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베를린 소녀상, 못다한 이야기 (2)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가능하면 미테구 관련 인사가 최소 1명이라도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테구 문화부 위원의 일정에 맞추었다.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그것도 오후 3시로 많은 관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제막식 전까지는 소녀상 설치 사실을 함구하고, 모든 일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사전에 그 사실이 알려져, 일본 측의 방해로 설치조차 못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소녀상을 기증한 <정의기억연대>와 <코리아협의회>는 제막식 이틀 전인 27일 토요일에야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한국 기사는 일본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지만 독일은 주말이니, 월요일 오전에 일본 측에서 아무리 손을 써도 독일 공관이 그렇게 빨리 움직여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녀상을 무사히 설치하고 성대한 제막식까지 마치자 바로 다음날인 9월 29일 일본정부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관방장관인 가토 가쓰노부가 소녀상 설치에 유감을 표명하며 소녀상 철거에 앞장설 것을 공표한 것이다.

이틀 후 파리에서는 모테기 도시미쓰(일본 외무상)와 하이코 마스(당시 독일 외무부장관)와의 회의가 잡혀 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화상통화로 대체하면서, 외무상이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정부의 반응이 있을 줄 짐작은 했지만, 장관급 고위공무원의 공식적인 언론 선포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설치 열흘 만에, 허가를 내준 당사자인 미테구청에서 철거 명령을 통보했다.

10월 7일 오후 다섯 시, 도로청과 녹지청 담당공무원 두 명이 철거명령서를 손에 들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다. 속달 우편도 아니고, 이 또한 독일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서류에는 일주일 안에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최소 이천 오백 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가까스로 세운, 1톤이 넘는 소녀상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철거 이유는 소녀상 비문 내용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으며, 소녀상 설치는 한일 간의 갈등을 독일로 끌고 들어와 한국 편을 들도록 독일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일본정부가 국제사회 로비 시 활용하는 프레임의 전형이었고, 독일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공문을 받자마자 역사학자이자 전시 성폭력 전문 여성학자인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와 통화하여 변호사인 그의 파트너에게 우리 신청서를 전달했다. 그는 소녀상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 과거 일본정부의 소녀상 관련 행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신청서 내용을 보더니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행정법 전문 페미니스트 여성 변호사를 추천해 주었다.

변호사는 주말 동안 폭풍 리서치를 한 다음 10월 13일,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정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소녀상 앞 집회: 2020년 10월 13일, 미테구청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맞서 열린 소녀상 앞 철거반대집회

SNS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 시민사회에서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독일 시민들은 이 사안을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 공권력’이란 프레임으로 보고 함께 분개하였다. 정치인, 언론, 유명인사들이 반응했고,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단 며칠 만에 만 이천 명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안이 쏟아졌고, 국내외 언론사의 문의가 빗발쳤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시차를 무시하고 쏟아지는 국내 언론사 인터뷰 요청에 응하느라 한정화 대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시민들은 거리에 모여 촛불을 들고 “베를린이여 용감하라, 소녀상은 머물러야 한다!”, “우리가 소녀상이다!”를 외쳤다. 독일 전국 조직인 <오마스 게겐 레히츠>(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모임)가 달려왔고, 다양한 여성단체가 함께 했다.

예고없이 시민집회 현장에 나타난 미테구청장
©슈테판 폰 다쎌

10월 13일, 떠밀리듯 부랴부랴 준비한 기자회견과 시위에 300명의 인파가 몰렸다. 소녀상 앞에서 시작한 집회는 가두 행진을 한 뒤 미테구청 앞에서 정점을 찍었다. 시민들의 서명지를 전달한다는 소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구청장이 집회 인파 속에 섞여 있다 불쑥 마이크를 잡은 것이었다.

미테구는 진보정당이 집권하고 있었고, 독일은 베를린주 시정에 연방정부가 직접 명령을 내리거나 간섭할 수 없다는 지역중심 정치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외무부와 일본대사관 간에 오고 간 내용을 취재했던 독일 언론인은 일본대사관에 의한 외무부(연방정부)로부터의 압력은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울 거라 낙관했다. 그러나 미테구청 앞 소녀상 철거 반대집회에 나타난 구청장, 슈테판 폰 다쎌은 ‘이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몰랐던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웠다, 소녀상 철거 관련해서는 외무부와 합의를 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연방정부로부터의 압력을 인정하는 동시에, 신청 허가를 내준 관청의 책임자로서 소위 ‘위쪽’에 책임을 미루겠다는 의미였다. (다음 기사에 계속)

글: 한정화/정유진, 사진: 코리아협의회 제공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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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호 17면, 2022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