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해로 – 54회: “하나님에게 꾸어주며 사는 사람들”

호스피스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독일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파독 어르신들과 같이 고향을 떠나 나그네와 같은 삶을 시작하면서 짐을 많이 늘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선교비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뜻과 목적에 맞게 재정을 절약하며 바르게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을 섬기다 보니, 당신들이 귀하게 사용하시던 그릇들과 살림에 필요한 것을 조금씩 주셔서 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준비된 만큼 사용하시는 듯하다. 냉장고를 사지 않고 집에 비치된 작은 것으로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중간 크기의 냉장고를 장만하였더니,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존탁스 카페를 시작하게 하셨다. 지금은 이 냉장고가 존탁스 카페의 음식을 장만하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장만을 해야 하겠지만, 나그네로서의 삶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재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가진 돈이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부자들이 자기 재산의 상당한 부분을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기독교 정신이 그 바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 재물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떤 부자가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수확을 하자, 곳간을 더 크게 지어서 거기에 자기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려고 하였다. 부자는 혼잣말로 ‘여러 해 쓸 물건이 많아 쌓여 있으니 이제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가 지금까지 쌓아 둔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누가 12:16~20).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쌓아 두는 사람에 대해 경고하신 것이다.

마틴 루터는 우리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하였고, 요한 칼뱅은 어떤 사람이 부자인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두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노동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들을 연구한 막스 베버라는 학자는 열심히 노동하여 얻은 소득을 가지고,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 절제하여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이 실천한 기독교 정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최근 들어 <사단법인 해로>가 베를린을 중심으로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헌신적으로 하다 보니, 독일 교민 사회에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해로는 비영리법인으로, 수익사업보다는 후원에 의존해서 운영되는 아주 작은 기관이다. 적은 금액의 후원금이지만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을 해주셔서 점차 발전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에는 소프라노 박-모아(박덕순) 여사가 주관한 자선콘서트가 있었다. 다양한 노래와 춤, 연주 등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독일에 소개하면서,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통해 20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귀한 모임이다. 이번 행사에서 얻어진 수익금 중 일부가 해로를 위해서 기부되었다.

한국에 계신 어떤 암 환자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을 생각하고 교회를 통해 후원하기도 하였고, 어떤 분은 가족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고 후원해주신 분도 있었다.

또한 해로의 돌봄을 받으시다가 별세하신 분의 가족들이 고인이 오랫동안 모아오신 소중한 물건들을 기증해주셔서, 기증 물품들을 판매하는 깜짝 바자회를 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얻어진 수익금은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한인 치매독거 어르신과 파독 간호사 출신의 노숙자를 돕는데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외에도 작은 교회에서 호스피스 환우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헌금을 비롯하여, 금액은 적지만 조금씩 후원자들이 늘어가고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섬김의 봉사에 힘을 내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해로를 위해 후원해주시고 물질과 봉사로 도와주시는 모든 분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여러 사례를 들어서 해로를 위해 후원하시는 분들을 소개하였지만, 아직까지 해로에 기부되는 후원금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해로는 후원금을 더 많이 모으려는 생각보다는 치매와 호스피스 환자들을 비롯한 어려운 어르신들을 더 잘 섬기려는 마음이 더 크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많이 하면, 그 일을 하도록 필요한 물질과 사람을 보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쓴 것만 내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내가 사용하고 쓰지 못하면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고 나눈 것만이 내가 쓴 것이 된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잃어버리면 결국 내 것이 아닌 셈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욥기 1:21) 그러나 죽은 뒤에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모든 일은 우리를 뒤따른다(계 14:13)고 했다. 하늘의 주님께서 갚아 주시도록 우리에게 주신 재물과 재능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여호와께 빌려주는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의 선행을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다.” (잠언 19:17)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270호 16면, 2022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