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의 갈비구이 사랑

류현옥

1

한밤중에 침실의 창살을 몰아치는 비바람이 레오를 깨웠다. 열린 창문을 닫으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길 건너 가로등의 불빛 아래로 줄기찬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환기 목적으로 열어둔 창문을 닫기 위해서 지붕 밑 다락에 올라가니 이미 빗물이 방바닥에 고여있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드러누운 레오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희가 그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혼자 듣는 빗소리가 더한 외로움이 되어 온몸을 감쌌다. 주말 특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면 태희는 그녀가 좋아하는 점심 준비를 했다.

일요일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그녀는 토요일에 갈비를 사 와서 양념에 절였다. 제일 먼저 생강을 갈아 고기에 넣고 주무른 후에 생마늘을 찧어서 넣고 다시 주무르고 1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준비한 양념장을 넣어 다시 주물러서 갈비에 맛이 들도록 냉장고에 넣어 하룻밤을 재웠다. 먹기 전에 오븐의 열을 175도로 올린 후 철판에 골고루 깔아서 18분 후면 고기가 먹기 좋게 익었다.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공기에 퍼서 담고 잘 익은 김치를 같이한 진수성찬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 그가 들어가 살던 시절 이야기다. 그때는 갈비 맛을 모르면서도 사랑에 빠져 갈비를 뜯으면서 취할 때까지 붉은 포도주를 마셨다.

2

레오는 독일의 중소 도시에서 건축 자재 공장을 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건축학을 전공한 후 건축 회사 직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던 중 태희를 만났다. 레오의 부모님은 시립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태희가 마음에 들었다. 레오는 시간만 나면 어린 시절에 보고 자란 습관대로 건축 자재를 구해 책장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었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레오는 시의 근교에 있는 빈 농가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았다. 집값은 얼마 되지 않지만 농가가 속한 농지가 가격을 차지했다. 레오는 아버지를 오시게 하여 같이 가서 농가의 내부 상태를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아들 몫의 유산을 미리 주겠다며 사라고 권했고 레오는 이제 주말이면 소일할 일거리를 찾았다고 좋아하며 아버지와 함께 집수리에 들어갔다.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집을 지어보지 않은 레오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락까지 합쳐서 3층 건물이 되도록 리모컨 설치를 시작했다. 아래층은 거실과 부엌 사이의 벽을 없애고 테라스를 개조하고 식탁과 그릇장을 손수 짜서 넣었다. 2층은 화장실 외에 손님 방, 컴퓨터 방을 설치했다. 방 하나는 의상실로 옷걸이를 장치하여 탈의실로 만들었다.

2년은 잡고 시작한 수리 작업은 3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와서 도와주는 외에는 일꾼 없이 주말과 휴가 때면 매달렸지만 오래 걸렸다. 지붕도 새로 갈아야 했고 오래된 기둥들도 새 나무로 대치해야 했다.

태희는 이 무렵 여러 번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때마다 레오는 새집에 들어가서 임신하자는 말로 위로했다. 한국으로 부모님을 만나러 가자고 할 때는 집이 완성되면 새집으로 부모님을 초대하자고 했다. 휴가 때 다른 동료들처럼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시간도 그렇지만 집수리에 비용이 많이 들어 돈을 아껴야 하기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설득했다.

3

레오의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시게 된 3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레오의 인생에 첫 위기가 찾아왔다. 아버지만 살아남아 퇴원하신 이후 집수리 일이 정지되었다.

팬데믹 기간이라 일꾼을 구해서 집수리를 계속할 수도 없었다.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새집으로 이사하였다. 태희는 그동안 참아온 삶으로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고 레오 역시 어머니의 소천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에서 회복을 못 한 채였다.

혼자 사는 아버지를 모셔 와서 같이 살자는 레오를 태희가 완강하게 거절하는 데서 시작된 갈등으로 부부의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것저것 집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레오와는 달리 태희는 이제 노인이 다 된 아버지와 한집에 살게 되면 잦아지는 노인 병간호는 그녀의 임무가 될 것이라며 거절했다. 아직 거동할 수 있을 때 미리 양노원 으로 보내서 적응하시도록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레오는 이제 우리도 여행을 다닐 수 있는데 집을 비워 놓고 다닐 수가 없으니 아버지가 같이 살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태희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생만 하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임신도 못 했지만, 이제는 다 늦었다며 울던 태희는 어느 날 그를 떠나갔다.

4

레오는 빗소리를 듣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근처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겸한 술집을 경영하는 친구 스테판의 전화가 그를 깨웠다. 한밤중까지 일하고 이제 청소를 끝냈다며 아침을 같이 먹자고 했다.

“어제 해둔 반죽으로 빵을 구울 테니 와서 내가 만든 딸기잼을 발라 먹자구!”

레오의 외로움을 아는 친구로 특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면 더하리라는 것을 고려한 친구다.

“어제 생육 대리점에 갔는데 네가 좋아하는 갈비가 싸서 사 왔으니 가지고 가!”

레오는 우산을 들고 나섰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종일 내릴 조짐을 보였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던 레오는 스테판과 마주 앉아 있는 낯선 사람을 보며 흠칫 놀랐다. 동양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레오! 놀랄 것 없어! 어제저녁 늦게 배가 고프다며 들어선 이 친구는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는 한국인이야. 잘 때가 없다고 하기에 거실 소파에서 자도록 해주었어. 같이 아침을 먹은 후 펜션을 찾아갈 거야!”

레오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를 버리고 떠난 태희에 대한 분노가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것을 의식하고 거부감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친밀함을 보이며 악수를 청해오는 그가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레오는 그와 한자리에 앉아 금방 오븐에서 나와 바삭바삭한 빵을 먹을 생각을 하니 입안에 쓴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스테판 미안해! 그 갈비를 가져와! 얼마나 큰 덩어리인지 봐야겠어. 혼자서 해 먹어야

하니…“

스테판은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 고깃덩어리를 가져왔다. 스테판은 갈비를 포장지에서 풀어 상위에 올려놓으며 레오의 눈치를 살폈다.

“이거 봐! 네가 원하는 부분을 말해봐!”

레오가 갈비를 들여다보는데

“오! 품질 좋은 갈비네요. 정말 좋아 보이는데요! 갈비는 양념에 절여서 구이를 하면 정말 맛있지요.”

한국인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레오는 그때야 의자에 앉으며 한국인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돌아다니는 여행자의 거친 얼굴이었다.

“갈비구이 양념을 할 줄 압니까?” 레오가 묻자, 한국인은 두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서울의 작은 식당의 요리사로 갈비구이와 갈비찜을 전문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레오는 오랫동안 먹지 못한 갈비구이 맛을 생각했다. 한국인 여행자는 그날 저녁 레오의 집 손님이 되었다. 다음날 레스토랑 문을 닫는 월요일에 스테판은 주위의 단골손님들을 전화로 불러 갈비구이에 초대했다. 샐러드와 감자튀김이 같이 나왔다. 레오는 갈비를 손에 잡고 뜯어먹으며 태희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듯, 손으로 갈비구이를 잡수시네요!”

레오는 요리사의 감탄사를 들으며 갈비 고기를 뜯다가 몰래 눈물을 닦았다.

1477호 14면, 2026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