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
3월 28일, 베를린의 라이니켄도르프에서 열린 제19차 자선 “한국문화의 밤”은, 베를린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들 가운데도 전통과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이 행사는 2006년부터 코로나를 제외하고 매년 이어져 온 행사로, 한국 문화의 가치를 독일 현지에서 꾸준히 이어 온 모범이자 상징이라 할 만하다.
특히 이 행사를 개최하는 소프라노 박모아 덕순 단장은 20년 동안 매년 다양한 한국문화 (한국음식, 고전무용, 고전악기, 한국민요, 가곡 등)를 독일청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11년 전 독일인 멤버들로만 구성된 혼성합창단 “도라지합창단”을 창단하여 한국민요와 가곡을 지도해서 매년 3-4번 정도 연주를 하고 있다.
소프라노 박모아 덕순(Park-Mohr Ducksoon) 단장의 초청으로 방문한 공연장은 생각보다 넓고 규모가 매우 큰 극장이었다. 청중이 150명 이상 와야 분위기가 꽉 차는 것처럼 느껴졌고, 공연 시작이 다가오자 관객이 점차 모여 들었다. 90%의 관객들이 독일인들 중심인 것을 보면서 박모아 덕순씨의 티켓 파워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20 년 전 처음부터 이 행사의 후원자이신 전 독일 연방 국회의원인 젬프리츠키(Detlef Dzembritzki) 씨의 축사를 이어 양상근 주독일대사관 문화원장님도 방문하셔서 20년간 이어온 이 역사 깊은 자선 한국문화의밤 을 축하해 주셨다,

이번 공연 수익의 일부가 베를린에 거주하는 파독 간호사들을 돕는 협회인 “해로”에 전달된다는 소식은 독일 내 한국 교민사회의 상부상조의 전통을 또렷이 확인시켜 주었다. 파독 간호사 및 광부의 역사로 시작하는 한독교류협력관계는 한국의 빠른 경제발전의 큰 발자취로 기억되고 할 수 있다.
1963년 최초 파독광부 파견 및 1966년 최초의 파독간호사 파견과 함께 60년 넘는 양국의 협력 역사는 오늘날 음악과 자원봉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젊은 이민 세대가 이들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한독 교민사회에 대한 애착과 독일 사회로의 편입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자선 “한국의 밤” 수익이 독일 유일의 한인노인복지기관인 “해로”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소프라노 박모아 덕순씨와 도라지 합창단의 활동을 더욱 응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본다.
공연은 오후 5시에 시작되어 3시간에 걸쳐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도라지 합창단의 공연 외에도 클래식 3중주, 태권도 시범, 우리 무용단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어우러져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박모아 덕순 단장님의 연륜이 느껴지는 구성과 흐름이었다. 특히 클래식 3중주단이 연주한 김동진의 ‘가고파’의 아름다운 선율은 이번 자선 행사를 한층 빛내 주었다.

우리 무용단의 북춤과 부채춤은 단원 간의 오랜 호흡이 만든 완전체 무대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가야금과 한국무용의 융합 “소리춤” 무대는 베를린의 전통무용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태권도 표사범팀의 시범은 역동성과 건강미를 동시에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의 꽃은 단연 도라지 합창단의 무대였다. 독일인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이 어려운 한국발음의 곡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소화해 낸 점에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10곡은 한국 가곡의 대표곡들을 망라하듯 선곡되었다. 특히, “보리밭”이나 “그리운 금강산” 같은 유명 곡들 외에도 “섬집아기”처럼 개인적으로 애착이 깊은 곡도 포함되어 있어 더 큰 감동을 주었다. 특히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곡인 “홀로 아리랑”은 흥과 하나됨이 관객석까지 차오르는 듯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행사를 마무리하며 관객들과 함께 부른 “고향의 봄”은 타향살이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한꺼번에 떠올리게 했다. 피아노 반주를 맡은 연주자 역시 훌륭하고 깔끔한 연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20년간 매년 이 행사를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박모아 덕순 단장님의 뛰어난 추진력과 뚝심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처럼 새로운 행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실에서, 한 자리에 머물며, 하나의 주제로 매년 행사를 이어 간다는 것은 그가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의 숨은 후원자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불려진 “청산에 살리라”의 가사처럼, 긴 세월 동안 베를린에서 한독 음악교류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 오신 박모아 덕순 단장님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다만 이 행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후배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 지면을 빌려 강조하고 싶다.
이민 1세대가 마련해 준 문화교류의 토대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후배 세대가 그 짐을 나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453호 11면, 2026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