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로의 언저리에서

최월아

“혹시 R-A을 아세요? 옛날에 무척 친했는데 어쩌다 연락이 끊어지고는 못 찾고 있어요.” “글쎄 모르겠네.”

지난 유월에 후배네 집에서 동문모임을 가졌을 때 후배사위가 묻는 말에 모르다고 일축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찾아주고 싶어졌다. 이름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며칠 지났다고 이름이 아리송했지만 알만한 곳에 수소문을 했다. 몇 사람 건너 R-A의 부모님이 누구란 걸 알아냈다. 마침 그 부모님은 아는 분이었다. 오래 전에 도르트문트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신 분들이었다. 이왕 발동한 오지랖에 다시 한 번 여기저기 들쑤셔 그 분들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안녕하세요, 저 도르트문트 최월아 예요, 기억하시는지~” “알다마다, 그렇잖아도 자기가 연락처를 알고 싶다 해서 당연히 알려주라 하고는 자기 생각을 많이 했지, 옛날 생각하며” 우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누가 R-A을 찾는지? “제 후배의 사위 I-S가 아드님 R-A와 친하게 지냈는데 소식이 끊겼데요. 꼭 다시 찾고 싶다 하더라고요.” “아~, I-S 란 이름을 들은 것 같네, 아들친구들 이름을 거의 모르는데” 하셨다.

서로 반가이 연결되기를 바라며 둘의 연락처를 교환하고도 통화가 길어졌다. 나보다 선배이신 그분이 “나이 때문인지 그렇잖아도 요즘 도르트문트 살 때의 생각이 부쩍 난다” 고 했다. 그렇다, 그 어느 나라 보다 빠른 속도로 최첨단을 향하고 있는 고국의 화려함에 반세기 전에 박제된 우리들의 수수한 기억과 추억의 장면은 사라진지 오래고 소박한 그리움도 창백해진다.

언어의 장벽을 무시 한 채 빈손으로 지구를 가로질러 날아와 운명인지 숙명인지에 휩싸여 평생 나그네가 되어버린 우리들. 어느새 이국땅에서 생을 마무리할 단계에 다다라버렸다. 그래서인가 먼 고국에 대한 기억보다 독일에서 운명처럼 어울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지낸 그 시절이 더 그립다. 우린 공감하며 공유하고 있는 지난시간들의 회상이 깊어졌다.

그분은 간혹 도르트문트 한인들의 소식을 흘려들으면 안타까운 소식이라며 애석해 하셨다. 그 동안 우리 곁을 떠난 회원들의 죽음을 전해 들으신 모양. 요즘 들어 알만한 분들이 하늘나라로 가시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함께 어울렸던 분들이 앞서 가면 누구나 짠한 마음이 들고 이젠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남겨진 친우와 동료들은 슬픔과 함께 밤새 안녕으로 예고 없이 다가오는 앞날의 삶과 처지를 떠올리면서 숙연해지며 좀은 처량해 한다.

가는 길은 누가 먼저라는 순서 없이 예측을 불허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만성지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다. 세월에 묻혀 따라 온 퇴행성 질환일 경우는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일 때가 많아 통증으로 고생을 한다. 그러기에 가능한 의사방문 보다 걷기나 가벼운 운동 등으로 더 나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역스포츠 페어아인에 등록을 하면 수많은 종목 중 좋아하는 스포츠를 골라 단체로 즐길 수 있다. 회원비도 저렴하고 여러 가지 스포츠를 정기적으로 혼자가 아니고 함께이기에 동기부여가 되고 회원들과 어울리는 재미도 있다. 스포츠뿐 아니라 모임이나 취미활동으로 인한 유쾌한 시간도 건강유지에 크게 도움이 된다.

일 없는 노인생활이라지만 내게는 의사한테 가는 시간만큼 아까운 게 없다. 사고를 당하거나 현대의학을 필요로 하는 질환은 마땅히 의료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만성질환의 아픔은 사람들과 어울려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즐거우면 통증을 잠깐 잊거나 완화시킨다. 크게 힘들지 않은 봉사활동도 참 좋다. 지역마다 시청이나 종교단체, 비영리기관에서 크고 작은 자원봉사를 주관하는 단체들이 있다. 봉사활동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될뿐더러 뿌듯한 자부심과 쾌감을 선사한다.

