당 지형의 전반적인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1990년부터 2009년 까지 연방하원 선거 결과를 토대로 살펴보도록 한다. 구 동서독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통일 전 서독은 거대 양당인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을 중심으로 자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의 파트너로 참여하는 온건 다당제(1949) 혹은 양당 중심제(1953-1987)였다.

이러한 전통적인 구도는 통일 이후 구서독지역에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통일 전 동독은 사회주의통일당(SED)이 국가정당으로서 사실상 독재체제를 구축하여 다른 블록정당들은 대중 동원기제로 기능하는 비경쟁적 정당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통일 후 서독식 경쟁 정당체제 전환과정에서 사회주의통일당은 해산되어 민사당으로 재 창당되었고, 다른 블록정당 대부분은 서독의 정당에 흡수됨으로써 독일 전반에 걸쳐 구 서독 정당들과 민사당이 각축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통일독일 전체로 보면, 구 동독지역의 주민수가 전체의 약 1/5에 불과해 민사당의 점진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당체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을 중심으로 자민당과 녹색당 및 민사당이 제3당을 두고 각축하는 구 서독 정당체제와 유지되는 모양새를 띄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0년에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의 득표율이 저조해 다당제를 보였으나, 1994년 이후 양대 정당의 득표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2002년까지 양당중심제로 복귀됐다. 그러나 2005년부터 민사당뿐만 아니라 자민당과 동맹90/녹색당의 지지율이 점차

상승한 반면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의 지지율은 낮아지면서 정당의 파편화가 심해짐에 따라 다시 다당제로 전환되었다. 심지어 2009년에는 극단적 다당제 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비치고 있었다.

한편 이러한 선거결과를 구 서독지역과 구 동독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구 서독지역은 통일독일 연방 전체와 유사한 흐름을 나타내는 반면, 구동독지역에서는 여전히 변동이 심한 상황에서도 연방 전체 및 구 서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중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민사당/좌파당의 성장이다.

먼저 구 서독지역은 독일 전체와 마찬가지로 2005년 이후 기존의 양당중심제에서 다당제로 전환했으며, 구 동독지역은 민사당의 급성장을 통해 삼당제(1994, 1998, 2005)와 다당제(1990, 2002, 2009) 사이에 부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나 사민당의 분당으로 인한 사민당 지지율의 급락과 1998년 집권기의 일시적 상승을 논외로 하면 양대 정당의 점진적인 약화와 제3정당들의 강화추세가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구 동독지역에서는 통일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사민당의 지지율 이 2002년을 기점으로 꺾이고, 통일 효과의 반작용으로 기민연 지지율이 초기에 압도적 우위를 보이다가 이후 계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가 지속되었는데 2009년 선거에서 다시 상승하는 등 상당한 등락을 보였다. 반면 민사당 지지율은 2002년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으며, 동맹90/녹색당과 자민당도 구 서독지역과 달리 부침을 거듭하는 장기적 추세를 보였다.

민사당의 형성과 발전

통일 이후 치러진 연방하원 선거에서 구 동독 집권정당인 사회통일당(SED) 의 후신으로 처음 등장했던 민사당(PDS)은 약 20년 사이 괄목할 만한 발전상을 나타냈다.

1990년 연방 전체에서 2.4%를 득표하였으나 구 동독지역에서 11.1%를 차지하는 등 구 동독 정당으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좌파당으로 통합창당하면 서 참여한 2009년 선거에서는 연방 전체에서 11.9%를 그리고 구 동독지역에 서는 28.5%를 획득하는 등 강력한 정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통일 이 후 20년 사이 연방전체에서는 약 5배, 그리고 구 동독지역에서는 약 3배 가까운 괄목할 만한 지지율의 상승을 보인 것이다.

민사당은 독일통일의 와중에서 구 동독의 국가지배정당이었던 ‘사회주 의통일당(SED)’의 후신정당으로 창설되었는데 통일 직후 민사당은 당원의 급격한 감소와 선거에서의 참패 등으로 인해 당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이 시기에 정당전문가들은 물론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도 민사당이 조만간 사라지리라고 생각하였다. 즉, 1990년 12월 최초의 전체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사당은 제2투표에서 총 2.4%의 득표율( 동독지역에서는 11.1%, 서독지역에서는 0.3%)을 획득하여 연방의회에 진출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의 5% 제한 조항 완화 적용 결정으로 인해 민사당은 연방의회에 가까스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민사당은 1991년 함부르크주 의회선거에서 0.5% 득표로 참패 한 이후 서독에 뿌리내리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는데, 1991년 6월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서독에서는 단지 0.5%, 동독에서는 6.5%만이 민사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당에 대한 이러한 저조한 지지율은 당원의 급격한 감소에서도 나타나는데, 1990년 12월 민사당 당원 수는 약 28만 5천 명이었으나, 1991년 5월 에는 약 24만 명,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약 17만 3천 명으로 1년 사이에 10만 명이 감소하였다. 결론적으로 1991년 말 민사당은 일반 여론뿐만 아니 라 당 내 분위기에서도 감지되듯 붕괴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호에서는 민사당의 이후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1222호 31면, 2021년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