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귀띔: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39)

Dipl.-Ing. WONKYO 연구소장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

1977년은 영국과 영연방 전체 국가가 축하준비로 바쁜 한 해였던 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 25주년을 맞이 하기 때문이다. 1977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영국 정부는 즉시 “올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25주년 기념일” 임을 선포하면서 행사준비로 생활과 통행에 불편을 끼칠 수 있을 것에 양해를 구했다.

기념행사는 2월 여왕 즉위 기념일에 교회 예배로부터 시작되었다. 재위 25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조지 5세 이후 영국 역사상 두 번째였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본 행사는 1977년 6월 7일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여왕은 금으로 장식된 황금마차를 타고 인파로 가득한 런던 거리를 행진했고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황금마차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시민들은 도시 전역에서 최대 400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거리 축제를 즐기며 축하했다. 추산에 따르면 약 5억의 세계 인구가 이 화려한 행사를 TV 중계로 시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축하행사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경기 침체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처럼 화려한 축하 행사를 갖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무직 그룹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의 시위가 대표적이었다.

이 밴드는 “갓 세이브 더 퀸, (주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God save the Queen)“ 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이 곡에서 그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2세를 “파시트 정권의 대표자”라고 비꼬았다. 템스 강 유람선에서 열린 이 밴드의 콘서트는 노래 가사가 문제되어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영국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종교와 정치의 자유 등으로 대표적인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결국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을 마친 여왕 부부는 이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3개월 동안에 걸쳐 36개 보호령 국가를 모두 순방했다.

여왕은 재위 25주년 기념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내가 21살이 되었을 때 나는 영국민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치겠다고 맹세했고 그 선언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빌었다. 비록 그 맹세는 내가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 시절에 이루어졌지만 나는 그 맹세를 한마디도 후회하거나 철회한 적이 없었다”

여왕은 생전에 수많은 기념일을 기념해왔다. 2002년에는 즉위 50주년 황금 기념식, 2012년에는 다이아몬드 기념을 갖는 등 사망 전까지 몇 가지 기념일을 더 추가했다. 96세로 서거하기 몇 달 전인 2022년에는 결혼 70주년이 되는 플래티넘 (Platium ) 기념식을 맞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영국연방 왕국) 과 보호령으로 있는 나라의 여왕이다. 1936년 할아버지 에드워드 8세(Edward VIII) 가 자식을 두지 못한 채 왕위에서 물러나자 아버지가 조지 6세 (George VI) 로 왕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1952년 2월 6일 서거한 아버지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70년 동안 대영제국을 통치하다가 2022년 9월 8일 스코틀랜드 에버딘셔 (Aberdeenshire)의 벨모럴 성 (Balmoral Castle)에서 사망했다. 밸모럴 성은 사유지 저택으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엘버트(Albert) 공이 사들인 저택으로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여 왔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군주들 중에 최고령에 최장기간 재위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2012년 6월에 재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64년 동안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 (Qeen Victoria) 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기념일을 맞이했다. 2022년 2월 6일에는 사상 최초로 플래티넘 기념일 (결혼 70주년) 을 맞이했다

즉위 60주년을 맞이했을 때 실시된 영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 누구였는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엘리자베스 2세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5년 9월 9일 오후 17시 30분을 지나면서 영국의 최장수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왕좌에 오른 이후 12년 동안 대영 제국의 식민지 54개의 영연방 국가 중에서 32개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5개국은 독자적인 왕을 갖는 독립국이 되었다. 나머지 16개국은 아직도 영국 여왕을 화폐에 그려 넣어 자국의 국가원수로 섬기고 있는데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고 2개국 이상의 독립국을 다스리고 있는 유일한 여왕이다.

1947년 엘리자베스 2세는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해서 에든버러(Edinburgh) 공작 작위를 받은 필립 (Philip) 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열세 살 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왕실에서는 캐나다로 피신할 것을 종용했지만 어머니의 완강한 거절로 국내에 머물게 되었다. 1945년 20살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아버지의 허락 하에 국군에 입대하여 취사, 사환업무, 매점 관리 등의 비전투 업무에 배치되었다가 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운전병, 탄약 관리 등의 전투 업무에 재배치되었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왕위 계승권을 가진 신분으로 사병으로 군복무를 시킬 수는 없었기에 처음부터 여군장교로 복무했다. 그녀의 보직은 보급수송 장교였으며 대위로 전역을 했다. 여성 왕족 가운데 다른 군인들과 동등한 훈련을 받으면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83년 미국을 방문 중에 암살당할 뻔 했다고 하며 1986년 뉴질랜드를 방문할 때에는 계란 세례를 받고 나서 만찬 행사에서 “나의 아침 식사를 위해 뉴질랜드 계란으로 준비해 주었군요”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1991년 걸프전쟁이 끝난 후 미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해 당시 조지 W.부시 대통령은 “오래 기억될 자유의 친구” 라고 했다.

이런 군복무중의 경험으로 자식(찰스, 에드워드, 앤드류) 세 명을 왕궁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일반학교로 보내서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모두 일반 학교를 다니게 했다.

우리나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방한했다.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옥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문화를 존중해서 맨발로 들어가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맨발로 방안으로 올라 선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마침 방한 도중에 73회 생일을 맞아 안동에서 궁중음식 차림을 받기도 했다. 생일상으로 차려진 음식모형을 만들어 하회마을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첫 째 아들 찰스(Chales) 가 “찰스 3세” 로 왕위를 계승했다.

1451호 22면, 2026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