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황재인,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인문학적 렉처 콘서트 주인공
2026년 2월 6일 금요일 오후 4시, 쾰른대학교 음악학과 음악 강당에서는 작곡가이자 해금 연주가 황재인의 렉처 콘서트 〈해금의 앞면과 뒷면 Die Vorder- und die Rückseite der Haegeum〉가 열렸다.
이 공연은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라, 하나의 악기를 둘러싼 사유와 설명, 그리고 연주가 결합된 인문학적 렉처 콘서트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공연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기획되었다. 해금을 사랑하고, 이 악기를 학문적•실천적으로 공부해 온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하나의 악기와 한 명의 연주자를 ‘초대하여 함께 사유하는 방식’의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총 여섯 개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그중 다섯 곡은 모두 황재인의 작품이었고, 마지막 한 곡은 K-YUL 해금 앙상블과 함께한 합주였다.

공연의 첫머리는 정악(正樂) 〈경풍년〉이었다. 정악은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궁중과 사대부 계층이 향유하던 예술음악으로, 빠른 기교나 즉각적인 감정 표현보다는 소리의 균형, 음과 음 사이의 여백, 그리고 듣는 태도 자체를 중시하는 음악이다. 이번 공연에서 드러난 해금의 소리는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활의 압력과 속도를 극도로 절제한 상태에서 형성되는 음의 밀도가 두드러졌다. 소리는 넓게 퍼지기보다는 중심을 단단히 유지했고, 음과 음 사이에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긴 호흡이 남았다.
두 번째 곡은 지영희류 해금산조였다. 앞서 연주된 정악과 달리 산조는 처음부터 독주를 전제로 형성된 장르이며, 개인의 해석과 즉흥성이 적극적으로 허용되는 음악이다. 이날 연주는 진양조에서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이어지며 그 상승 곡선을 분명히 그렸다.
황재인의 해금산조 연주에서는 활의 날렵함과 강한 음의 농도가 특히 두드러졌다. 이 곡은 ‘해금의 앞면’으로서 전통을 어떻게 호출하는가를 보여주는 서론이자, 이후 전개될 창작곡들을 위한 청각적•개념적 워밍업에 해당한다. 중요한 것은 이 전통의 호출이 보존된 재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선 두 곡을 통해 청중은 해금의 ‘앞모습’, 즉 한국 전통음악의 규범적 얼굴을 경험했다. 이제 작곡가 황재인의 음악 세계로 진입한다.
그 경계에 놓인 작품이 바로 해금산조 독주자를 위한 에튀드 〈만반(萬般)이다. 〈만반〉은 해금산조 연주를 위한 만반의 준비, 곧 산조 연주자가 감당해야 할 모든 신체적•음악적•정신적 조건을 점검하는 작품이다. 세 곡을 관통하는 인상은 통제 가능한 미세 반응에서 시작해 점차 통제 불가능한 증식과 분화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통해 황재인은 해금의 ‘뒷면’, 곧 전통의 그림자이자 창작의 실험실을 청중 앞에 펼쳐 보였다.
독주 해금을 위한 〈둘 묶어내기〉(Upbinding the Two, 2021)는 해금을 ‘서정적 독주 악기’로 규정해 온 관습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작품이다. 황재인은 이 곡에서 해금을 애절하고 아름다운 노래의 매개체로 한정하지 않고, 적극적인 주법 변형과 연주 행위의 재조직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비르투오소적 음향 가능성을 전면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주법은 중음주법과 잉어질이다. 황재인은 이 두 주법을 단순히 병치하지 않는다. 각각을 변형•확장한 뒤 결합함으로써, 두 주법이 만들어내는 음향을 ‘효과’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소리가 생성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구조적 장치로 전환한다. 약 12분에 걸쳐 전개되는 〈둘 묶어내기〉는 전통과 현대, 주법과 음향, 기술과 표현이라는 이분법을 지속적으로 무력화했다.
〈둘 묶어내기〉가 해금의 물리적 구조와 연주 행위를 전면화하며 ‘비일상적 음향’을 밀어붙였다면, 다음 곡 〈엄마야, 누나야〉는 그 긴장을 전혀 다른 결로 전환시키며 황재인의 음악 세계가 확장주법의 실험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드러낸다. 공연에서 이 편곡은 첼로 MR과 함께 제시되며 무대의 청각적 온도를 바꾸었다. 앞선 곡들에서 구축되었던 밀도와 마찰의 음향이 물러나고, 대신 석양이 넘어가는 시간대의 빛처럼 얇고 따뜻한 울림이 열렸다.
케이율과의 합주는 앞서 언급했듯, 전문 연주자와 학습 공동체가 같은 무대 위에서 시간을 공유한다는 상징적 제스처로 충분히 기능했다. 이어진 짧은 무대는 부채를 든 세 명의 K-pop 댄서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언뜻 보기에 해금의 시간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 춤은 밀양아리랑을 주제로 부채를 들고 구성된 안무로, 전통 선율이 지닌 반복과 회전의 리듬을 신체의 움직임으로 번역한 장면이었다.
이날의 공연은 ‘해금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대신, 해금이 어디까지 스스로를 확장될 수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정악의 절제에서 산조의 밀도, 에튀드의 신체적 훈련을 지나, 확장주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향의 지층까지, 서로 다른 층위들은 하나의 발전 서사로 정리되기보다, 각기 다른 시간 감각으로 공존했다.
그 공존은 설명과 연주가 번갈아 놓이던렉처 콘서트의 형식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중의 태도였다.약 90분 동안 공연장은 거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도로 집중된 침묵을 유지했고, 그 침묵은 거리감이 아니라 동참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듣는 법’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글 |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 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 K-YUL 음악감독 겸 단장
1448호 18면, 2026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