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톤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정범진 씨는, 1991년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해, 물도 혼자서는 마실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나 버릴 때였습니다. 그대로 숨이 멎어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범진씨를 샅샅이 진찰한 의사가 <정범진씨, 유감스럽지만, 재활의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정말, 죽어야 겠다고 생각한 그가, 우연히 퀸스의 한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살기로 결심 했다고 합니다. <무덤 속의 답답한 관에서 비좁게 사느니, 힘들겠지만, 열심히 도전하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생각으로는, 이 때의 정범진 씨에게 이러한 생각을 갖도록 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생길을 고난 속에서 힘들게 걷다 보면, 아주 가끔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황을 통해서, 또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때로는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서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80평생의 인생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장애인이 되면 처음엔 현실을 부인하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이 모두가 현실이구나!”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정범진 씨는, “내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사회 정의를 구현해 보자”는 결심을 하고 피해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회를 정화 시켜보자고 단단히 결심을 한 뒤, 혼신의 힘을 쏱은 그는 뉴욕 브루클린 지방검찰청 연소 부장 검사가 되었습니다(33. 미국명 알레스 정) 그러자 그의 걸어온 길이 인간 승리가 되어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미국 공영방송인 PBS와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 소개 합니다.
기자: 검사 임무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정 부장검사: 글 쓰는 것을 비롯, 모든 것이 남들보다 두 배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비서를 고용했기 때문에 출 퇴근, 용변, 식사 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허지만 남들이 오해할 때는 견디기 힘들다. 법정에서 만난 한 판사는, “판사가 재판장에 들어오면 전원 기립해야 한다는 기본 예의도 배우지 않았느냐?” 고 다그친 적도 있다. 경찰서에서는 계단 때문에 2층에 오를 수 없어 담당 형사를 나오라고 했다가 “검사면 다냐, 너무 뻐긴다”는 말도 들었다.
기자: 검사를 택한 이유는,
정 부장 검사: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검사를 택했다.
기자: 정상인 동기들을 제치고 승진할 정도로 성공한 비결이 뭔가?
정 부장검사: 기적을 바라지 않고 생존의 방법을 빨리 터득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되면 처음엔 현실을 부인하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그러다 결국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다. 나는 1,2단계를 뛰어 넘고, 현실에 쉽게 적응했다. 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배려가 없었다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자: 장애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정 부장검사: 사회가 배려해주는 것을 마냥 기다리고만 잊지 말라는 것이다. 홀로 서기를 선언하고, 그걸 몸소 실천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지만, 정상인들도 적극 도와야 한다. 장애인들 스스로에게만 발버둥치라고 요구하지 말길 바란다. 한국의 경우 장애의 극복을 장애인 자신에게만 맡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장애를 이겨내고 미국 뉴욕 부르클린 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던 정범진 씨가 38세에 다시 뉴욕시 형사법원 판사로 지명 되었습니다. 정씨는 마이크 불룸버그 뉴욕 시장으로 부터 다른 4명과 함께 최근 지방 형사법원 판사로 지명 되었으며, 7월로 예정된 청문회를 통과하면, 지난 5월 형사법원 영구직 판사로 승진한 전경배씨에 이어 뉴욕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두 번 째 한국계 판사가 된다.
배문경 뉴욕 한인 변호사회 회장은, 판사는 미국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자리라면서 정씨 본인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의 경력 등을 고려할 때, 판사로 자리를 옮기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오늘 이 글을 읽고 계시는 교포신문 독자 여러분, 199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를 안게 되었으나,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 고진감래 속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뉴욕에서 2000년최 연소 부장 판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반드시 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다!>라고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 졌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나무에 계속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꿈을 외롭게 홀로 두지 마십시오. 당신의 꿈을 고독 사 시키지 마십시오! 꿈에게 계속 물을 주는 행위가 바로 나로 꿈을 이루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 입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목숨까지 아낌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오직 예수님이 이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정진하면, 당신은 정범진씨처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 많이 있지만, 완정 장애를 딛고 푸른 소나무처럼 당당하게 우뚝 선 정 범진 판사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정의 구현을 위한 힘이 끊이지 않고 샘 솟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홍 승희 아동은 대전에 있는 양육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의 부모는 2022년 11월 부터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이복동생을 임신하고 있는 아동의 친모는 타 교정시설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아버지는 해당 사실을 알고 이혼에 합의 한 상태입니다. 아동 부모가 모두 수감 되면서 엄마의 동거남이 아동을 2개월간 양육하였으나, 경제 활동으로 인한 돌봄 공백 우려로 보호 조치를 의뢰 하였고, 아동은 2023년 1월 부터 본 시설로 긴급임시조치가 되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승희 아동은 2024년 현재 만 4세 입니다. 어린이 집을 다니고 있으며 명랑하고 밝은 성격에 애교도 많은 아동입니다. 시설과 어린이 집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하루 하루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설 입소 전에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여 심리 치료와 언어 치료가 필요 합니다.
교민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은 승희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363호 34면, 2024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