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생활지원단과 사단법인 해로가 함께하는 건강 지원 정보
최근 들어 요양등급(Pflegegrad) 신청과 관련된 상담 문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양등급을 신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상황에서도 등급이 나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우연한 변화가 아닙니다. 1960~70년대 독일에 오셨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이제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 90대에 이르는 고령기에 접어들면서 건강 문제와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돌봄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보험사에 요양등급을 신청하면 일정 시간이 지나 의료평가단(Medizinischer Dienst)이 집을 방문해 평가를 진행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평가를 “병이 얼마나 심한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평가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독일 장기요양보험(SGB XI) 제도에서 요양등급 평가는 질병의 개수나 진단명이 아니라 ‘자립도(Selbstständigkeit)’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얼마나 아픈가보다 일상생활을 얼마나 스스로 할 수 있는가가 평가의 핵심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요양등급 평가를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 파독 광부 어르신의 이야기
몇 년 전 상담 중 한 파독 광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 종류의 암을 앓고 있었고 몸 상태도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요양등급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가단이 방문한다는 날이 되자 어르신은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단정한 옷을 입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평가자가 욕실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어르신은 직접 계단을 올라 2층 욕실까지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요양등급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많은 한국 어르신들은 몸이 아파도 참고 버티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미덕이지만 요양등급 평가에서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가자는 질병의 심각성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도움의 정도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평가 당일에 평소보다 더 움직이거나 무리해서 행동하면 평가자는 이렇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분은 스스로 생활이 가능한 분이구나.”
결국 실제 생활에서는 도움이 필요함에도 평가에서는 자립도가 높게 판단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양등급 평가는 무엇을 보는가
독일의 요양등급 평가는 Neues Begutachtungsassessment(NBA) 기준을 사용합니다. 이 평가에서는 일상생활 능력을 여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확인합니다.
1. 이동 능력 (Mobilität): 침대에서 일어나기, 의자에서 이동하기, 집 안에서 걷기, 계단 이용 등 신체 이동 능력을 평가합니다.
2. 인지 능력과 의사소통: 시간과 장소 인식, 대화 이해, 위험 상황 판단, 지시 이해 여부 등을 확인합니다. 특히 치매 평가에서 중요한 영역입니다.
3. 행동 및 정신 상태: 불안, 공격성, 밤에 돌아다니는 행동, 반복 행동 등 행동 변화를 평가합니다.
4. 자기 관리 능력 (Selbstversorgung): 식사, 세수, 샤워, 옷 입기, 화장실 이용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확인합니다.
5. 질병 치료 관리 능력: 약 복용, 혈당이나 혈압 관리, 치료 계획 이해, 의료기기 사용 등 질병 관리 능력을 평가합니다.
6. 일상생활 조직 능력:하루 일과 계획, 사회적 활동 유지, 타인과의 교류 등 일상생활 관리 능력을 확인합니다.
점수로 결정되는 요양등급
이 여섯 영역을 종합해 점수가 계산되고, 그 점수에 따라 요양등급이 결정됩니다. 즉 요양등급은 질병이 아니라 생활 자립도의 점수로 결정됩니다.
평가를 받을 때 기억해야 할 점
요양등급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 생활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평가 당일에는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기, 평소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기,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솔직하게 설명하기, 어려움을 숨기지 않기를 권해드립니다.
가능하다면 가족이나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밤에 발생하는 문제나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봄 지원의 시작은 정확한 평가
독일의 장기요양보험 제도는 가능한 한 오래 집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생활 상황이 정확하게 평가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양등급 평가는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 아니라 필요한 돌봄 지원을 연결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실제 생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장기요양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실제 요양등급 평가에서 어떤 기준으로 점수가 계산되는지, 그리고 평가 과정에서 무엇을 준비하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교포신문생활지원단에서는 사단법인 ‘해로’와 함께 동포 1세대에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강, 수발(Pflege)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더불어 전화 상담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노령기에 필요한 요양등급, 장애 등급 신청, 사전의료 의향서(Patientenverfügung), 예방적대리권(Vorsorgevollmacht)작성 등 보다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1450호 24면, 2026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