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30년의 주역들이 재독한인 사회 미래를 설계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보훔 한인회장 이연우입니다.

먼저 우리 재독 동포 사회의 오랜 벗, 교포신문 창립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독일로 건너와 언어도 서툴고 낯설고 외로웠던 초창기 시절, 제게 교포신문은“이 머나 먼 독일 땅에도 나 같은 한국인이 있구나” 하는 위로이자, 나침반 같은 든든한 안내자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30주년을 축하하며 재독 한인 사회의 다음 30년을 이야기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새로운 30년의 주역들이 재독 한인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다”입니다.

저는 이 주제를 “닫힌 민족 공동체에서 열린 한국문화공동체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 앞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위기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한인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1세대 선배님들이 고령화되면서 모임이 줄어들고, 일부 지역 한인회는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독일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혐오의 분위기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커뮤니티 조직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재독 한인 사회 내부도 이미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보다 독일어가 편한 2세•3세, 다문화 가정의 자녀, 주재원•유학생•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K-팝과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타문화권 출신의 현지인 친구들까지, ‘한국과 연결된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폭넓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한인 커뮤니티는 혈통과 국적 중심의 닫힌 구조로 비칠 위험이 있습니다. 이제는 재독 한인 사회가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끼리의 모임”을 넘어 “한국문화로 연결된 현지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전환의 핵심 가치는 개방성과 민주성입니다.

첫째, 한국계와 독일인,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현지인 그리고 다문화 2세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들을 꾸준히 넓혀 가야 합니다.

둘째, 회장단 선출과 주요한 의제 결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회원들의 직접적인 온라인 참여를 도입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말 그대로 ‘작은 민주주의의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단순한 K-문화 흥행행사를 넘어서

한국의 민주화 역사, 인권, 이민자 권리와 같은 주제를 함께 다루며 세계시민적 감수성을 키워야 합니다.

넷째, 시청•학교•시민단체 등과 연대하여 다문화 주간, 반인종주의 캠페인,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한인 커뮤니티는 지역사회의 당당한 시민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확장입니다.

기존 한인 커뮤니티의 틀을 유지하되, 그 안에 ‘한국문화 공동체’나 ‘한국문화 교류센터’와 같은 새 조직을 병행하여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전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1세대 원로들의 역사와 자리를 존중하며, 그 삶을 기록하고 전시하고 책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독일 사회 속에 한인 이민사를 정식으로 새기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30년은 디지털 전환과 청년 세대의 참여가 관건입니다. 이를테면 QR코드를 활용한 회원증, 온라인 투표,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명실공히 ‘회원이 주인인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나아가 한국과 독일을 잇는 교육•문화•커리어 플랫폼으로 발전해, 젊은 세대에게 실질적인 미래의 기회까지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의 뿌리는 사실 1세대의 삶 속에도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도우며 존엄과 권리를 지켜 온 그분들의 경험은 바로 민주주의의 씨앗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연대와 포용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한국문화공동체는 1세대의 기록과 젊은 세대의 이야기, 그리고 독일 현지인 친구들의 이야기가 만나 세계시민적 기억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교포신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30년, 교포신문이 재독 한인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더욱 열린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30년 후, 교포신문 60주년을 맞는 날 우리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닫힌 민족 공동체로 남아 있을까요, 아니면 한국문화를 매개로 다양한 이웃과 손을 잡는 열린 한국문화공동체로 서 있을까요?

저는 후자를 꿈꿉니다. 닫힌 민족 공동체에서 열린 문화공동체로 — 그 길 위에서 교포신문과 모든 재독 동포 여러분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436호 15면, 2025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