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수 개인정보 보호책임자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에티켓, 개인정보 보호(3)
교포신문사는 독일에 진출한 기업과 재독 한인들을 대상으로 이충수 개인정보 보호책임자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 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이충수 개인정보 보호책임자는 다년간 국내 기업에서 개인정보 보호책임자(DPO/Datenschutzbeauftragter)로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교포신문의 개인정보 보호책임을 맡고 있다. lee@mygood.company
임대차계약 전에 받는 질문, 다 답해야 하나요?
주택을 임대받고자 하는 경우, 임대인은 임차인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제적 신뢰도를 판단하기 위하여 다양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때 요구되는 정보에는 성명, 주소, 직업, 소득 수준 등이 포함되며, 이러한 개인정보의 제공은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흔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보는 단순히 제공하거나 수집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관련 법령에 따라 엄격히 처리되어야 합니다.
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및 독일 연방개인정보보호법(BDSG)은 임대인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보관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임대차 과정에서 임대인이 준수해야 할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으로, 2024년 1월 독일 연방 및 주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관 협의회(DSK)에서 발간한 최신 지침서(Orientierungshilfe)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어떤 법적 근거로 정보를 요구할 수 있을까?
임대인이 임차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법적 근거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첫째, 임대차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정보의 수집이 이에 해당하며, 예컨대 성명, 주소, 월 소득 등의 정보는 계약서 작성 및 임대인의 신원 확인에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됩니다. 둘째, 정당한 이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 수집도 가능하며, 이는 예비 임차인이 향후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납부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한 신용정보 조회 등에서 적용됩니다.
이처럼 법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굳이 임대인이 동의서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많은 임대인들이 “서명만 해주세요” 하며 동의서를 내미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GDPR에 따르면, 동의는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어야 진짜 동의입니다. 계약을 걸고 받는 동의는 사실상 강요에 가까워서 법적으로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미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 동의서를 요구하면 ‘이건 내가 안 줘도 되는 정보였나?’ 하는 오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권장되지 않습니다.
집 보기부터 계약 전까지, 언제 어떤 질문이 가능할까?
독일의 개인정보 감독기관은 임차인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시점을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별로 수집이 허용되는 정보와 금지되는 정보의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A. 초기 단계: 주택 방문 시 또는 중립적 문의 단계
• 수집이 허용되는 항목: 성명, 주소, 신분증 제시(단, 복사 또는 저장은 허용되지 않음)
• 사회주택 해당 시: 주거자격증(WBS) 보유 여부
• 수집이 금지되는 항목: 소득 수준, 직장명, 가족관계 등 경제적•사적 정보 일체
B. 입주의사 밝힌 이후
• 수집이 허용되는 항목:
o 입주 예정 인원의 수 및 연령 구분(성인/아동 여부)
o 직업명, 고용주 정보, 대략적인 월 소득 수준
o 최근 2년 이내의 신용불량 또는 개인파산 여부
• 수집이 금지되는 항목:
o 종교, 인종, 국적 등 민감정보
o 범죄경력, 진행 중인 수사 등 형사 정보
o 결혼 예정 여부, 임신 여부, 자녀 계획 등 사생활 관련 정보
o 정치적 성향, 정당 및 임차인협회 가입 여부
o 고용 기간, 부채 내역 등 과도한 재정 정보
o 이전 임대인의 이름, 연락처 등 제3자 정보
C. 계약 직전 단계: 임대인이 특정 임차인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이후
• 요청 가능 항목:
o 소득 증빙 자료: 예를 들어 급여 명세서, 세금 신고서, 은행 이체 내역 등 (불필요한 항목은 임차인이 임의로 가림 가능)
o 제한된 범위의 신용 정보: 예를 들어 SCHUFA 점수 등 기본적인 신용 평가 자료
o 과거 임대료 납부 이력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예를 들어 임대료 입금 내역이 확인되는 계좌 거래내역 또는 임대료 영수증 등
• 요청이 제한되는 항목:
o 광범위한 ‘개인정보 열람권 보고서’ 전체
o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동의서 서명을 강요하거나, 그를 통해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신용정보 제공 시 주의할 점
신용조회는 예비 세입자의 경제적 신뢰도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다음과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 신용조회를 하기 위해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요청해야 합니다.
– SCHUFA에서 받은 점수 등은 가능하지만, 개인정보 전체가 담긴 ‘자기 열람보고서 전체’를 제출하라고 하는 건 과도합니다.
– 필요한 경우, 세입자가 직접 납부 내역을 일부 가려서 제출하거나 간략한 신용확인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의 개인정보 처리 시 유의사항
임대인이 예비 세입자의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에는, 그 수집 목적과 활용 용도, 보관 기간 등에 대해 사전에 명확히 고지해야 하며, 단순한 편의나 관행에 따라 과도한 정보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계약 체결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민감정보(예: 종교, 정치 성향 등)는 원칙적으로 수집이 금지됩니다. 수집된 정보는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즉시 삭제해야 하며,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에도 불필요하게 보유해서는 안 됩니다.
2024년 지침에 따르면, 차별금지법(AGG)에 따른 법적 대응 가능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개인정보의 최대 보관 기간은 일반적으로 6개월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수집된 개인정보는 적절한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를 통해 제3자의 접근으로부터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정보주체인 세입자가 열람, 정정, 삭제 등을 요구할 경우 이에 대해 지체 없이, 통상 1개월 이내에 임대인은 해당 요청에 응답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는 시대에는, 임대인 또한 세입자의 정보를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처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보를 수집할 때에는 그 목적과 필요성을 명확히 고지하고, 수집 범위는 계약 이행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수집된 정보는 적절히 보관하고 정해진 시점에 맞춰 삭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숙지함으로써, 임대차 과정에서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나 오해 없이 실생활에서도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19호 16면, 2025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