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누가 물려받을 수 있을까

이충수 개인정보 보호책임자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에티켓, 개인정보 보호(7)

1) 베를린 소녀와 페이스북 분쟁

2012년 독일 베를린. 한 15세 소녀가 지하철 선로에서 사고로 숨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을 깊은 슬픔에 빠뜨렸지만, 부모는 사고가 정말 단순한 사고였는지, 혹은 딸이 스스로 선택한 비극적 결말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해답은 소녀가 매일같이 사용하던 페이스북 계정 속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모는 페이스북에 계정 접근을 요청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계정 접근을 거부했다. 개인정보보호와 통신비밀을 이유로 계정을 추모 모드로 전환했다. 부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은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BGH)까지 올라갔고, 3년에 걸친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2018년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최종 판결은 명확했다. “페이스북 계정은 상속재산의 일부다.” 종이 일기가 상속되듯, 디지털 메시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법적 원칙은 분명해졌지만, 동시에 실무적으로 풀어야 할 더 복잡한 문제들을 드러냈다. 상속은 가능하다. 그러나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2) 디지털도 상속 대상이다

유럽에서는 디지털 자산이 법적으로 상속 대상이라는 점이 명확하다. 독일 민법(BGB §1922)은 포괄적 상속 원칙을 규정한다. 사망자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상속인에게 원칙적으로 이전된다. 부동산, 예금, 주식뿐 아니라 이메일 계정, 클라우드 저장소, SNS 계정도 포함된다.

한국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민법 제1005조는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일체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카카오톡 계정, 네이버 메일, 온라인 쇼핑몰 계정 등도 모두 상속 대상이다.

그러나 원칙이 곧바로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기 때문에 디지털 계정을 엄밀히 ‘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가 확정되지 않았다. 계정이 단순히 개인적 이용권에 불과한지, 아니면 재산적 가치가 있어 상속 대상이 되는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3) 현실의 벽 1: 3자의 개인정보

GDPR은 원칙적으로 살아 있는 자연인의 개인정보만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사망자의 개인정보는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회원국이 국내법으로 별도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인의 이메일 계정을 열면 어떻게 될까? 동료와 주고받은 업무 메일, 친구와의 사적인 대화, 은행과의 거래 내역… 모두 함께 노출된다. 고인의 정보를 넘겨주는 순간, 제3자의 개인정보도 함께 공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메일 서비스 업체들에게는 실무적 이행 문제가 남는다. “상속권은 인정하지만, 제3자의 정보를 함께 넘겨줄 수는 없다.” 다음 순서는? 접근 거부, 그리고 법정 분쟁.

현실의 벽 2: 통신비밀

또 다른 장벽은 헌법적 권리인 통신비밀이다. 독일 기본법은 통신의 자유와 비밀을 강력하게 보장한다. 전기통신법(TKG) 등 관련 법률도 이메일, 메시지, SNS 대화까지 광범위하게 보호한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상속권을 이유로 계정을 열어주는 순간, 제3자와 나눈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공개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이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큰 리스크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이 겹겹이 통신 내용을 보호한다. 카카오톡은 사망 사실이 확인되거나 장기간 미 이용 시 계정이 삭제될 수 있으며, 상속인에게 대화 내용 접근 권한은 제공하지 않는다. 네이버와 다음도 가족관계증명서와 사망진단서를 제출하면 계정 폐쇄는 가능하지만, 메일이나 사진 등 콘텐츠 열람은 불가능하다.

현실의 벽 3: 양도 불가 약관

법률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장치가 있다. 바로 플랫폼 약관이다.

Apple의 iTunes나 Google Play, Steam 같은 플랫폼은 사용자가 구매한 음악, 영화, 게임을 ‘소유’가 아닌 ‘사용권’으로 규정한다. 계정은 개인적이고 양도 불가능하다. 상속? 약관상 불가능하다.

일부 기업은 상속 요청이 들어오면 계정을 차단하거나 추모 계정으로 전환한다. 상속인은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지켜내기 위해 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고, 때로는 해외 기업과 관할권 다툼까지 벌여야 한다.

4) 실제 분쟁 사례

독일 이메일 계정 분쟁

상속인이 고인의 은행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이메일 접근을 요청했지만, 서비스 제공자는 통신비밀을 이유로 거부했다. 법원은 결국 상속인의 권리를 인정했으나 실제 접근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됐다.

Apple iCloud의 사건

상속인이 고인의 iPhone 잠금을 풀어달라 요청했지만, Apple은 수년 동안 거부했다. 일부 경우 법원의 강제 명령으로 제한적인 접근이 허용되었지만, 절차는 고통스럽고 복잡했다.

한국의 현실

한국에서는 아직 대법원급 판례가 없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족들이 “부모님의 카카오톡 대화나 네이버 메일을 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미리 알아내 로그인했지만, 이는 서비스 약관 위반 소지가 있어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기업 정책이 사실상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5) 사전 대비가 답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법적으로는 상속권이 인정되지만, 기업이 제3자의 권리 침해 위험을 무릅쓰고 계정을 공개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유족들은 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독일 변호사는 “플랫폼의 태도를 단순히 기업의 고집으로만 볼 수 없다. 기업은 GDPR 위반을 피해야 하고, 동시에 상속인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결국 입법을 통해 명확히 규율해야 법적 혼란이 줄어든다”고 지적한다.

한국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디지털 자산 상속을 직접 규율할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회에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기업과 개별 협의를 하거나 긴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고, 현실적으로는 기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법적으로 디지털 유산은 상속 대상이 맞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통신비밀, 서비스 약관이 얽히면서 상속이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아래의 적극적인 준비를 권고한다.

• 사후 계정 관리 기능 활용: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같은 서비스를 미리 설정해둔다.

• 디지털 유언장 작성: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주요 계정 정보와 접근 권한을 문서화해 남긴다.

• 명확한 의사 표시: 어떤 계정을 누구에게 물려줄지, 어떤 계정은 삭제할지 미리 정해둔다.

종이 유언장을 쓰듯, 이제는 디지털 유언장도 필요한 시대다. 독일 법원은 원칙을 제시했고, 한국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행은 여전히 당신의 준비에 달려 있다.

1429호 16면, 2025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