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뒤셀도르프 인터내셔널 도서관 발표 현장 —
NRW 한국어 언어경관 연구, 학생 연구자•시민•상인이 함께 만든 지도

9월 마지막 목요일 뒤셀도르프 인터내셔널 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어 언어경관 연구성과 공유 행사장에는 화면 가득 여덟 개 도시의 간판과 상점 사진이 차례로 지나갔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 처음 이 주제를 접한 시민, 오래전부터 NRW에 살아온 주민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루르-보훔대학교 한국학 학생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AKS-2026-E-018)으로 수개월에 걸쳐 NRW 여덟 개 도시를 걸으며 모은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공개된 날이었다.

발표는 영어로 진행됐다. 학술 언어를 시민 친화적인 언어로 옮겨 소개하는 일 또한 이 행사의 중요한 과제였다. 발표가 끝난 뒤 한식 케이터링 테이블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화면 속 간판들은 각자의 기억과 경험 속 장면으로 다시 소환됐다.

처음 질문은 단순했다

연구의 출발점은 “독일 NRW 지역에서 한국어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라는, 얼핏 소박해 보이는 질문이었다. 연구팀은 뒤셀도르프, 쾰른, 에센, 뒤스부르크, 보훔, 본, 아헨, 도르트문트 등 여덟 도시를 돌며 식당과 상점, 문화기관, 거리 표지와 상품 진열대에서 한국어와 한국 관련 시각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기록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설수록 질문은 복잡해졌다. 한글 한 단어가 쓰여 있으면 그것으로 ‘한국어 표지’라 부를 수 있는가. 한글은 없지만 한국 음식과 이미지로 채워진 식당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데엠(dm)이나 세포라(Sephora)의 K-뷰티 진열대, 벽면 포스터, 영어 포장의 한국 상품, 한국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글이 아닌 표기는 이 연구에서 어떤 자리를 갖는가.

연구팀이 결국 마주한 것은 한국어의 ‘가시성’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같은 간판, 같은 공간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었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K-pop•K-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 아무런 접점 없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한국을 만난다. 질문은 그렇게 “한국어는 언제, 누구에게, 어떤 조건에서 도시 안의 의미가 되는가”로 옮겨갔다.

발표를 맡은 학생 연구자 잉에(Inge)는 조사 과정에서 ‘무엇이 한국적인가’를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제품 경관(productscape)’, 즉 실제로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정성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제품이어야 한국적인 것인지, 아니면 한국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면 한국적인 것인지 말이죠.”

연구팀의 사라(Sarah)도 조사를 거치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한국어 간판을 보면 무조건 한국인이 만든 가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 한국 브랜드가 아닌 프랜차이즈라도 단지 한국어를 좋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문화적 재현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점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현장 연구, 언어학의 시선으로

뒤셀도르프 하인리히 하이네대학교의 언어학 교수 케빈 탕(Kevin Tang)은 연구자의 눈으로 이날의 발표를 지켜봤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 아주 놀라웠다”며, 이렇게 많은 학생이 실제 연구에 직접 기여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저 역시 연구자이자 언어학 교수이기 때문에 이 행사에 끌렸습니다.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이런 종류의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출판되기를 고대합니다.”

그는 특히 간판에서 발견된 문자 유형을 보여주고, 그것이 다른 언어들과 어떻게 겹치고 상호 보완하는지를 드러낸 부분에 주목했다. “뒤셀도르프의 일본어 언어경관은 알고 있었지만, 한글 간판과 한국 문화가 독일에 이토록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고, 한국어 언어경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탐색적인 연구 방법론에도 관심을 보였다. 디지털 지도 위의 점을 클릭해 간판의 시각 자료, 인터뷰와 전사 내용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연구가 도시 공간을 읽는 방식 자체를 더욱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도시를 읽는 법을 배운 한 학기

이 연구의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해진 답을 확인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록할지 직접 판단하고 예상치 못한 사례를 발견하며 연구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간 공동 연구자였다. 사진과 위치 정보를 기록하고, 지도로 옮기고, 상인과 시민을 인터뷰하고, 설문과 녹취를 분석해 사례를 해석하는 과정은 ‘한국을 찾아다니는 일’이라기보다 도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훈련에 가까웠다.

사라는 “간판 하나에 분석할 수 있는 요소가 그렇게 많은지, 문자와 언어의 차이 안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몰랐다”며 “언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정 정보가 아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방법론 덕분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발표가 끝나고 난 뒤

발표가 끝나자 행사장의 공기는 한식 케이터링과 함께 한결 편안해졌다. 참석자들은 음식을 즐기며 각자 도시에서 지나쳤던 간판, 몰랐던 가게, 뒤늦게 알아챈 뜻풀이를 주고받았다.

프랑스인 참석자는 “이전에는 상점들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뒤셀도르프의 상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 같다”며 “간판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뜻은 이해하지 못해, 그저 흥미로워 보이고 의미가 궁금했다”고 했다. 도르트문트 근처 출신의 루카스(Lukas)도 “한글 간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연구 방식과 발표에 담긴 열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이 지도는 일상 언어환경을 새롭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야스민(Jasmine)은 “‘김밥 스왑’은 알고 있었지만 새로 생긴 한국 식당들은 존재조차 몰랐다”며 “로마자 표기 때문에 헷갈리다가 한글을 읽고 나서야 ‘아, 저 단어구나’ 하고 알게 될 때가 있다”고 했다.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는 몰튼(Morten)은 한국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뒤 독일에서 한국 식당이 빠르게 늘어나는 변화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 학습자에게 일상에서 언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도는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거리의 한국어를 접하며 실력이 크게 늘었다는 경험도 덧붙였다.

같은 대학에서 한국어와 경제학을 공부하는 마야(Maya)는 “간판을 볼 때 ‘아, 한국어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NRW에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외출할 때 간판의 뜻을 알려주면 “이게 한국어인 줄도 몰랐다”고 놀란다며, 디지털 지도는 누구나 이 현상을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고 했다.

한국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세리나(Serena)는 “‘BBLO’가 ‘빵’을 라틴 알파벳으로 표기한 이름인 줄은 전혀 몰랐다”며 “이 연구는 한국 문화가 독일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뒤셀도르프 거주자인 리사(Lisa) 역시 큰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뿐 아니라 작은 도시에도 한국어가 존재하며 독일 문화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걸어 준 사람들

이 연구는 학생들의 발걸음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뒤셀도르프 이미지헤어 원장, Saboo 사장, BBLO 사장, 나무카페의 로자나 씨, 에센 파독광부기념회 관장, ONL 사장, 뒤스부르크 Für Dich 사장 등 인터뷰에 응해 준 여러 분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뒤셀도르프 상권에 관해서는 이상빈 코치가, 쾰른과 본의 한인 커뮤니티에 관해서는 본분관의 주숙영 실무관이 조언을 보탰다.

설문에 참여한 약 200명의 NRW 주민과 거리 인터뷰에 응해 준 많은 시민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이 연구는 한국어의 가시성을 숫자로만 세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도시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해석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10월 23일 뒤셀도르프 시립도서관에서 이어질 독일어 발표는 도시별 사례와 설문•인터뷰 분석을 더 깊이 나누며,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언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선 문화로 향하는 작은 문인 도시 속 한글의 의미를 지역사회와 다시 묻고 듣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기사의 인터뷰는 루르-보훔대학교 한국학과 송수진 교생선생님이 진행했습니다. 현장에서 발표자와 참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1478호 20면, 2026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