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m still hungry!”(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의 말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여 목표를 다 이룬 듯 크게 만족하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의 해이해진 태도를 질책하는 말이었고, 자신의 목표는 최소 4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말이었다. 16강 이상의 성적을 바라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았고,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결국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우리나라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4강 신화를 만들어 냈다. 이런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과 성취는 우리나라 축구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우리 국민에게 ‘땀은 정직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잘 준비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더욱 잘하도록 격려함을 이르는 말이다.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잘하도록 재촉하는 것이 때로는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만하지 않고 더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주려는 사랑이며 책임이다.
우리도 히딩크 감독처럼, 먼저 자기 자신의 실력을 살피고, 더욱 커다란 목표를 품고 도전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우리의 마음 자세는 우리 자녀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모두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고 믿는다.

사단법인 해로가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파독 1세대 환자 어르신들을 섬기겠다는 열정만으로, 사무실도 책상도 없이 봉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10년이 되는 올해 비록 임대공간이지만 <해로하우스>라는 작은 쉼터를 만들어 우리 파독 어르신들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더 잘 섬길 수 있게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꿈꿀 수조차 없었지만, 봉지은 대표를 비롯한 봉사자와 회원 그리고 후원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로>의 1기 봉사는 씨앗을 심는 시간이었다. 2015년에 한 알의 밀알을 심었고, 그 밀알이 싹을 틔우기까지는 많은 땀과 눈물로 인내하는 긴 시간이 있었다. <기빙트리>라는 선교단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은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일주일에 몇 시간만 빌려서 환자 방문과 상담을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노래 교실을 열었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재외동포청 후원으로 ‘치매 예방의 날’ 행사를 진행하면서 동포사회를 섬기는 봉사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과 일상생활 도움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며 봉사를 확대하던 중에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를 만났다. 그러나 위기는 봉사의 기회가 되었다.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던 때에 가장 먼저 한국에서 마스크를 지원받아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었고, 코로나 간이 검사와 긴급 지원 서비스도 하면서 오히려 적극적인 봉사를 하였다. 대사관과 함께 환자와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설날 도시락 봉사도 하고,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통해서 소외된 동포들을 위문하고 격려하며 더욱 어려운 분들에게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되었다.
해로의 2기 봉사는 2021년부터 <판게아 하우스>라는 이민자단체들이 입주해 사용하는 구청 소유 건물에 작은 사무실을 추가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지역사회의 다문화 축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파독의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세대공감 파독 사진 전시회’를 시작하였다.
‘존탁스카페’가 시작되면서 어르신들의 영육 간의 강건함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노래 교실을 통해 ‘베를린 산책’과 여러 음악회에 참여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행사도 풍성해졌다. 판게아 하우스에 있는 공용 공간을 활용하여 바자회, 핸드폰 교실, 각종 모임과 파독 60주년 관련 행사를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해로의 활동은 내실 있게 자라기 시작하였다.
해로의 3기 봉사는 2025년 4월부터 <해로하우스>라는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쉼터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왔고, 장소를 구하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다. 주님의 은혜로 독립된 공간을 빌렸고, 봉사자들의 수고로 리모델링을 하여 해로하우스를 오픈했다.
늘어가는 치매 환자와 암환자들을 섬기는 것은 물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함께 모이고 활동하는 공간, 지역사회의 이웃들도 섬기고, 우리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지금은 인지능력 향상프로그램이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어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해로하우스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가 아름답게 열매 맺는 시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단법인 해로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결같이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한인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그러나 해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도 해로가 섬겨야 할 안타까운 환자와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베를린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
이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로의 봉사는 쉴 수가 없다. 우리 해로는 아직도 봉사에 목이 마르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빌립보서 3:14)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38호 16면, 2025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