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 (137)- 청출어람 청어람 (靑出於藍 靑於藍)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은 ‘알다’의 ‘알음’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모양이 곱다는 뜻이 아니다. 아름다운 모습과 고운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고운 모습 보기를 좋아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모습은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사람은 ‘앎’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숱한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그것을 자기의 삶에서 사랑과 성품으로 승화시켜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런 삶을 살아낸 이들은 그 아름다움이 매우 깊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될수록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배워서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한 가지만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요령과 욕심으로 판단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0여 년 전에 나온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다. 저자 ‘로버트 풀검’은 ‘삶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은 복잡한 이론이나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배웠던 나눔, 정직, 책임, 놀이, 함께 하기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때가 많다. 어릴 때 배운 교훈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훨씬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보배’는 귀하고 소중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보배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야’ 보배가 될 수 있다. 특별히 내 맘대로 안 되는 자식 문제도 결국 일차적으로는 부모로부터 보고 배워야 알 수 있고, 알아야 아름다운 보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부터 먼저 아름다운 삶을 살아낼 때, 우리 자녀도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해로에서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섬기다 보면 병든 부모님을 극진히 돌보는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치매로 진행되는 부모를 매일 수발드는 자녀도 있고, 걸음을 걷기 힘든 상태까지 쇠약해진 부모님을 돕기 위해 각종 보조기구를 마련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 산책과 운동을 함께 하는 자녀들도 있다. 부모님이 해로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하시는 날에는 시간을 내어 멀리서 모시고 오고 또 끝나면 모시고 가는 자녀도 있다.

또 어떤 자녀는 멀리 떨어져 사는 까닭에 직접 돌봄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비용을 드려서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을 불편하지 않도록 돌보기도 한다. 우리 자녀들도 우리 어르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점점 노쇠해 가는 부모님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고 있다. 이런 자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모두 흐뭇해진다.

하지만 병든 부모님들을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녀 세대들의 고충은 매우 크다. 때로는 많은 경제적인 기회와 직장까지도 희생해야 할 때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 매우 크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고, 위로받지 못해 점점 더 지쳐가는 것이다.

이런 자녀 세대의 고충을 돕기 위해 자녀 세대를 대표하는 해로의 조은영 부대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자녀 세대들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고, 자녀 세대들끼리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앞으로의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모임도 만들어 가고 있다.

유럽의 중심인 독일로 이주해오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독일 동포사회가 유럽의 중심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자녀 세대들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자녀 세대와 함께 만드는 해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다’라는 말인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은 우리 자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 자녀 세대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다. 어른 세대의 기세가 워낙 강해 그 빛이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우리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독일 언어와 문화에 능통한 우리 자녀 세대들이 독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한다. 머잖아 우리 동포사회의 주역도 자연스럽게 자녀 세대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자녀 세대와 함께 일하고 함께 만들어 가도록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녀 세대의 활약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해로는 12월 8~14일까지 1주일 동안을 “해로 1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해로와 함께해 온 많은 분과 함께 그간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시간을 통해 다시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응원하며 축복하는 시간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번 해로 10주년 행사에서도 자녀 세대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행사의 하루를 만들어 간다. 해로를 통해 부모님들이 섬김을 받은 자녀들의 이야기와 앞으로 점점 더 노약해지는 부모님들에 대한 투병 이야기,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며 서로 배워가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해로는 계속해서 자녀 세대의 어려움과 고통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는 일을 더 많이 감당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해로의 10년은 부모 세대와 1.5세대가 이끌고 왔다면, 앞으로 해로의 10년은 자녀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고 가야 한다고 믿는다. 부모님들과 자녀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섬김의 모델이 해로를 통해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17)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36호 16면, 2025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