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5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첫째, 둘째, 셋째, 자녀의 각가 다른 언어 발달

대부분의 이중 언어 발달 연구는 한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보통 첫째 아이), 영유아 시기에서 취학 전까지의 기간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둘째 셋째의 탄생이 가정 언어 사용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동 언어 발달 연구에서 미미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그냥 연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명의 아이보다는 여러 명의 아이를 동시다발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취학 시점이 넘어가면 아이들의 발화가 길어지니 데이터 자체의 양도 많아질 뿐 아니라 분석의 자료가 너무나 방대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중언어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논리는 대부분 큰 아이의 발달에 맞추어져 있다.

이 기고문에서는 늘 첫째 아이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둘째와 셋째들의 언어 발달 과정과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첫째나 외동아이와 비교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첫째, 둘째, 셋째의 성향

심리학자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인생에서 첫째 아이가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큰 아이들은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외동아이로 자라면서, 매사에 능동적일 수 있고, 동기부여가 잘 되며 책임감이 강하고, 겁이 많은 만큼 조심스럽고, 비평적 안목을 갖게 된다고 한다.

또한 임신부터 출생 및 성장과정 동안 큰 관심과 기대를 받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의 규범에 순응하면서 자라며, 대부분 리더십이 뛰어난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둘째 아이들은 어떨까? 둘째는 자신이 막내 일 수도 있고, 셋째가 있는 경우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어서 자라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아이들의 성향을 유연하고,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고, 호기심이 많으며, 사회성이 잘 발달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논리적인 추측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이미 첫째를 키워본 경험을 둘째 아이를 키우며 사용하게 되고,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의 성공과 실패를 본보기 삼아 자란다.

집안에 셋째가 있을 경우, 둘째는, 첫째로부터 배워가는 학생의 입장과 셋째를 이끄는 선생님의 입장에 동시에 놓인다. 그렇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되어 훌륭한 협상가로 클 수도 있지만 첫째와 셋째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는 경우,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질투를 많이 느껴 부모에게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착한 아이가 되거나 지나치게 경쟁의식을 갖는 아이로 자라날 우려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둘째는, 특히 우리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첫째 보다 부모의 간섭에서 자유롭기에 삶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집안의 막내인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셋째는 자유롭고 무책임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사회에 순응하기보다는 맞서 나가는 기질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에 의해 잘못 키워지기 쉬워 한껏 응석을 부리며 듬뿍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과잉보호를 받기 때문에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막내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길을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그들 방식대로 살아가기에 때때로 첫째 둘째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한다.

노민선 작가

위에 설명한 출생 서열에 대한 아이들의 성향은 지난 40년간 학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최근에는 출생 서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이 서열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거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더 우세하다. 서열이 아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사회생활 패턴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혹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평가나 연구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이가 둘째나 셋째보다 영 유아 시절에 (나이 차이, 아이들의 성격도 고려해야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을 훨씬 더 많이 받고 일대일로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으며 첫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육아 초짜이기 때문에 큰 아이에게 더 많은 규칙과 규율을 부과하고 요구한다는 사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출생 서열별 언어 사용 환경

둘째 셋째 아이는 일단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기간이 큰 아이에 비해 짧다. 태어나서부터 (한 부모이든 양 부모이든 간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큰 아이와 달리, 둘째 셋째의 경우, 태어났을 때에 이미 큰 아이가 벌써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유치원에서 독일어를 배워와서 집에서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태어나서 이미 (혹은 한 살 두 살 경에 이미) 독일어를 접하게 되면서 순수하게 한국어만 접하는 기간이 아예 없거나 큰 아이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이중언어 중 사회 언어 (독일어)의 침투가 더 어린 시기에 시작되기에, 가정에서 사용되는 언어(한국어)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기간이 큰 아이에 비해 짧을 수밖에 없다.

또한 큰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 에너지와 기쁨을 다 써버린 부모는 둘째나 셋째 아이에게는 큰 아이에게 느꼈던 벅참이나 새로움을 같은 크기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나의 경우도 큰 아이가 말을 시작할 즈음에 찍어 놓은 비디오 파일의 숫자는 둘째 아이에 비해 훨씬 더 많다. 둘째 아이는 (미안하게도) 사실 언제부터 말을 시작했는지도 기억 못 한다 (논문을 뒤적여야 알 수 있다). 뭐든지 첫째, 첫 번째에 대한 각인이 더 크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운명적으로 둘째와 셋째의 첫 경험 (뒤집기, 말하기, 걷기 등의 시작)은 부모의 감정에 큰 아이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둘째 셋째의 모든 출발에도 큰아이와 같은 크기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모님들이 분명히 계실 것인데, 그분들께 커다란 경의를 표한다).

