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귀띔 :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18)

Dipl.-Ing. WONKYO INSTITUTE

코미디 영화 HAUSBOAT 상연

Hausboat는 1958년 멜빌 샤벨슨 (Melville Shavelson) 감독으로 제작된 캐리 그랜드 (Cary Grant)와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주연으로 나오는 로맨틱한 코미디 영화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변호사 톰 윈스터 (Tom Winster, 캐리 그랜드)는 갑작스럽게 세 자녀를 돌보아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동안 별거하며 지내던 아내가 세 자녀인 데이빗, 로버트, 엘리자벳을 남겨 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머니 사망 후에 아이들은 외할머니 가족들과 같이 살고 싶어 했지만 톰은 아이들을 사무실과 가까운 워싱톤 D.C.로 데려 갔다. 워싱톤 D.C. 로 돌아온 윈스터는 네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찿아 내기 위해 복덕방에 연락해 놓고 스스로도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네 가족이 워싱톤 D.C. 에서 살만한 집을 찿기가 어려워지자 이들은 낡았지만 마음에 드는 넓은 Hausboat 를 구입하기로 했다.

지금도 네델란드에 가보면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서로 다른 선박들이 강변에 즐비하게 정박되어 있는 하우스보트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하우스보트들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커튼으로 가리거나 문을 닫아 놓지 않아서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나 살림살이들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갑판위에는 텃밭도 만들고 있어서 여러 화초도 예쁘게 키우고 있기도 하고 주인인 듯 싶은 남녀가 긴 의자에 누워 햇볕받이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윈스터는 아이들의 방부터 먼저 정리해 준 후 지역 신문에 세 아이들을 돌보아 줄 가정부를 찿는다는 광고를 냈다. 이때 광고를 보고 찿아 온 여성이 친치아 자카르디(Cinzia Jacardi, 소피아 로렌) 이다. 사실 친치아는 밥을 지을지도 모르고 커피 끓일 줄도 모르면서 피난처로서 하우스보트에 가정부로 들어온 처녀였다. .

친치아는 이태리의 유명한 지휘자의 첫 째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장으로서 친치아의 사생활에 일일이 간섭을 해왔다. 치마 길이가 너무 짧다느니 머리카락이 너무 길다느니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등 다 큰 딸에게 잔소리뿐이었다.

이때마다 친치아는 “이 정도의 치마 길이면 되느냐?”, “머리카락은 더 짧아야 하는냐?”, “오늘은 몇 시까지 들어 와야 하는냐?” 고 일일이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친치아는 아버지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했다. 잠 잘 곳과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리할 줄도 모르면서 윈스터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어와 윈스턴 가족과 함께 유대감을 쌓아 가면서 살아 보려고 했다.

영화잡지에서는 영화 하우스보트가 가장 이탈리아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로서 소피아 로렌이 마리린 몬로 (Marilyn Monroe) 에 비유될 만큼 인상적고 코믹한 영화라고 논평했다. 소피아로렌은 하우스보트에서 그녀의 재능과 볼륨댄스, 에스프레소 노래 등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주를 잘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Hausboat 는 1958년 11월에 미국에서 첫 개봉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제목이 있었음에도 “달빛 아래서” 라는 다른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아마도 윈스터 (케리 그랜드)와 친치아 (소피아 로렌) 사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부각시키기 위해 붙인 제목으로 보인다.

영화 줄거리는 어느 날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윈스터의 아들 로버트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친치아는 멀리서 지켜보면서 재미있어 했다. 윈스터는 가정부로 들어 온 친치아가 말썽꾸러기 로버트를 비롯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것에 고마워 하지만 가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엉터리 요리 솜씨 때문에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친치아는 자기가 매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딸임을 고백했다. 윈스터와 친치아의 미묘한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윈스터의 처제 캐롤린(Carolin)에게 발각되고 그의 가족들과 겪게 되는 즐거움과 로맨스로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두 사람은 결혼으로 골인한다.

우리 나라에는 일찍부터 “남녀칠세부동석” 이라는 가르침이 있었다.

남자나 여자나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만 않으면 벌어 질 일이 없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어 앉지만 않아도 생길 일이 없다고 보았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벌어지는 것이 어른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직 일곱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같이 있는 거리를 멀리 하고 같이 앉지도 말게 하라고 이른 것을 보면 저 “옛날 옛날 한 옛날” 에도 남자와 여자가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곤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일곱 살만 되어도 같이 앉게 하지 말라” 고 하지 않았겠는가.

윈스터와 친치아는 원래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였다.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낸 것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홀아비집에 가정부로 들어 간 것이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낸 것이 잘 되었고 홀아비 집에 가정부로 들어 간 것도 잘된 일이 아닐까 싶다. 처녀와 홀아비가 시집가고 장가가게 될 수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친치아의 아버지처럼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남녀칠세부동석의 가르침을 내세워 말렸더라면 이런 행복한 해피엔딩은 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1430호 22면, 2025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