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새 시간에 새 마음으로

류 현옥

붙들어 둘 수 없는 시간은 마치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다.

은은한 공기의 움직임으로 피부를 스치고 간다. 낮과 밤을 교대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 한 해를 끝내고 새 한 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시간을 정하여 관리하는 달력을 만들어 삶의 방향을 잡아 다가오는 일 년의 계획을 세우며 산다.

새해의 행운을 위해 하늘로 쏟아 올린 불꽃이 남긴 쓰레기들이 거리의 아직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시작한 새해의 새 시간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린다. 벌써 이해의 첫 주말이 지나고 새주기 시작되어 얼마 후면 이해의 첫 달이 지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달력의 첫째 장을 찢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2월 달에 들어서면 일월 달보다 절실하게 세월의 흐름을 인식하게 할 것이다.

2월 17일 이 설날 이라는 소식이 전자우편으로 들어왔다. 새해 인사를 잊고 지난 친구가 보낸 소식이다. 늦은 신정인사를 하기 위해 국제전화를 했다. 아직도 설날의 노스탤지어에 젖어 이제 막 지나간 신정은 “…. 그것은 우리 설이 아니잖아!” 한다. 그는 구정 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왜 우리 설을 구정이라고 하고 우리가 모르고 자란 날짜를 새 설이 이라고 하는 지를 이해 못하겠다고 한마디 했다.

“설에는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 새 옷을 갈아입고 부모님께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는 거야! 그게 설이야!”

“구정이라 하니 구닥다리로 버려도 될 헌 것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아 ?!”

이 친구는 양력 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세배드리고 떡국 먹고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설이 아니기에 그렇다 했다.

나는 1월 3일 지인의 초대를 받아 떡국을 먹었다고 말하면서 친구의 마음을 헤아렸다. 마음속에 잔잔히 일어나는 향수의 아픔을 느꼈다.

지나간 그리운 날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

내 스스로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와서 적응하며 살다 보니, 설이 아닌데도 떡국을 먹는다. 새 달력의 날짜에 맞춘 세상에 맞춰 적응하며 살았다.

정년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언제부턴가 이제는 이 세상에 적응하지 않아도 실수 있는 때가 왔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컴퓨터, 핸디, 인공지능(KI)의 세계를 허둥지둥 따라왔는데 이제는 잘 지나가라고 비켜준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해마다 정 초에 한해 여행 계획 을 알려오는 친구 부부가 있다. 올해는 소식이 없어 전화로 물었다.

정년퇴직 후 일 년의 반을 여행하는 이 친구 부부는 여행 계획과 동시에 나를 만날 수 있는 베를린에 있는 날짜를 미리 알려온 것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 정리를 하고 퇴직금과 증권에 들어있는 재산 점검을 했다. 110 살까지 살다 죽는다 해도 다 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여행으로 세상을 돌아다니기로 한 친구다.

내가 올해의 여행 계획에 대해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다고 말하자. “이제는 유일한 여행 계획이 하나로 남았는데 우리가 정할 수 없어 기다리는 거야 ”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 친구는 “다음 여행은 땅속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인데 우리가 날짜를 정할 수가 없잖아 !?.”

그러면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노부부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집 앞의 길가에 내놓아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죽으면 시청 청소차가 와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귀하게 보존한 물건들을 쓰레기장으로 운반해 갈 것이기에 미리 하는 일이란다.

나는 한국의 풍습인 떡국 먹는 설날 이야기를 했다. 철학을 전공한 친구는 떡국을 먹이며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좋은 풍습이라고 감탄했다.

친구는 영상으로 국제 전화로 친구와 지난 이야기를 하며 살다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시간의 기차에서 내려서 스스로가 정한 속도에 맞게 심신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야 한단다. 연상의 친구 말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세상을 돌아본 경험자로 이제 먼 여행을 떠나는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십 여 년을 앞서가는 친구지만 새해의 조언으로 받아들이기가 거북스러워 나는 다시 떡국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우리 선조가 유독 새해 아침에 흰 쌀 떡국을 먹었던 것은 흰 떡처럼 밝게 시작하여 한 살을 더 먹고 깨끗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둥근 떡처럼 복이 가득 들어오고 장수를 의미하는 긴 가래 떡을 먹었다고.

설날은 무엇보다, 떡국을 먹이며 가족의 화합을 위해 한자리에 앉는 날이다 .

1443호 14면, 2026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