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우리의 삶속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다. 그 중 삶의 어느 방향을 향해 가는지에 따라 늘 누군가에게는 그 길을 안내해주는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우리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던 갓 한 살이 되었을 그 때에도 보호자를 대신해 줄 유아원 선생님을 만나게 되니, 어쩌면 부모님 다음으로 내 삶에 깊이 관여된 관계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랬다.

그 만남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몰라 헤매일 때 적절한 시기에 참 좋은 스승님들을 만났고, 그 놀라운 인연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한참을 그렇게 누군가의 지도와 도움으로 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느덧 나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있으니, 내가 받았던 그 가르침을 이젠 내가 스승의 자리에서 나누어 줄 때가 된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2월 모교 대학 교수님의 정년퇴임 연주를 함께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아, 한국으로 잠시 연주 여행을 다녀왔다. 특별히 교수님은 성악가, 오르가니스트 부부 음악가이셨다. 두 분은 우리 부부, 성악가 남편과 피아니스트 아내인 나, 이렇게 네 사람이 그 무대를 해 주었으면 하셨고, 남편과 나는 흔쾌히 함께하기로 하였다.

연주를 직업으로 하는 우리 같은 연주자들에게는 사실 그 연주가 얼마나 나에게 이윤을 남기는지 안 따져 볼 수 없지만, 교수라는 자리에서 30년을 넘게 수많은 제자를 키워 내셨을 그분의 마지막 무대를 어찌 값으로 계산할 수 있으랴!

누군가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리 부부가 바보스럽다 할 수 있으나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우리 부부에게 잘 통하는 딱 하나는 바로 이런 바보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교수로서 그 자리에서 지나간 그 수많은 제자들 안에 우리가 존재하기에 감히 이 무대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안겨주는 시간이었고, 나 또한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우리의 앞날을 그려 보기도 하였다.

이 무대를 위해 하나의 곡들을 함께 나열해 갈 때도 맨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의 입시용 곡들부터 한창 전성기에 불렀던 유명한 아리아까지, 그 시간을 마치 한 인생의 모습을 써 온 책장을 넘기듯 그렇게 무대를 그려나갔다.

나와 남편이 이 곡들을 짚어보며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 쉬워졌을 그 레퍼토리들이, 바로 처음에 우리가 음악가를 꿈꾸며 처음 서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곡이 아닌 지금까지 쌓아 온 내 지식을, 깊은 감정들을 덧붙여 더 아름답고 내용이 담긴 아름다운 음들을 담아내고 싶어 많은 고민과 생각을 수없이 반복하며 연주할 날을 기다렸다.

매일을 바쁘게 지내며 지금까지의 걸어온 그 길도 잊은 날들이 많았는데, 이 곡들을 다시 마주하며 주는 이 시간이 나를 다시 처음으로 음악을 맛보던 그때의 모습을 만나게 해 주었고, 그때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무척 선물 같은 시간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그 누군가가 스승님의 스승으로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무대를 제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그 어떤 무대보다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적인 무대가 되었고,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처음의 내 모습,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스승님들, 또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스승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많이 무너져 가고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처음 서 있던 그때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임을, 또 그때의 나에게 마음을 다해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을, 바삐 움직이는 현대사회에서, 아무리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AI 시대라 할지라도, 만남을 통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오는 가르침과 배움 안에 쌓인 그 시간, 그 속에 진심으로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 부분이고 그 부분을 만들어 간 그 마음들은 대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이, 내가 받은 그 감동, 또 누군가에게 전해질 이 감동은 우리가 앞으로도 무대에서 서야 하는 이유냐 될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삶의 어느 부분을 만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멋지고 값진 일이지 않은가!

박미미(아욱스부르크)

1452호 18면, 2026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