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건강하지 않게 오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치매이다. 치매는 아직 확실한 치료제가 없고, 긴 시간 동안 기억을 잃은 채 돌봄을 받으며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년기에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구분해 보면, 첫째로 노화나 스트레스로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생기는 <건망증>이 있다. 이 경우는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므로, 대개 힌트를 주면 금방 기억해 낼 수 있다. 둘째로 기억력이나 전반적인 두뇌의 기능은 감소했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다. 셋째로 기억력이나 전반적인 두뇌의 기능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으면 <치매>라고 진단하게 된다.
지난 20년간 많은 치매 연구를 통해 수면 부족이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아주 강력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잠을 자는 동안에 뇌에서 하수도 역할을 하는 글림프 (glymphatic) 시스템이 치매의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씻어내는 일을 한다고 한다. 새벽잠을 줄이는 습관이 들면 기억이 저장되는 부분이 많이 지워지는데,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된 결과가 바로 치매이다.
영국에서 노인 8,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7시간 자는 사람보다 치매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30%가량 높았다.
잠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서 대뇌 기능을 즉각적으로 떨어뜨리는데, 특히 전두엽 기능에 영향을 주어 집중력, 기억력, 판단 능력이 모두 나빠진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 혈중알코올농도 0.08%(면허 취소는 0.1%)와 비슷한 정도의 집중력 장애가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잠은 노화와 치매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잠에 매우 인색하다. 필립스가 2021년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행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일 평균 수면 시간은 6.7시간에 불과했다. 이는 OECD 회원국의 평균 수면 시간인 8.3시간에 한참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처럼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해로가 섬기고 있는 베를린 지역에는 경도인지장애와 치매로 돌봄이 필요한 파독 간호사로 오신 어르신들이 아주 많이 늘고 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파독 간호사로 오셔서 고된 밤 근무에 따른 오랜 수면 부족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추론해 본다.
해로는 2016년부터 재외동포재단과 협력하여 <치매 예방의 날> 행사를 진행하며 치매 예방 교육을 해왔고, 치매 전문가를 초청해 치매 예방 및 치매에 대한 교육과 건강강좌를 꾸준하게 해왔다. 이런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져 해로하우스에서 화요일마다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을 위한 <인지능력 향상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어르신들은 물론 가족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에게는 환자를 돌보느라 쉴 틈이 없고, 24시간을 항상 긴장하며 생활하게 된다. 치매 환자의 특성상 불안과 수면 장애가 나타나며, 안절부절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해서 환자와 가족이 모두 감정조절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무작정 배회하여 가족들이 환자를 찾느라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다.
치매 환자는 정서적 불안과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혼란을 겪기도 하고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배회에도 반복적으로 찾아가는 루틴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환자의 관심과 특성을 파악하고 환자가 배회하는 원인을 제거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치매는 치매 예방을 위한 노력과 함께 치매를 조기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에는 어림잡아 30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데,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멀리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A 이모님은 길을 못 찾고 잃어버리는 등의 다양한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 도와주려고 하여도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하며 치매 검사와 진찰을 거부하기도 하여 돕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매주 목요일마다 자원봉사를 오시는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치매 진단을 할 수 있었다.
B 이모님은 반복적으로 배회하는 습관이 있어서 가족들이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시계와 여러 장치를 마련하여 열쇠와 가방 등에 부착해서 이동 경로를 가족이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제는 봉사자와 함께 거의 매일 해로하우스에 나오셔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와 노래도 함께 하면서 해로에 나오시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가족과 해로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여 환자를 돌보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해로에서 돌보는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환자가 많아지고 있어서 봉사자들이 긴장하며 어르신들을 살피고 있다. 현재 화요일 한 번뿐인 <인지능력 향상프로그램>을 목요일 반을 만들어 환자와 가족이 함께하는 돌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다.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해로하우스가 상근봉사자는 물론 자원봉사자와 가족들이 힘을 합쳐서 모든 파독 1세대의 쉼터가 되고, 모든 환자가 몸과 마음의 평안을 찾는 장소가 되기를 소망한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 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명기 34:7)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32호 16면, 2025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