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할머니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라는 글이 있다. 누가 만든 글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하여 인용해 본다.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열심히 모은 돈, 죽을 때 가지고 갈 거여? 왔을 때처럼 빈손으로 가는 거여. 그놈의 인생이 뭐라고 뭐 이리 아득바득 살았는지! 이 할미가 진짜 억울한 건 자식놈 뒷바라지한다고, 돈 있어야 노후가 편하다 해서 억척같이 모았는데, 이제 좀 놀아볼까 했더니 이곳저곳 안 쑤시는 곳이 없어. 행복은 나중으로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연기처럼 그냥 사라지는 거여.
그러니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살아.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 뭐가 되었든 너부터 잘 살아. 그게 최고의 삶이야!’
인생을 살면서 후회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92세를 살고 나서 지난날을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 나이 들기 전에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는 충고를 하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쓴 듯하다.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적게 후회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후회를 적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남이 가진 것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과 시간과 물질을 가지고 가장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지혜이다.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도 생기지만, 그런 일들조차도 나에게 필요해서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오히려 복이 되기도 한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는 지금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이다.

“해로”의 로고 안에는 ‘지팡이’가 있다. 해로가 하는 일은 몸과 마음이 아파서 힘든 상황에 놓인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돕는 일이다. 힘든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는 지팡이가 되어드리려는 봉사 정신을 담았다.
해로가 베를린 지역에서 가정과 요양원으로 방문하며 돌보고 있는 환자가 100명이 넘는다. 이분들을 돌보기 위한 봉사자가 부족하다 보니 충분한 보살핌을 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죄송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봉사의 일이 많다 보니 봉사자들은 휴가나 쉼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여 지칠 때가 많다. 봉사자의 부족으로 모든 어르신을 가족과 같이 섬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해로의 현실이다. 많은 봉사자가 참여하여 우리 어르신들을 더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듯 해로의 봉사 환경이 쉽지 않지만, 해로의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모임마다 활기가 넘친다. 가벼운 인지장애를 가진 분들의 모임인 <인지능력 향상프로그램>에서는 진행하는 강사도 유머와 에너지 가득한 강의를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어르신들도 하시는 말씀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 수시로 웃음이 빵빵 터진다. ‘나를 웃겨 봐라’가 아니라 먼저 웃을 준비가 된 모임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과 봉사자 모두 해로에 나오면 크게 웃는 일이 많아서 좋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해로모임에 나오는 것을 어색해하던 분들이 이제는 재미있다고 하시며 병원에 가는 것도 잊고 모든 일정 중에서 가장 먼저 선택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인지장애를 겪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웃으며 즐겁게 사는 어르신들이 너무 좋다.
해로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활동은 <노래 교실>이다. 노래 교실이니까 당연히 노래를 잘 부르고 재미있게 부르는 시간이다. 가곡과 가요, 동요,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좋은 노래라면 모든 장르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 교실에는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에 얽힌 우리들의 희로애락 인생 이야기가 노래와 함께 녹아 나온다. 때로는 노래와 함께 웃고, 노래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지난 9월 16일에는 양민호 찬양사역자의 <찾아오는 음악회>가 있었다. 양 선교사는 대장암 말기를 극복했지만, 후유증으로 심장이 궤사되는 병을 앓고 있음에도 우리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어드리고자 자비량으로 독일까지 찾아와서 작은 음악회를 하였다. 스토리가 있는 삶의 이야기에 더하여 어르신들에게도 추억이 깃든 노래로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웃음만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한 감동도 역시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은혜의 시간이었다.
또한 9월 23일에는 베를린의 숨은 보석을 찾아 나서는 <베를린 산책>이 있었다. 추분을 맞아 가을을 마중하러 <노래 교실>이 야외로 나갔다. 베를린의 역사적 변화를 상징하는 핵심 장소인 포츠다머플라츠 주변에 있는 공공 미술을 눈으로 감상하고 귀로 듣고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독일 분단과 통일, 미래 도시의 아이콘인 포츠다머플라츠를 다시 보게 되었다. Sony 센터 건축 이야기, 기돈 그라츠의 ‘피닉스’와 알렉산더 폴진의 ‘지오다노 부르노의 뎅크말’과 같은 보석 같은 조형미술을 감상하는 특권을 누렸고, 독일 최초의 신호등과 Light Pipe, 1차대전 종전 시위를 주도한 ‘Karl Liebknecht’의 기념비 주춧돌, 포츠다머플라츠의 대표적 3개 건물, 영화인 거리, 피아노 호수의 갈릴레오 조형물, 아마야의 계단 벽화를 둘러보며 노래 교실이라서 가능했던 베를린 산책을 마무리하였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해로는 우리 어르신들에게 행복을 찾아드리는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신앙은 큰 유익이 됩니다.”(디모데전서 6:6)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28호 16면, 2025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