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귀띔: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9)

Dipl.-Ing. WONKYO 연구소장

교회로 바뀐 엘리자벳 (St.Elisabeth) 성당

여기서의 엘리자벳(1207-1231)은 영국여왕이 아닌 헝가리 공주의 이름이며 독일 귀족과 혼인함으로서 독일 백작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엘리자벳은 헝가리 출신으로 14세가 되던 1221년 독일 튀링엔(Thueringen)의 백작 루트빅히 4세 (Ludwig IV)와 결혼하면서 독일인이 되었고 귀족으로서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녀가 20살이 되던 1227년에 남편인 루트빅히가 사망하자 프란치스카 (Franzica) 성인의 사명에 순종하고 병자들을 돌보며 가난하게 살아가기를 맹세했다.

그 후, 엘리자벳은 아이제나흐(Eisenach)의 바트부르크(Wartburg) 성을 떠나 마부르크(Marburg)로 거처를 옮겼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털어서 병원을 설립하는 데에 쓰이도록 하고 1231년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따르면서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왕가의 많은 재산과 권위를 모두 벗어 버리고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털어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것으로 삶의 중심을 빚어내기로 했다면 그녀의 몸에 어리는 무늬들은 결코 순탄치 않았을 시대와 역사에서도 빛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벳도 뭇 생명 가운데 죄 없는 한 몸으로 태어났겠으나 빈민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일이 지금이라도 어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던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그녀의 헌신적 노력은 그녀가 사망한 후에 성녀로 시성 되었고, 마부르크에서는 그녀의 헌신적 사랑을 기리기 위해 엘리자벳 대성당을 세우는 공사 (1235-1283)가 시작되었다.

마부르크에서는 조각이나 그림에서 가난하고 병자들을 도와주고 있는 여성이 눈에 자주 뜨이는데 바로 엘리자벳 성인을 그린 것이다.

이 엘리자벳 성당은 독일은 물론 불란서나 인근 국가들이 성당을 지을 때 모델로 삼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으며 마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서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엘리자벳 성당은 원래 가돌릭성당으로 지어졌으나 마부르크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했을 당시 초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교회(Protestant)로 변경되었다. 오늘 날에도 천주교 신자는 18%인 것에 비해 기독교 신자수는 54% 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머리에 큰 왕관을 쓰고 왼손에는 커다란 성당 모형을 들고 있는 성녀 엘리자벳의 조각상은 처녀같이 예쁜 얼굴로 천주교와 기독교에 상관없이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성당을 찿아 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는 조각을 볼 수 있다.

오래된 고딕성당에는 성물과 성인들의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모양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데 밝은 빨강-파랑-노랑색으로 띠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주 현대적인 파이프 오르간이다

13세기에 세워진 오랜 고딕 건물에 어떻게 이런 초현대적인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교회 내부의 성물이나 조각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혹자는 역설적으로 언발란스(Unbalance) 중의 발란스 (Balance) 라고도 말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이 바로 이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여성에게 초미니 스커트나 핫 팬티 (Hot Panty) 나 비키니를 입혀 놓은 듯한 어색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두 번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설치물이었다.

1283년에 완공된 교회안에는 원래 엘리자벳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옮겨졌으며 대신 프로이센의 황제 빌헬름 (Wilhelm 1세>와 프리드릭히 2세(Friedrich II) 의 무덤을 이곳에 안치되었다.

오페라 탄호이저 (Tannhäuser) 는 독일 작곡가 리차드 바그너 (Richard Wagner) 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등장인물로 엘리자벳이 등장하고 이 탄호이저를 그린 시대와 장소가 엘리자베스가 살던 시대인 13세기 초와 튀링엔의 바트부르크 장소가 서로 같다.

성녀 엘리자벳은 전 재산을 털어서 병원을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다가 성인이 되었다. 탄호이저에서의 엘리자벳은 방탕아 탄호이저를 사랑하고 구해주려다가 죽음을 맞았다.

오페라 탄호이저는 1845년 드레스덴의 젬퍼 오페라하우스 (Semper Operahaus)에서 초연되었고 바그너 본인이 직접 지휘를 맡았다. 줄거리는 평생을 구원받지 못할 정도로 방탕한 생활만 하며 살아 온 탄호이저를 사랑한 여인이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벳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승에서 탄호이저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죽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썩은 지팡이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저승에서도 구원받게 됐었음을 암시해 주는 내용이다.

바그너가 작곡하고 직접 지휘까지 맡았지만, 끝부분에서 사랑의 신 비너스(Venus)도 보이지 않고 엘리자벳의 죽음도 암시적으로만 표현되어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2년 뒤인 1847년 비너스와 엘리자벳을 다시 등장시켜 방탕아 탄호이저를 구제해 주는 것으로 내용을 바꾼 것이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탄호이저이다.

1527년에는 독일 최초의 개신교 대학인 마부르크 대학교 (Marburg Universty)가 설립되었고 1901년 마부르크 대학교수가 항독소 백신 (Blutserumtherapie, Antitoxischen Schutzimpfung) 을 발견하여 독일 최초로 노벨 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교포신문은 6월부터 1년간 정원교선생의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글을 연재합니다.이 연재가 독자들의 인문학적 지평을 넓혀줄 것을 확신하며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1421호 22면, 2025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