노민선 작가

감정뿐 아니라 부모는 큰 아이에게 적용했던 여러 가지 잣대를 둘째 셋째에게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즉 둘째 아이의 말실수에 훨씬 더 관대하고, 둘째 아이가 조금 늦게 말을 시작하더라도 첫째 아이의 경우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둘째 아이가 결국 문제없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안다.

둘째 아이가 올바르게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별 걱정 하지 않고, 틀린 말을 할 때 지적이나 수정은 오히려 첫째 아이의 몫이 된다. 예를 들어, 둘째 아이가 발음을 잘못하는 말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큰 아이는 대뜸 “엄마 얘 봐, XX도 발음 못해, 하하하…”라고 동생의 잘못된 발음을 비웃는다. 그러면 엄마는 “자꾸 놀리지 말고 네가 잘 가르쳐줘.”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또한 부모가 둘째 아이에게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가서 언니랑 놀아, 가서 형이랑 놀아” 일 것이다. 이토록 둘째와 셋째는 부모와 일대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첫째에 비해 현저히 적다.

큰 아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관심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대적으로 어눌한 둘째와 셋째의 말을 다 대변해서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둘째를 향해 “오늘 지은이는 유치원에서 뭐 먹었어?”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아이는 “오늘 지은이가 유치원에서 감자 수프를 먹었데.”라고 둘째가 답변을 생각한 겨를도 없는 사이 재빨리 대답을 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뿐만 아니라 첫째는 둘째와 셋째의 감정에 대해서도 자신이 직접 부모에게 보고한다. “엄마 지은이가 이거 재미없데. 다른 거 한데”라든지, “엄마 지은이 이거 안 먹는데” 하고 동생이 할 말을 대신하며 부모와의 일대일 소통에 끼어든다. 셋째 아이는 더하다. 부모는 셋째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조차 첫째나 둘째를 향해 “누가 막내한테 이런 말을 혹은 이런 행동을 가르쳤니?”라는 식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둘째 셋째의 이중언어 발달과 큰 아이의 영향

그럼 이중언어 환경에서 둘째나 셋째가 가지는 우세한 점은 없을까? 다행히도 있다. 둘째와 셋째의 언어 발달 연구에 참가한 부모 중에는 둘째 셋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러한 결과는 둘째 셋째 아이들이 큰 아이가 부모와 대화를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들었던 결과 덕분이다.

또 한 가지 둘째와 셋째가 이중언어에 유리한 점은 첫째에 비해 더 다양한 표현과 대화의 종류에 노출된다. 상대적으로 부모하고만 이야기하는 첫째나 외동에 비해 둘째는 부모와도 이야기하고 부모가 첫째와 이야기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배우기도 하기에 큰 아이보다 더 나은 대화 방법을 습득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둘째 셋째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말 상대가 부모 외에 형제자매까지 더하니 단어의 양이나 올바른 문법의 사용에서는 첫째에게 뒤처질 수 있으나 창의 적으로 말을 해내는 능력은 다른 능력에 비해 첫째에 많이 뒤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언어 발달의 모든 것이 이렇게 출생 순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학자들은 출생 순서가 일반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아이들의 개인적 차이, 즉 성격, 이중언어를 배우는 환경, 형제자매들의 관계와 주변과의 관계, 아이의 타고난 혹은 키워진 언어능력 자체 등의 차이가 출생순위 보다 이중언어 발달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큰 아이가 가족 소통 언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가 동생들과 한국어로 소통하기를 고집하면 동생들은 가정에서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고, 반대로 첫째가 동생과 독일어를 사용하면 동생들은 집에서 독일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점은 대부분의 연구에서 일치된 결과를 보인다.

아무리 부모가 이중언어 발전을 위해 공들이고, 아이들을 위해 애써도 모든 아이가 이중언어자가 되는데 성공할 수는 없다. 출생 순서의 우위에서 밀려 둘째와 셋째는 한국어를 사용(발화) 할 기회가 가정 내에서는 더욱 희박하다. 게다가 사회어 (독일어)에 일찍 노출되기에 구사하기 편안한 언어가 독일어가 될 확률이 더 높다.

드물긴 하지만 이중 언어 가정의 연구 중에 둘째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 (한국어)를 첫째 보다 더 잘 구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출생 순위의 우위에서 밀리더라도 아이가 이중언어를 배우고 유지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뚜렷하다면 초기에 조금 이중언어 발달이 주춤하더라도 언젠가는 균형 잡힌 이중언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씨앗이 살아 있는 한, 아이는 언젠가 자신이 원할 때, 다시 한국어를 가꾸어 나갈 것이다.

한국어를 열심히 전수하다가 부모가 좀 힘이 빠지고 쉬어가도 괜찮다. 아이는 자라면서 무엇이 중한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배워 가게 되기에…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42호 20면, 2021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