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59회: “사막에 강물을 흐르게 하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최근 베를린의 사단법인 “해로”와 업무협약을 맺은 “샘물호스피스”는 한국에서 가장 크고 좋은 호스피스 기관이다. 100병상을 갖춘 호스피스 전문병원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병상이 많고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다고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샘물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를 위해 특화된 호스피스 전문병원으로, 30년 동안 헌신적으로 오로지 호스피스 환자만을 섬기며 축적된 경험만큼은 세계 어느 병원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부한다.

특별히 샘물호스피스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전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평안한 시간을 보내도록 돕는 “교회”와 같은 영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병원’과 ‘교회’와 ‘집’의 기능을 모두 갖춘 호스피스 기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샘물호스피스가 지금처럼 훌륭한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는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약사였던 원주희 목사님이 가난하고 외로운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무료 호스피스”를 시작하겠다고 하였을 당시에는 호스피스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호스피스는 환자를 섬기다 돌아가시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일이어서 얼마 못 가서 곧 문을 닫게 될 거라고 모두가 만류하였다. 30년 전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의료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여서,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는 죽음 앞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주희 목사님은 이런 죽음 앞에 있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용인의 농가주택을 빌려 환자들과 함께 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는 일은, 이 일을 위해 헌신한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가능하다.

“무료”로 운영하는 호스피스 기관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았고, 환자들이 평안하게 천국으로 이사 가시는 모습을 본 가족들과 봉사자들이 크게 감동하여 좋은 소문이 퍼져가면서, 샘물호스피스에 입원하려는 환자들이 많아져 입원하려고 줄을 서게 되었다. 곧 망할 것이라고 염려하던 분들이 기도와 물질의 후원자가 되었고, 말리던 교인들은 봉사자가 되어 함께 짐을 나누어지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결코 망하지 않고, 섬김의 봉사는 점점 더 왕성하게 발전하였다.

한 사람의 헌신자와 이를 돕는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힘이 합쳐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사막에 강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하는 일과 같은 큰일을 이뤄낸 것이다.

지금은 의료법 때문에 환자를 무료로 돌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작은 비용으로 샘물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할 수 있고, 그것마저도 부담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선교회가 후원금으로 대신 부담하기도 한다. 샘물호스피스는 지난 30년 동안, 약 13,700명의 말기 환자를 섬겼으며, 그중에 12,175명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그동안 3,660명이 세례를 받았는데 평균 1년에 120명이 넘는 사람이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를 위해 20,000명이 넘는 봉사자가 수고하였다. 이처럼 샘물호스피스가 얼마나 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숫자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결단과 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환자와 가족들은 광야같이 거칠고 메마른 세상에서 오아시스 같은 사랑을 발견하며, 아직 세상은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리라 믿는다.

베를린에서 시작한 봉사단체인 “사단법인 해로”도 샘물호스피스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파독 근로자 어른들을 섬기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봉지은 대표를 비롯한 몇 사람의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7년전 “해로”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사무실도 없이 남의 사무실의 책상을 몇 시간씩 빌려 쓰면서 초라하게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일에 헌신한 사람들에 의해 섬김과 돌봄 활동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본 독일 목사님이 자신의 책상을 “해로”에 내주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비켜 주셔서, 여러 단체가 같이 사용하는 작은 사무실이지만 활동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책상도 없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해로”는 사무실이나 직원의 숫자에 비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파독 근로자 어른들을 위한 일이라면 때를 놓치지 않도록 부지런히 섬기며 앞으로의 일들도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양시설을 가진 커다란 단체로 기분 좋은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우리 한인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해로”와 같은 일을 그곳에서도 해달라고 많이 요청을 하신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해로”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해로가 앞장서 일을 하겠지만, 그 지역을 잘 아는 봉사자들과 동역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로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많아졌는데 환자들을 섬길 봉사자는 적어졌다. 이제 우리 파독근로자 중에서 건강한 어르신들이나 비교적 젊은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봉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랜 경험과 경륜으로 직접적인 환자 봉사도 가능하고, 행정적인 도움과 지원을 통한 봉사도 할 수 있다. 또한 이 일을 위해 교회가 앞장서서 파독근로자들을 위한 의미 있는 봉사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선한 일을 위해 순수하게 봉사하는 교회는 발전하고 성장하게 되어 있다. “해로”는 이들을 도우며 함께 일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파독근로자를 돕는 의미 있는 봉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메마른 땅에 강을 내려는 사람들이 많이 손들고 나오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함께 사막에 강물을 흐르게 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보라! 내가 새로운 일을 행하겠다. 이미 그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너희는 보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할 것이다.”(이사야 43:19)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280호 16면, 2022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