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들어보는 1.5세들의 목소리,
<떠다니는 뿌리> 베를린 공연

오늘날 베를린이란 도시가 갖고 있는,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적 이미지는 단연코 ‘문화’로서, 국제적 문화예술의 장, 베를린 예술계의 문화예술 활동은 단순히 “활발하다”는 수사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역동성을 자랑한다. 박물관과 갤러리는 제외하고서라도, 3개의 오페라 하우스, 8개의 대극장, 120개의 소극장과 7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 도시는 유럽에서 베를린이 유일하다.

베를린 관광산업 발전의 주요 원인 역시 베를린의 문화적 역동성으로, 전문가들은 베를린 경제 수익의 주요 축으로 문화예술을 꼽기도 한다. 시 정부 차원에서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자금지원을 해오고 있는 베를린 상원 문화국 (Senatverwaltung für Kultur und Europa) 역시 변화무쌍한 문화예술계와 넘쳐나는 문화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오페라와 극장 등 전통적인 문화시설을 비롯하여 베를린에 소재한 예술가와 예술가 그룹이 창작한 양질의 우수 작품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상원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국적에 상관없이 예술 작품 및 재정 지원 프로젝트 등을 제공하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라면 누구나 해당 지원을 받을 자격을 주고 있다.

자금 지원 대상은 베를린의 전문 예술 영역으로 작품의 퀄러티, 문화적 다양성, 혁신성이 선발 기준인데, 코리아협의회에서 행위예술가, 잉키(Inky, In Kyung Lee)와 진행중인 <유영하는 뿌리> 퍼포먼스 프로젝트 역시 이 상원 문화국의 <IMPACT Funding 2022>에 선정되어 성사되었다. 공연장 역시 공연예술 독립 단체들을 위한 상원 문화국의 지원 정책을 발판 삼아 이름을 알린 ‘탄츠파브릭’(Tanzfabrik)이다.

1년 여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잉키는 베를린, 뉴욕, 서울에서 공연, 음악, 글을 선보이고 있는 종합예술가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와 어머니의 삶을 다룬 그의 최신 음악앨범은 베를린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선보이고 있는 문화잡지 <LOLA Magazine>의 ‘Sound of Berlin #10’ 중의 하나로 수록된 바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떠다니는 뿌리>(Floating Roots) 퍼포먼스는 1.5세를 대상으로 작업한 것으로 그들 중 대부분은 60년대부터 70년대에 독일로 온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그간 1세대와 2세에 대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비교적 많이 다뤄졌으나 1.5세들의 이야기는 이 공연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의 기획, 연출, 음악 제작 및 연주 등을 맡은 잉키는 먼저 이들 17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 17명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곡을 창작, 공연중에 라이브로 연주하게 된다. 인터뷰 대상자 중 6명이 직접 무대에 올라 청각장애인 한 명과 함께 공연을 구성하게 되는데 잉키는 그동안 출연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비공개로 리허설을 진행, 출연자 전원은 초연 전날 저녁 리허설에서야 처음 만나게 된다고 한다. 즉, 관람객뿐 아니라 그동안 잉키와 공연을 준비해온 출연자들에게도 이 무대는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공연하는 초연이 되는 셈이다.

잉키와 함께 공연을 이끌어갈 코협 디자이너 조혜미는 이주 청각장애인 여성으로서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목소리를 전달하게 되며, 현장에서는 국제 수어(ISL) 통역이 제공된다.

코협은 최근 몇 년간 농인들을 비롯한 독일 거주 아시안들의 목소리를 부각시키는 일에 힘써왔다. LGBITQ*와 BIPoC 등 주류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시각과 생각을 사회에 전달하고자 글쓰기 워크숍, 책과 잡지 발간, 낭독회, 예술 창작 및 임파워먼트 워크숍 등을 통해 이들을 지원해 온 것이다.

<떠다니는 뿌리> 프로젝트를 위해 인터뷰를 했거나 무대에 오르게 될 이들은 독일에 살고 있는 1.5세이자 소위 파독간호사를 엄마로 둔 자녀들로서, 모두 10대 이전 또는 10대 때 새로운 국가로 이주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졌다가 나중에 완전히 다른 생활환경에서 다시 엄마를 만났고, 독일이나 한국,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해 있지 않다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으며, 친척이나 친구들과의 이별을 감내해야 했다.

정착 과정에서 어머니가 겪었던 심리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목격한 이들도 있었다. 청소년 시기에 이 극심한 전환기를 대부분 혼자서 대처해야 했던 이들의 혼란, 상실, 슬픔과 고통은 ‘통합’과 ‘동화’의 과정에서 내재화되어, 이제는 그들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인터뷰 중 어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은 굳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디든 가지고 다니는 ‘떠다니는 뿌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공연은 이 ‘떠다니는 뿌리’에 대한 이야기다.

<떠다니는 뿌리> 공연 소개
-공연시간: 90분 / 연출, 안무, 작곡: Inky
-출연: Hyemi Jo, Melanie Sien Min Lyn, Thu-Anh Tran, Soonam Yi, Ka-Yam Chui, Thao, Anonym
-사운드 엔지니어링: Mitchell Keaney / 조명 디자인: Elliott Cennetoglu

공연 일정
-때: 11월 17일(목), 18(금), 19(토), 20(일) 매회 19시
-곳: Tanzfabrik Berlin, Uferstudios 5, Badstraße 41a/Uferstraße 23, 13357 Berlin
-관람료: 10, 15, 20, oder 25€에서 자유 선택 „Pay as you can“
-온라인 티켓구매: https://pretix.eu/tanzfabrikberlin/floating/

1290호 17면, 2022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