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상트 헬레나 (St.Helena) 섬 발견

상트 헬레나 섬은 역사 속에서 나폴레옹의 유배와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유배지”로 기록되어 있던 섬이다. 1815년, 불란서 황제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테가 상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됨으로 해서 쓸모없는 유배지이면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섬은 아프리카 앙골라 해안에서 1859km, 남미 브라질 해안에서 3286km 떨어져 있는 남대서양의 중간 지점 정도여서 유배지로서 매우 적당한 곳이었다.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떠나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상트 헬레나 섬은 남대서양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넓이가 15km 길이가 11 km, 면적은 122 km2 정도의 작은 섬이면서 수도는 제임스타운 (Jamestown) 이다.

인근의 어센션 (Ascension) 섬과 트리스탄 다 쿠냐 (Tristan da Cunha) 섬을 합쳐도 425 km2 밖에 되지 않으며 우리나라 남양주시 (458 km2)나 평택시 (458 km2) 보다도 작은 섬이다.

현재 상트 헬레나 섬은 영국의 공동 해외 영토로 지정되어 있는 어센션 화산섬과 트리스탄 다 쿠냐((Tristan da Cunha) 섬조차도 각각 1000km 이상과 25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주 외딴 섬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졌기에 강대국에서 유배지로 이용했던 것이며 16세기까지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던 섬이다. 고립된 환경과 가파른 해안선 등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자연 조건이 너무나 나빴기 때문이었으며 섬의 주민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주 시켜 놓은 흑인 노예들뿐이었다.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 항해사였던 호아오 드 노바 (Joao de Nova)가 이 섬을 처음 발견했다. 그는 섬의 이름을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5월 21일을 기념하는 로마 황제 콘스타니우스 1세 (Constantinius I) 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헬레나 (Helena)로 지었다.

상트 헬레나 섬의 최초 주민은 군인이었는데 그는 죄를 짓고 유배되어 30년 동안을 이 섬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상트 헬레나가 무인도였을 때 포르투갈 사람들은 항해에 필요한 재목과 물을 구할 수 있었던 점을 착안하여 헬레나 섬에 생활필수품과 과일과 채소 등을 반입해 들였다. 두 채의 건물과 성당까지 건설하기도 했지만 이곳에 정착해서 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섬에 정착한 첫 포루투갈 사람은 페르디난드 로페즈(Ferdinand Lopez) 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포르투갈 사람 호아오 드 노바가 이 섬을 첫 발견한 이후 외국인으로 첫 기항한 사람은 영국인 토마스 카벤디시 (Thomas Carvendish) 였다. 이 후부터 상트 헬레나 섬은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는 선박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어 왔다.

1870년대 중반까지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항해의 요충지로 번성하기도 했으나 1869년 에집트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격감하게 되었다.

나중에 포르투갈은 이 외딴섬을 포기하는 차원에서 돌보지 않았고 찾아 가지도 않았다. 그 후 1633년 네덜란드가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섬을 점거했다거나 요새를 지었다는 증거가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영유권 주장을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1651년 네덜란드가 남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주변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까지 헬레나 섬은 포르투갈로부터 버려진 상태로 남아 있었다. 포르투갈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쓸모없는 섬으로 여겨졌기에 무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동해의 독도가 한국령이라고 고증할 수 있는 증거문서가 나타나고 지도마저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는 물론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에서까지 우리의 독도를 일본 섬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일본 영토지만 대한민국이 사용하고 있다” 는 엉터리 교육을 하고 있다.

증거와 고증이 없는 역사 앞에서는 네덜란드가 상트 헬레나 섬을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제라도 좀 배워갔으면 좋겠다.

포르투갈이 상트 헬레나 섬의 영유권을 포기하자 영국이 그 뒤를 이어 받았다.

1657년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이 섬의 행정권을 인정해 주었다. 동인도 회사란 대항해가 시작되던 시대에 유럽 7개 해양국에서 아시아와의 교역을 독점하기 위해 세운 무역회사이다. 영국인들은 이 외딴 섬 제임스타운에 요새을 구축했는데 이곳이 나중에 수도가 되었고 군대를 상주시켰다.

1815년 12월 10일에 나폴레옹이 유배를 당해 상트 헬레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전직 총독의 거주지였던 롱우드 하우스 (Long Wood House) 에 머물렀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나폴레옹이 죽기 전에 헬레나 섬에서 나오는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이후 불란서에서는 헬레나산 커피가 유명해지기도 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던 나폴레옹은 남으로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북으로는 모스크바까지 침공해 들어갔다가 참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불멸의 영웅인 것만은 틀림없다.

프랑스 혁명의 유산인 공화정치를 타파하고 황제의 관을 손수 썻던 나폴레옹이 유럽전체를 호령하기도 했었지만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망한 이후 워털루 전쟁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마저 패배하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이 헬레나 섬에 유배된 것은 영국 법원이 형사 소송 절차에 따라 진행한 재판 결과에서였거나 영국과 불란서가 외교적 관례에 따라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보낸 것이 아니라 영국이 승전국으로서 나폴레옹을 강제로 체포해서 유배지로 보내 버린 것이다.

영국은 혹시 있을지 모를 나폴레옹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섬에 육군을 상주시켰음은 물론 해안 따라 해군까지 주둔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감시케 했다.

불란서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이 섬에 유배당한 후 사망한 곳이라고 해서 불란서 섬으로 알고 있겠지만 1659년부터 영국 자치령이 된 섬이다. 그래서 섬의 공용어도 영어이고 화폐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그려진 파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유언장에는 “나는 영국의 소수 집권층이 고용한 살인자에 의해 예상보다 일찍 죽어가고 있으며 영국은 절대로 나에 대한 복수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내가 죽게 되면 시신을 부검해서 뱃속을 자세히 조사한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해 달라”고 했다.

나폴레옹이 롱우드하우스에서 작성한 이 유언장은 불란서 국립기록 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

1443호 22면, 2026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