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사는 2026년 3월부터 매월 넷째 주에 최수정 칼럼리스트의 ‘시사칼럼’을 게재한다.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현재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편집자주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급격한 태도변화와 정세 불안
2026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에 안정과 평화를 지켜내어 줄 국가가 과연 미국인지 되묻게 한다. 1
월 3일,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미국 압송에 이어 덴마크 그린란드 영유권 강제 이전 요구, 더 나아가 2월 28일의 이란 침공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매달 조용한 시간이 없을 정도로 국제사회를 흔들고 있다.
국제 여론의 변화와 미국의 신뢰 하락
이렇게 미국이 전 세계를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2026년 2월 26일 발표된 프라이부르크의 국민 여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국민 65%가 “미국이 국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거의 2/3에 가까운 설문자의 응답 속에서 미국은 국제평화 수호자라기보다는 국제평화 파괴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미국이 국제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해 줄 수 있는 국가로서의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의 선제적 조치와 국제법 위반 논란
여기서 가장 난감한 점은 미국이 국제사회에 일으키고 있는 불안요소가 방어적 차원이라기보다 선제적 조치를 통한 미국의 일방적 목적달성에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침략행위가 없는 나라에 선제적으로 군사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국가들과 전문가들은 국제법을 위반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을 해봤자 미국이 자신의 일방적 행위를 과연 멈출 것인가?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할 것같다.
냉전의 재현과 나토의 위기
이를 위기상황의 근본적 시작에는 러시아가 있다는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의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단 침입하면서 국제규범을 대놓고 무시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강대국들이 약소국에 군사협박을 하는 것이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유사한 행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게 일임한 국제평화수호의 책임을 헌신짝 취급했기 때문에 그 이후 일어나는 상임이사국들의 일탈행위는 “처음이 아닌” 것이 되버린 것이다. 일부 국가들은 이것이 냉전 종식 후 다시 부활하고 있는 “신냉전”의 신호탄이라고도 평가한다.
적어도 러우전쟁이 발생하기 전에는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도 국제보건에 매우 긍정적 기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러우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은 달라져 버렸다. 서유럽은 러시아와 연계된 에너지공급원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중국이 보여 왔던 공급망 왜곡과 기술탈취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민주주의 국가와도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기는 끝나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1991년 소련의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전의 냉전시대와 같은 대치상태로 자연스럽게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미국의 변심이다.
미국이 대서양 국가들에게 “영원한 우방”으로 남아 있었다면 국제정세가 지금처럼 불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그린란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동맹의 분열”을 의미한다. 그것도 나토 전체 연간방위지출의 62%(2025년 나토보고서 기준)나 차지하고, 병력의 38%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가 분열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나토 회원국들의 총GDP의 3.5%까지 국방비지출을 늘이는 문제가 심각한 경제적 부담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만약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하게 된다면 그 재정적 부담은 나머지 회원국들간에 나눠질 수 있는 규모일까? 절대 불가능한 규모이다.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게 된다면 그것은 즉각적으로 나토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제공한 나토의 유럽집단안보 우산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발틱 3국이나 핀란드 및 동유럽국가들은 러시아의 직접적인 위협에 다시 놓이게 될 것이다.
과거 국제사회의 집단안보체제 위기와 그 교훈
이러한 위기는 나토의 위기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 제공해 온 집단안보의 틀은 유엔을 통해 구현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면서 출범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 이하 유엔)은 1919년 창립된 국제연맹의 실패를 거울 삼아 집단안보의 개념을 보다 강력하게 실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국제연맹에 참여하지 않았던 최강대국인 미국이 국제 평화를 보증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집단안전보장시스템이 바로 유엔인 것이다.
국제연맹이 추구하던 집단안전보장 시스템이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망선고를 받게 된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당시 1933년 일본과 독일의 탈퇴, 그리고 1937년 이탈리아의 탈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집단안보 개념의 마비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특히 만주사변(1931년-1933년)의 발발과 그 이행과정에서 국제연맹이 사태조사와 보고서 채택을 통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수단으로 사용하였음에도 당사국인 일본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 국제사회의 여론과 지지가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더욱이 일본이 이러한 분위기에 부응하여 자신의 침략 행위를 멈출 의사가 전혀 없었고 이를 제지할 국제사회의 힘도 없었다.
1933년 독일이 국민투표 96%의 지지에 힘입어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그 해 일본이 연이어 국제연맹에서 탈퇴할 때를 상기해 본다면 지금의 국제정세의 위기는 매우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국가는 당시의 국제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2026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산하 31개 기구와 비유엔 35개 기구 등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기로 한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이 국제기구의 주요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기구가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제평화의 수호자가 자신이 중심이 되어 구축해 온 국제질서를 더 이상 존중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미국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앞선 두 나라의 태도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파장을 암시한다.
나토와 국제사회의 위기, 그리고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
유엔의 집단안보제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토에서 미국이 탈퇴하게 될 경우 유럽의 집단안보체제는 그 근본 뿌리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이 국제연합 창설의 근간으로 보장했던 유엔헌장 제7장의 집단안전보장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토 창립헌장 제5조의 집단안전보장은 미국 없이 작동 가능할 것인가?
미국 없는 자유무역질서나 미국 없는 해양안전보장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필자의 전공 분야인 해양법의 경우 인류가 공기처럼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하나인 “공해의 자유”가 있다. 이 공해의 자유를 위해서는 공해에서의 안전 보장은 필수이다. 그러나 누가 해적이 창궐하는 공해에서 안전한 해양 이용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돌아볼 때 미국이 제공한 해양안전보장이라는 공공재를 전 세계가 값싸게 누려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많은 국가들이 국제공역에서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제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해적을 소탕하고 불법 무기 거래를 적발하고 추적하는 역량은 많은 부분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한순간 변심하여 “미국의 이익”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임지기 싫다고 하면, 세계 안전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
급격한 미국의 정책 방향 변화는 국제사회에 심각한 신뢰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나토와 유엔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집단안보 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점은 심각한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글로벌 공공재를 다루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국제법의 준수와 국제 질서의 예측가능성 회복을 위한 대안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1452호 14면, 2026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