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과 야마나카의 문화재 전쟁(2)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를 놓고 벌인 맞대결

1934년 간송은 일본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조선의 건축과 예술>이라는 책에 실린 흑백도판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훗날 ‘주유청강(舟遊淸江)’과 ‘상춘야흥(賞春野興)’이라는 이름이 붙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2점이었다. ‘주유청강’은 양반들이 기생들과 한강에서 뱃놀이 하는 모습을

그렸다. ‘상춘야흥’은 진달래 꽃 화사한 봄날, 당상관(3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고관들이 기생들을 데리고 야외에 나와 봄놀이하는 모습을 그렸다.

두 그림의 소장자는 개인이 아니라 도미타(富田) 상회였다. 도미타 상회는 일본인인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가 남대문 옆 조선은행 뒤편에 차린 서화골동품상이었다. 그 도미타가 ‘주유청강’과 ‘상춘야흥’을 비롯, 30점의 혜원 풍속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러나 좀더 알아보니 그림의 소유권은 이미 야마나카 상회로 넘어가 있었다. 도미타가 사망하자 유족들이 야마나카 상회로 유품들을 일괄로 판매했다는 것이었다.

“야마나카라면 작년에 석조물을 경매한 상점 아닌가요? 한번 알아봅시다.”

간송은 경매 대리인인 신보를 찾아가 “저 혜원의 그림만큼은 반드시 확보해보자”고 했다.

거의 한달이 지난 뒤 신보가 간송을 찾아와 혜원 풍속도의 그림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혜원의 풍속화첩이 오사카 야마나카 상회에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을 너무 비싸게 불러요.”

화첩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던 간송이 신보에게 물었다.

“가격은 얼마를 부릅디까?”

“그게 말입니다. 모두 30점인데 5만원을 불러요.”

“5만원? 5만원이라고?”

간송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귀한 작품이기로서니 5만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기와집 50채 가격이라니….

“포기합시다. 너무 비싸요.”(간송)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죠. 제가 야나마카 상회에 포기한다고 연락하겠습니다.”(신보)

얼마 후 그렇게 마음을 접은 간송에게 신보가 다시 찾아왔다.

“야마나카 상회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가격 조정 해보자고 합니다.”(신보)

가격조정? 그렇다면 흥정하자는 얘기가 아닌가. 앞 뒤 가릴 것 없었다. 간송은 신보와 함께 오사카로 달려갔다.

■ 숨죽이며 넘겨본 혜원 풍속화첩

간송 앞에 야마나카 상회의 대표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나타났다. 두 사람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간송은 일단 혜원의 풍속도 30점을 확인했다. 흥분을 애써 가라앉혔다.

과연 대단한 풍속도였다. 이토록 당대 양반사회를 풍자한 풍속도가 어디 있는가. 한량과 기녀들의 일탈을 은밀하면서 애로틱하게 표현했다. 남녀의 야밤 자유연애를 그린 ‘월하정인’과, 첫 키스신의 장면인 ‘월야밀회’ 등이 그렇다. ‘단오풍정’은 조선 최초의 누드화로 꼽힌다. 무

엇보다 혜원의 풍속도에는 여성(기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여인들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이토록 잘 표현한 작품이 어디 있는가. 혜원은 담 안에 갇혀있던 여성들을 울타리 밖으로 해방시켰다. 소복을 입은 과부가 여종과 함께 짝짓기 하는 개 한 쌍을 바라보는 그림을 보라.

반면 남성들은 ‘찌질이’로 표현됐다. 여자종의 손목을 잡아끄는 젊은 선비를 그린 ‘소년전홍’과, 성매매 현장을 표현한 ‘삼추가연’, 질탕한 스킨십을 그린 ‘청금상련’, 선비의 눈빛이 음흉한 ‘정변야화’ 등….

실소를 자아내는 그림 중에는 ‘당신의 마부가 되겠다’면서 기생이 탄 말을 모는 양반과, 기생의 담배불을 붙여주는 남자, 그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진짜 마부를 그린 ‘연소답청’이 압권이다.

또 기생집에서 술에 취해 난투극을 벌이는 ‘유곽쟁웅(기방난투)’도 당대 양반사회의 일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혜원의 그림은 시대의 금기를 깨는 대담한 도전이었다. 간송으로서는 절대 놓쳐서는 안될 기화(奇貨)였다.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 기와집 25채값을 주고 얻은 통쾌한 승리

세계적인 골동품상인 야마나카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멀리까지 오셨으니 4만원까지 내려드리죠. 그 이하는 안됩니다.”

간송의 표정을 읽은 신보가 고개를 내저었다.

“2만원 이상은 안됩니다.”

야마나카는 요지부동, 4만원을 고수했다. 간송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인연이 없나 보네요. 섭섭하지만 제가 직접 그림을 보았으니 눈이 호강한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이번 여행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간송이 작별인사를 고하고 떠나려 하자 야마나카가 여운을 남겼다.

“(간송) 선생. 제가 장삿속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닌데…. 작년 석조물 경매 때 선생의 기개를 봤는데…. 이 화첩은 선생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야마나카의 말이 간송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흥정이 시작됐다.

야마나카는 “만원씩 양보하자”고 했다. “3만원으로 하되, 1만원이 부담된다면 어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제가 판단한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데, 그걸 무너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그러나 1만원 어음발행은 외상이라는 얘기다. 6개월짜리 어음이든, 1년짜리 어음이든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간송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전 외상으로는 싫습니다. 자. 2만5000원에 합시다. 현금으로 지불하겠습니다.”

이번엔 야마나카가 결정해야 할 차례였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68살의 골동품상이 28살의 젊은 조선인 수장가의 손을 ‘쿨’하게 잡았다.

“내가 양보하겠소. 전 선생, 축하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혜원의 풍속도 30점이 조선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간송이 지불한 2만5000원은 당시 서울의 8칸짜리 고급 한옥집 25채 가격이다. 지금 기준이라면 어떨까. 한채 10억원짜리 아파트라면 25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닌가.

1217호 33면, 2021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