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와 둘러보는 문화와 문화 사이를 잇는 다양한 현장들 (25)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 문화의 심장이자, 사고의 틀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독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그저 학점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모험’이다.

교실에서 배운 문법과 현실 속 대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환학생이 경험하는 소중한 학습 중 하나이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계산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험, 한국 친구들과 함께 치킨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 이 모든 것들이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진짜 교육이다.

독일과 한국, 두 나라 사이의 시차만큼이나 다른 문화적 리듬 속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간다.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감동하며,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번 학기 한국으로 떠나는 뒤스부르그 에센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북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로 각각 흩어져 전라도, 서울, 충청도의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될 그들. 유학 준비 과정에서 느낀 설렘과 두려움, 현실적인 고민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연대감까지 – 한국행을 앞둔 그들의 진솔한 마음을 딜라라의 목소리를 통해 들여다본다.

한국으로 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

‘유학’이라는 두 글자 안에는 깊은 무게가 스며들어 있다. 유학을 위한 비행기 표 한 장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 속에는 새로운 언어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 낯선 문화에 대한 진솔한 호기심, 그리고 한국이라는 땅을 향한 간절한 동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한국 유학을 간다’는 결심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멋지다고 말해줬다. 누군가는 “너무 부럽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두렵지 않아?” 하고 물었다. 그 질문들 속에 담긴 감정은 나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막막함.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감정은 점점 더 구체적인 고민으로 변해간다. ‘공항에서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짐은 얼마나 챙겨야 할까?’ ‘내가 살던 방은 누가 대신 쓰게 될까?’ 이런 현실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그제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아, 정말 한국에 가는구나.

다섯 개의 시선

이번 학기에 함께 한국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팀은 총 5명. 모두 독일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거나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다. 전공도 개성도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 개의 대학으로 나뉘어 유학을 간다: 전북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고 청주에 위치한 한국교원대학교. 이 말은 곧, 전라도, 충청도, 서울이라는 전혀 다른 지역 문화 속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한국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출발점은 하나다. 익숙한 세계를 뒤로하고, 조금은 서툰 발걸음으로 낯선 리듬의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용기.

학생들에게 한국 유학 준비 과정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물었을 때,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렘을 표현했다.

일라이다는 대학을 고르는 과정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공부하게 될 거라서, 지역 조사도 하고 수업 커리큘럼도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어요.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 덕분에 멋진 아파트를 직접 찾아낸 경험도 나름의 보람이 있었죠. 비행기 표를 결제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실감 났어요. 그 순간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싶었죠.”

사스키아는 이미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유학을 앞두고 들었던 수업을 통해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한국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 [문화 간 소통]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고, 이번에는 그 이론을 실제로 한국에서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돼요.”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독일 학생들은 처음엔 ‘여행을 떠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마음가짐은 곧 완전히 다른 차원의 깨달음으로 변해간다. 이것은 단순한 2주짜리 문화 체험도, 관광도 아니기 때문이다. 곧 ‘삶’이 되고, ‘일상’이 되며, ‘도전’이 된다.

처음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는 단어들은 꽤 단순하다. “한국 체크리스트”, “주의할 점”, “편의점에서 현지인처럼 행동하는 법”. 처음엔 호기심에서, 나중엔 절박함에서 타이핑하게 되는 이 키워드들. 검색은 블로그, 위키, 포럼을 거쳐 결국 유튜브 영상으로 향한다.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우리는 현실의 ‘톤’을 익혀간다.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지하철에서 행동하고, 어떤 속도로 말하며, 어떻게 거절하고, 어떤 말을 하면 실례가 되는지를. 이제 이러한 영상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생존 전략서, 실전 감각 훈련 도구, 심리적 방어막이 된다.

교과서 속 김민수와 진짜 민수 사이

전공 수업에서는 한국어 문법을 배우고, 교과서 속 등장인물 ‘김민수 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회화를 연습한다. ‘민수 씨는 회사에 지각했어요.’ ‘민수 씨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어요.’ 하지만 현실 속 민수 씨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내가 한국의 편의점에서 ‘계산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그 순간, 그 문장은 책에서 배운 것처럼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얼어붙는다.

