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일본해 대신 ‘번호’ 부여한다…11월 16일 국제수로기구서 결정

IHO, ‘바다에 이름 대신 식별번호’ 표준 제안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병기하는 문제가 오는 11월 16일 열리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식별번호’ 부여로 결론 날 전망이다.

IHO는 바다를 특정 지명 대신 번호로 표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 방안이 통과되면 일본은 더는 IHO 표기를 근거로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외교부와 IHO에 따르면 IHO 사무총장은 오는 11월 16일 화상으로 진행되는 제2차 총회에서 국제표준 해도(海圖)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을 위한 비공식 협의 결과를 회원국들에 브리핑한다.

IHO가 발행하는 S-23은 해도를 만들 때 지침 역할을 한다. 1929년 초판부터 1953년 제3판까지 동해를 일본해로만 표기했으며, 한국은 1997년부터 IHO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고 주장해왔다.

IHO는 이 문제에 대해 2017년 4월 열린 제1차 총회에서 관계국간 비공식 협의를 하고 그 결과를 이번에 보고하도록 했지만, 남북한과 일본은 IHO 사무총장 주재로 작년 4월과 10월에 개최한 두 차례 협의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IHO 사무총장은 바다에 지명을 부여하는 대신 ‘고유의 번호로 식별하는 체계'(a system of unique numerical identifiers)를 도입하는 방안을 양국에 제안했다.

이를 위해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정보를 담은 ‘S-130’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개발하자고 했다.

디지털화 시대에는 이름보다 숫자가 전자항해 등 지리정보체계에 활용하는 데 유용한 만큼 모든 바다에 고유 번호를 부여하자는 방안으로, 이 경우 동해나 일본해 둘 다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 방안은 2차 총회에서 안건으로 부의될 예정이며, 회원국들에도 이미 회람됐다.

IHO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S-23 개정안에 대한 회원국 의견이 대체로 긍정적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IHO 안건은 회원국 간 합의로 결정되는데 무엇보다 분쟁 당사국인 한일이 긍정적인 반응이다.

정부는 IHO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새로운 IHO 표준이 21세기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지리정보 환경에서 사용자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사무총장의 제안들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일본도 의견서에서 수로 정보를 디지털 환경에 더 적합하게 만들고자 하는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IHO 사무총장과 회원국들과 건설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등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북한도 IHO에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IHO 제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일본이 일본해라고 주장할 때 근거로 제시한 S-23을 대체할 새로운 표준이 도입되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이 약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IHO 사무총장은 기존 S-23을 앞으로도 대중에 공개하자고 제안했으며, 그 목적이 해양과 바다의 경계 표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IHO의 제안은 60년도 더 된 S-23이 더는 국제 표준이 될 수 없다는 한국 입장과 S-23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는 일본 입장을 고려함으로써 20년 넘게 지속한 한일 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새 표준이 될 S-130 개발에 적극 참여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IHO가 고유 식별번호를 도입하더라도 이는 지침일 뿐 사람들이 익숙한 바다 이름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도 각국 정부와 민간 지도업체 등을 상대로 동해 표기를 설득하는 것은 별도 문제라고 보고 관련 노력을 배가할 방침이다.

세계 지도에서 동해로 표기한 비율은 2000년대 초 약 2%에 불과했지만, 그간 정부와 민간단체 등의 노력에 힘입어 최근 조사에서는 40%를 상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초 목표였던 ‘동해 병기’를 이루지 못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여전한 일본의 영향력을 넘어서지 못한 방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식별 번호를 도입한 새로운 해도집이 나온다고 해도 일본해가 표기된 기존 S-23이 바로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일본의 입장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IHO 입장에서는 일본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한일 가운데 한쪽 편만 들어줄 수 없는 IHO가 고민 끝에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1194호 35면, 2020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