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산 감독: 독일 체육회가 선정한 7대 명감독에 올라 ④
한국과 독일의 스포츠 교류의 현장에서
한호산 감독은 1964년 동경올림픽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매번 독일유도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를 하였는데 단 한번만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하지 못하였다.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독일올림픽위원회(NOC)은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호산감독에게 독일 NOC에서 일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한국 사정을 잘 알 것이기에 올림픽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체 선수단 관리를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다. 한감독은 한국을 떠난 지 25년 만에 독일 올림픽 선수단과 함께 귀국하여, 한독체육계 교류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락하였다. 이 당시 독일 올림픽 선수단 대변인으로 활약한 이가 현재 국제올림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다.
서울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조그만 어려움만 생겨도, 모두들 “한호산”을 찾았다. 한감독은 소속인 독일팀을 위해, 그리고 조국 한국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두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보람이 큰 시간이었다.
한호산감독은 독일유도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평소부터 한국과 독일의 스포츠 교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 유도지도자들의 유럽 진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선수들의 교류에도 정성을 쏟았다.
일본이 유도의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다른 유럽국가들이 일본으로 훈련을 떠날 때도, 한감독은 선수들을 이끌고 매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참가 한-독 양국 선수들의 친목을 도모하였고, 이를 통해 양국 유도계의 보다 깊이 있는 교류로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오랜 기간 대표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한호산 감독은 독일은 물론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지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과도 깊은 친분을 맺게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감독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막판 득표활동에 큰 역할을 할 수가 있었다.
은퇴 그리고 명예감독으로 새 출발

2001년 뮌헨에서 열린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한호산감독의 36년 독일유도 대표팀 감독의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은퇴식에는 독일 정치계 인사는 물론 체육계의 인사들 그리고 자크 로케 IOC위원장, 토마스바흐 현 IOC위원장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인사들이 참가하여 한감독의 은퇴식을 지켜보았다.
이 자리에서 독일유도연맹으로부터 독일에서 유일한 9단을 수여받았고, 독일 체육회가 선정한 7대 명감독에 올라 독일 축구영웅 베켄 바우어 감독과 함께 독일 명예감독으로 추대되는 영광도 누렸다.
은퇴식을 마친 후, 한호산 감독에게는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
유도를 떠나 생활한다는 것은 애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보다 의미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한감독은 지도자 강습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로 하였다.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 시에도 독일은 물론 유럽과 동구권, 러시아까지 유도 강습을 하였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늘 후일을 기약하곤 하였다.
한호산 감독이 지도자 강습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도 독일 정부의 배려였다.
서독정부는 쾰른 체육대학 인근에 Trainer Akademie를 설립하고 1976년 제 1기생을 모집하였는데, 한감독은 서독정부의 배려로 1기생으로 입학 3년간 수학하고 1976년 졸업하며 지독자 자격증 Diplom을 취득하였다. 28명이 입학하였는데 그 가운데 16명이 졸업하고, 나는 전체 2등의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한호산 감독에게 유도 강습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동구권과 러시아 선수들의 순박함이었다. 이들은 선진 유도를 습득하려는 자세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무척 한감독의 마음에 들었다.
1989년 모스크바에서 대회가 있었고, 강습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당시 한호산감독은 독일체육회 총회 참석차 모스크바에 가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러시아 선수들은 한감독 오는 줄 알고, 한감독의 60회 생일 잔치를 성대히 준비하였고, 그의 사진을 새긴 커다란 도자기를 전달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한감독의 불참을 몹시 아쉬워하며 독일팀을 인솔한 코치에게 도자기를 전달하며 60회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한호산 감독에게는 이점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은퇴를 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나라가 러시아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구 레닌그라드)에서 강습회를 열며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였다.
또한 여러 대회에서 대회 시상자로서의 초청도 빈번하였다. 한호산감독은 이러한 요청에 가급적 모두 참여하며, 독일 제자들뿐만 아니라 나날이 발전하는 유럽 유도를 직접 경험하며, 유도인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자신을 그들을 통해 느낄 수가 있었다.
독일 대표팀 감독에서 은퇴한 뒤, 자주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독일 선수단을 인솔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한국 유도계를 돌아보는 경우도 있다.
한호산감독은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할 때인 1960년대만 해도 일본 선수만 보고도 기가 꺾이곤 했는데, 이제는 우리 한국선수들의 투지뿐만 아니라 기술이 상당히 뛰어나, 한국 유도 선수들의 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며 후배들을 자랑스러워한다.
한호산감독의 독일생활도 이제 62년이 되었다.
유도와 함께 한 그의 인생은 1961년 파리세계선수권대회에 5위에 입상하여 그해 대한민국체육상을 수상하고, 1999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을, 2004년에는 독일정부로부터 민간인 최고 훈장인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1423호 28면, 2025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