독일어로는 “Zwei völlig verschiedene Paar Schuhe” — 두 켤레의 완전히 다른 신발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하자면 “전혀 딴판”이라는 표현이 가장 가깝다.

이 ‘딴판’의 현실을 감당하려면, 학생들끼리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 단톡방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질문과 답이 오간다. “짐은 어떻게 싸야 할까?” “비자는 얼마나 빨리 신청해야 하지?” “광견병 백신 꼭 맞아야 해?” “한국에서 데오도란트 어디서 살 수 있어?”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고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외적으로 체득하는 문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제키는 바로 그 부분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 ‘한국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수업이 정말 좋았어요. 특히 ‘눈치’라는 생소한 개념을 배운 게 인상 깊었죠. 수업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함께 수업을 들은 친구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 같이 한국에 가게 돼서, 더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체크리스트와 우정 사이

세리나는 친구들과 함께 유학을 계획하며 설렘이 배가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요. 서울 곳곳의 명소나 맛집을 찾아보면서 다 같이 상상하는 그 과정이 정말 설레요. 인스타그램에 저장해둔 맛집들을 직접 가볼 수 있다니 너무 기대돼요!”

대학에서는 다양한 안내를 해준다. 여권은 전체 체류 기간 동안 유효해야 하고, 광견병 백신은 최소 3회에 걸쳐 접종해야 하며, 해외 BAföG(정부 학자금 지원)는 출국 최소 6개월 전부터 신청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은 종종 누군가의 경험담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사용하는 데오도란트는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다. 한국인 중 다수는 유전적으로 땀 냄새가 거의 없어 데오도란트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드럭스토어나 편의점에서는 종류도 적고 가격도 높다.

나는 결국 독일 DM에서 평소에 쓰던 제품을 12개 세트로 쟁여두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생존 키트’를 준비하는 서바이벌 예능 참가자처럼 느꼈다.

백신과 페스토 파스타, 그리고 다가온 패닉

또 다른 난관은 백신 접종이었다. 광견병, A형 간염, 일본뇌염… 한두 번 맞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시차를 고려해 최소 6~8주 전부터 스케줄을 짜야 한다.

백신 처방을 받으러 간 약국에서, 나는 숫자를 보고 얼어붙었다. 총합 400유로가 넘는 비용.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 하나. “이제부터 페스토 파스타만 먹고 살아야겠다.” 혹은 케첩 파스타. 마요네즈 토스트. 그런 류의 서바이벌 식단만이 살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건강보험에 문의했고, 대부분 환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만약 그 한 통의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약국이 나를 사기 친 게 틀림없어’라는 패닉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초안은 이미 타이핑해 두었었다.)

계획은 틀어질 것이다받아들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순하다.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일찍 준비해도, 아무리 많이 조사해도 현실은 늘 예측의 바깥에 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실수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그런 순간마다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은 정말 소중하다. 새벽 3시에 항공권을 예약하며 함께 화상통화해주는 친구, 갑자기 모든 게 엉망이 됐을 때 웃긴 릴스를 보내주는 친구. 그들이 없었다면 이 준비 과정은 훨씬 더 고단했을 것이다.

낯선 나라가 아닌, ‘내 경험의 일부’로

이제 나는 메모 앱을 열고, 종이에 체크리스트를 적는다. 여권 사본, 백신 증명서, 항공권 예약 번호… 그리고 맨 아래에는 이렇게 적어둔다. “DM 데오도란트 잊지 말기.”

한국은 아직 가보지 않은 낯선 땅이다. 하지만 곧, 그곳은 나의 일상이 되고, 나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문화의 차이도, 언어의 실수도, 모두 경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진짜 경험은 빌릴 수 없다. 책이나 영상으로는 잠시 상상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느끼는 바람과 소리와 낯선 냄새와 사람들의 표정은 오직 내 발로 걸어야만 만날 수 있다.

곧 나는 서울에, 청주에, 전주에 도착할 것이다.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서 길을 헤매고, 편의점에서 메뉴를 고르며 망설이고, 수업 첫날 교수님의 말투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란과 두근거림 속에서 나는 분명히 한 가지를 배울 것이다. 이 여정을 선택한 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내 인생의 가장 낯설고도 반짝이는 챕터를 준비하고 있다.

1421호 20호, 2025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