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 로욜라 (Loyola) 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의 개종

Dipl.-Ing. WONKYO 연구소장

2013년 3월 13일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이 제266대 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교황 이름을 프란치스코 (Franciscus)라고 했다. 그는 예수회 출신이었으며 예수회 공동체에서 최초로 교황이 된 사람이다.

예수회 창시자는 스페인 출신인 로욜라 마을의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 Ignacio) 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는 남다른 인생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1491년에 스페인 바스크 귀족 가문의 11번째인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기사(군인)이기도 하다. 유아 세례명으로 에네코(Eneco)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태어난 바스크어로 “이니고 (Inigo)” 가 되며 <나의 귀염둥이>라는 뜻이다. 요즈음은 세례명을 정할 때 성인의 깊은 뜻을 받들고자 자기가 좋아 하는 성인들의 이름을 따서 세례명을 정하는데, 그 때는 부르고 싶은 대로 지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는 군인이 되어 여러 전쟁에 참전했다. 1521년에 그는 불란서 군대에 맞서 팜플로나 (Pamplona) 시를 방어하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5월 20일에 포탄을 맞고 한 쪽 다리가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마취제가 발견되기 이전에 이런 대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귀족가문에서 막내로 귀엽게 자라고 말 탄 기사로서 지휘만 하던 그가 수술과 재수술을 할 때마다 고통이 대단했을 것이다.

팜플로나 도시는 1926년에 발표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에서도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빠리에서 팜플로나로 투우 축제를 보러 가는 것으로 나온다.

이그나티우스는 전쟁 때 입은 상처 회복이 여러 달이 걸렸고 입원하고 있던 병상에서 성자에 관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바꾸게 되었다. 특히나 독일 작센(Sachsen)의 루돌프(Rudolf)가 쓴 <그리스도의 생애 (De Vita Christi)> 를 읽고 많은 영향을 받은 나머지 결국 그의 삶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내용과 복음서 그리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병상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기사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으려다가 마땅한 책을 찾지 못하자 손에 쥐게 된 책이 성자들의 행적을 담은 책이었고 이를 탐독하면서 삶을 바꾸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사생활을 청산하고 이탈리아 아시시(Asisi)의 성인 프란치스코와 같은 영적 지도자의 본보기를 따라 남은 여생을 하느님을 위한 일에 봉사하기로 다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부상에서 회복되고 나서 바르셀로나 근처의 몬세라트 수도원 (Basilica de Montsrrat)으로 가서 3일 동안 이어진 고백을 했다. 이때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고행하는 수도자의 복장으로 만례사(Manresa)에 있는 동굴을 찾아가 1년 동안 기도 생활을 마친 후 순례자가 되어 신학연구에 헌신했다. 귀족가문에서 자란 그는 가난을 체험하기 위해 가시 돋친 허리띠를 매고 문전걸식하는 생활을 했다고도 한다.

1523년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는 모진 고생 끝에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선교하려고 했으나 당시 예루살렘의 성지를 지키고 있던 프란치스코 수행자들이 받아들이지를 않아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1524년부터 1537년까지 13년 동안 스페인과 불란서에서 신학과 라틴어 인문학 등의 공부를 하면서 한동안 은둔자로 살았지만 독특한 견해 때문에 종교재판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534년에 그와 그의 공동체 추종자들은 청빈과 순결, 하느님에게 순명하며 살아갈 것을 서약했고 그는 1537년에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가톨릭 개혁 시기에 특출한 영적 지도자로 급부상 하면서 가톨릭교회에 대해 절대적인 복종과 청빈과 고행을 강조하며 봉헌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한 것이다.

독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에 면죄부와 연옥 내용 등 95개의 반박문 (Thesen)을 빗텐배르크 (Wittenberg)의 슐로스 (Schloss) 성당 정문에 붙여졌다.

그 이후 가톨릭 개혁의 물살은 전 유럽으로 밀물처럼 퍼져 나갔으며 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때와 같이 하여 라틴어로만 쓰여 있던 어려운 성경이 처음으로 독일어로 번역되어 누구나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되었다.

종교개혁이 있은 이 시기를 중세의 종말과 근세의 개시로 보기도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2년 후인 1539년 “예수회 (Jesuit)” 인 예수 공동체를 창립했으며 1540년에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최초의 예수회 공동체는 로마 교황의 목자로서 봉사하겠다고 나섰고 이그나티우스가 1556년 7월에 사망했을 당시 예수회 회원은 1000명을 넘어 서고 있었다.

1662년 이그니티우스는 교황 그레고리 15세에 의해 시성이 되었다.

1992년에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영신수련과 피정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고 이그나티우스가 태어났던 곳에는 현재 로욜라 성당이 세워져 있다.

예수회의 문장으로 IHS 문구가 쓰여 있는데 “요차 에타 시그마”로 읽으며 중앙 H 를 통과하는 십자가가 배치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쓰였던 세 개의 못이 그려져 있다.

예수회는 학교를 세우는 등 세속과의 교류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수도회처럼 폐쇄적인 집단은 아니다.

1442호 22면, 2026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