위에 언급한 동포 이세들의 재회가 성사되게 한 나의 오지랖도 아주 잠깐이나마 기쁨과 뿌듯함이 몸속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정기적으로 하는 봉사활동들 또한 약간의 피곤함이 따르지만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고, 쉴 수 있는 자유의 몸이기에 할만하다. 대가로 뭔가를 베풀었다는 만족감과 충만감이 조금은 쌓인다. 자원봉사는 기쁜 마음으로 회원들과 어울려 움직이기에 운동과 같은 효과를 덤으로 준다. 우리는 평생 중노동 직장생활을 해왔다.

정년퇴직 후 움직임이 줄어들어 오히려 뼈와 근육에 장애가 오는 수가 있다. 인간의 사지는 무리하지 않는 한 무조건 많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현대의학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걷는 것이 건강의 첫째 조건이란다. 예전과 달리 병원도 입원날짜를 폭삭 줄였다. 웬만한 큰 수술 후에도 당일 또는 다음날 바로 움직이게 하고 곧 재활운동을 하게한다.

반세기 전, 풋풋한 학창시절을 막 끝내고 꿈에 부풀어 날아 온 해외진출, 콧대 높던 젊은 나이에 만만찮고 얼얼하던 초창기 이민생활에 자존심 깎아내고 눈물 머금고 지은 미소와 상냥함에 부지런함을 보태 인정받았다. 그러다 얼떨결에 닥친 자녀교육에 지극과 정성을 투자하고 있을 때 고국의 부모님과의 작별로 허전한 우울감이 삐죽거렸다. 그럼에도 쳇바퀴 돌듯 멈춤 없던 일상은 어느 듯 자녀들의 독립으로 느슨해졌다.

이어서 출퇴근의 구속에서도 벗어난 정년퇴직, 희망의 자유생활이 펼쳐질 기대를 갖고 맞이했었다. 심호흡을 하는 것도 잠시, 온 몸 여기저기가 ‘이제 나 좀 돌봐줘’ 했다. 우리 안에 잠복해 있던 만성피로와 묵은 스트레스가 나른해진 틈을 타고 끼어든 거다. 그렇다! 우린 우리자신을 위함에는 너무 인색하고 무정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했다.

늦으나마 철학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부터 사랑하는 법을 익혀야했다. 만만찮던 인생을 거의 지나 온 이젠 더 넓고 높게,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마음을 비우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나를 맞추고, 갖고 있는 만큼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철학은 자녀들을 위해 남겨둘 생각을 버려야 가능하다. 제 갈길 가고 있는 자녀들은 우리들 젊었을 때보다 안정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나이가 초로인지 이미 노인인지, 이제라도 나를 위한 투자와 지속적인 운동과 작은 선행으로 갖는 행복한 순간들을 되도록 많이 갖도록 노력할 일만 남았다.

소박하지만 소소한 행복감과 충만감이 쌓이면 면역력이 왕성해지고 그러다보면 질병도 조금은 속도를 늦추리라 확신한다. 남은 생은 어렵더라도 귀찮음을 걷어낸 게으름 아닌 느긋함의 여유와 평안을 누리며 아름답게 노년기를 보내고 싶다. 이런 면에서 재독한인 단체에서 끊임없이 봉사하시는 분들은 아름답고 그분들의 노고에 진심어린 찬사와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격지 않은 운 좋은 세대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요즘처럼 세계정세가 불안정 하고 지구 곳곳에서 상상도 못한 대형자연재난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사와 불안정한 경제상황에 더 이상 직장걱정 안 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후변화의 참사는 독일까지 쳐들어 왔다. 연금생활 하는 우리는 지금껏 격어보지 못했던 내리쬐는 폭염을 겉 창문으로 차단한 시원한 실내에서 유 튜브나 책이라도 읽으며 지내면 된다. 눈 내린 아침엔 느지막이 커피 잔 들고 거실로 기어들어와 꼼지락거리는 아침햇살을 느긋이 즐길 수 있는 나이 듦이 고마울 때도 있지 않은가. 즐기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른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행복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1421호 16면, 2025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