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pl.-Ing. WONKYO INSTITUTE
제임스 쿡(James Cook) 첫 남태평양 탐험
1728년 제임스 쿡은 영국 머튼 (Mutton) 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탐험가이며 항해사였고 해양 지도 제작자였다.
제임스 쿡은 어려서부터 잡화점에서 허드레 일을 돕다가 13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을 도왔으며 18세가 되던 해부터는 배타는 것을 즐기면서 항해에 필요한 대수학, 삼각측량법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임스 쿡은 집안이 가난했던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것을 불쌍히 여긴 농장주의 지원으로 초등학교나마 마칠 수 있었다.
한 때는 어촌마을에서 해양지도를 제작하는 일을 돕고 있었는데 이때 바라 본 바다에 매료되어 해군을 동경하게 되었다. 먼저 석탄 수송선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하면서 대수학, 삼각측량법, 항해술, 천문학 등의 경험을 쌓은 후 해군에 지원한 제임스 쿡은 하위계급이지만 갑판원(Able Seaman) 이라는 계급으로 영국 해군에 합격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지도 제작과 선원으로서의 재능을 나타내었고 천문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1752년에 무역선의 항해사, 1755년에는 같은 무역선의 항해장으로 승진하면서 출세의 길을 걷지만 이를 마다하고 더 큰 일을 해보기 위해 해군에 갑판원으로 지원 입대한 것이다. 해군에 입대한지 2년만인 1757년에 영국왕이 승선하는 함선을 조정할 수 있는 자격시험에 합격하면서 영국 해군장관실과 왕립학회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어 갔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 이라는 말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알려지게 마련이라는 사자성어로서 아마도 제임스 쿡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제임스 쿡이 뉴펀드랜드 (New Fundland) 와 레이 케이프 (Ray Cape) 등 복잡한 지역의 정확한 해안조사를 끝내는 실력을 보고 왕립학회에서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1768년에 중위로 승진되고 나서 왕립학회의 지시에 따라 선장의 지위로 첫 태평양 항해를 하게 되는데 영국 천문학자들을 타이티(Tahiti) 섬으로 운송하는 임무였다.
천문학자 에드먼드 할리(Edmond Hally)가 1769년 6월 3일 금성이 태양의 표면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이 희귀한 천문 현상은 남반구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고 했다. <금성 통과>는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천문현상으로 지구에서 관측할 때 금성이 태양의 표면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검은 점으로 나타난다.
금성이 점으로나마 나타나 태양의 일부를 가린다는 점에서는 일식과 비슷하다. 실제로 금성은 달보다 4배 정도 크지만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가 4200만 킬로메터인데 이는 지구와 달의 거리보다 100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식 때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릴 수 있고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들어 갈 때에도 해를 완전히 가릴 수 있지만 금성은 달보다 4배나 더 크면서도 100배나 더 먼 거리에 있다보니 검은 점으로만 나타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첫 번째 금성통과는 2004년 6월 8일에 있었고 두 번째 통과는 2012년 6월 6일에 있었다. 3차 금성동과 예정일은 앞으로 92년을 더 기다린 2117년 12월 10일에 있을 예정이다.
영국 천문학자들이 타이티 섬에서 금성통과를 특정하려고 했던 것은 실패로 끝났다. 그들의 관측은 장비의 부족과 해상도의 부정확성으로 오차범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타이티까지의 먼 항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자 영국왕실은 그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바로 남태평양 지역을 조사하라는 것이다. 이는 영국왕실이 유럽의 해양국인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보다 먼저 지구 남반부의 섬들을 발견하여 지배권을 가지려는 의도에서였다.
타이티 섬에 연구진을 실어 날랐던 엔더버 (Endeavor) 호를 타고 먼저 뉴질랜드 섬에 도착한 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출발했다.
엔더버호는 원래 석탄 운반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적재량이 다른 선박보다 컷을 뿐만 아니라 튼튼하게 만들어져 장기간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즉, 감자와 육류, 과일과 음료수 등 긴 항해에 필요한 식료품을 충분히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던 조건이 될 수 있었고 엔데버호 선원들은 뉴질랜드와 호주(Australia) 에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쿡은 태평양 최남단부터 최북단까지 남북의 섬 뉴질랜드와 호주의 지도(해도)가 영국이 식민지 개척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발견되는 나라마다 모두 식민지로 만들었다.
제임스 쿡의 태평양 탐험을 전후하여 세계의 모든 지역이 유럽인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의 해양 국가들이 앞 다투어 식민지 찿기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제임스 쿡이 하와이섬에 내린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을 때 원주민들이 <와라와라 와이> 라고 외치는 소리를 <꺼져 꺼져>라는 말임을 이해했더라면 50세의 젊은 나이로 변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임스 쿡은 대항해시대의 끝을 장식한 인물로서 그가 찾아낸 세계의 모든 지역이 유럽인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탐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세계 곳곳에 유럽의 식민주의와 왕정주의 시대가 해외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영국 식민지로 캐나다, 인도,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지역 등이다보니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는 별명이 붙었다.
1427호 22면, 2025년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