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존치 요구 목소리 “모두가 소녀상을 원한다”

7월 31일 오후, 독일 베를린 미테(Mitte)구에 자리 잡은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주변으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어린아이 손을 잡은 아빠와 모녀, 노부부, 혼자 길을 걷던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녀상을 지켜보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어로 ‘용기’라는 뜻을 가진 아리를 이곳에 세운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 회원들은 독일어로 “아리는 용감하고, 우리는 함께 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엽서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소녀상의 취지를 설명했다.

미테구청이 앞서 소녀상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코리아협의회는 구청의 결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날 열었다. 같은날 소녀상 철거에 반대하는 미테구 주민 2000여명의 서명을 모은 주민청원서도 미테구의회에 전달했다. 소녀상 앞엔 70여명이 모여 최윤희 무용가와 베를린 한인 2세들로 구성된 전통 그룹 ‘무악(Muak)’의 공연을 지켜봤다. 무악은 기원무와 진도북춤, 모듬북 공연을 통해 소녀상의 존치를 기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공연이 끝난 뒤 “미테구청장은 예술작품의 경우 최대 2년까지만 (지역에) 설치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늘 예외는 있었다. 지역 주민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베를린) 소녀상의 존재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 존치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을 받기 위한 큐아르(QR) 코드가 적힌 엽서를 집회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며 청원을 부탁했다. 단체는 현재 약 3만7천명이 참여한 온라인 청원에 5만명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엽서엔 슈테파니 렘링어 미테구청장의 주소도 적혀 있어 직접 항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이번 집회에 처음 참여한 터키인 꾸눌 샤힌(20)은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엽서를 수십장 챙겼다. 그는 “이곳에서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여성으로서, 공감과 힘을 다해 여러분을 이해하고, 돕고 싶다”고 말했다. 코스타리카 출신의 역사학자로 미테 지역에 사는 호세 빈센트 무릴리오(35)는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받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베를린이야말로 이런 활동을 지지해야 할 도시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미테구민 청원서를 받은 독일 녹색당 소속의 엘리자비타 캄 미테 구의회 의장은 “(서명에 동참한) 이들의 참여에 감사한다. 우리는 모든 서류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한 뒤 의회에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청원제도를 활용해 시작한 이번 서명운동은 미테구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통로가 되며, 구청과 구의회는 1천명 이상이 청원한 주민 안건은 정식으로 다뤄 의결 여부를 정해야 한다. 최종 결정까지는 최소 2개월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코리아협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인 8월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엔 베를린의 일본 여성단체인 ‘일본 여성 이니셔티브’와 연대해 집회를 열 예정이다.

시민들이 지켜온 베를린 소녀상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공부지’에 세워진 베를린 소녀상은 시작부터 마치 현재를 예견하듯 그 운명이 파도와 같았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2020년 8월 14일에 세우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하신 날이라 그날 (제막식을) 하려고 했는데,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도로공사를 하게 됐어요.” 한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도로 공사 때문에 소녀상 제막식은 강제로 미뤄졌고, 그해 9월 28일에야 처음으로 시민들한테 선보였다. 하지만 제막식이 늦어지면서 소녀상은 예상외의 일을 겪게 된다.

“제막식이 8월 14일이면 어땠을까요.” 마치 운명처럼 9월 28일 소녀상 제막식 직후 일본 외무상과 독일 외교부 장관의 회담이 알려졌다. 10월 1일 일본 극우언론 <산케이>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파리에서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부 장관을 만나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테기는 실제로 독일에 소녀상이 일본 입장과 어긋난다면서 철거를 요청했다. 이전까지 일본 정부의 물밑 로비는 있었지만, 일본 고위 관계자가 소녀상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베를린시 정부는 미테구청에 압력을 가했고, 구청은 소녀상이 세워진 지 10일째 철거 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전한 공문에는 ‘소녀상이 독일과 일본 간의 관계를 어렵게 하고, 베를린시에 있는 100개국 이주민들에게 불화를 일으켰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7일 안에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벌금 2500유로를 물어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다행히 독일 시민 사회의 반응은 일본의 바람과 정반대였다. 한정화 대표는 지인 소개로 변호사 도움을 받아 베를린 행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서를 내 철거를 막았고, 단 이틀 만에 시민 1만 2000명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그 사이 독일 언론도 관심을 갖고 보도했고, 저명한 교수부터 일반 시민까지 수많은 이들이 구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미테구청장이 나중에 면담할 때 농담하듯이 ‘정말 많은 곳에서 메일이 왔는데, 북극에서도 메일을 받았을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였어요.” 이 사건으로, 베를린 내에서도 소녀상이 아시아만이 아닌 인류 보편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냈음에도 소녀상은 그간 계속해서 존치 위협을 받았다. 미테구는 지난한 과정 끝에 2022년 9월 베를린 소녀상 존치를 2년 연장했지만, 어디까지나 영구적인 존치는 아니었다.

한 대표는 소녀상의 입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로·녹지청 공문엔 어떤 일이 결정 날 때까지를 전제로 한 ‘용인’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망명 신청자와 똑같아요. 망명 신청 허가가 안 되면 강제로 추방되거든요. 소녀상의 운명이 꼭 망명 온 사람 같아요.” 그 불안한 틈 사이를 이번에 일본 정부가 파고든 것이다.

1374호 17면, 2024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