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회: 동행이 있는 여정이 아름답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노래했다.

2025년에 우리 모두 각자가 선택한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 우리가 걸어온 발걸음이 모여 길이 되고 삶이 되고 인생이 되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곧게 뻗은 길이든지 울퉁불퉁 굽은 길이든지 모든 길에는 의미가 있다. 특별히 굽은 길을 살아서 힘든 분들의 삶은 편하게 살아온 이들보다 더욱 삶의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 진주를 만드는 조개와 같이 상처와 고통을 이기고 만들어 낸 삶의 결과는 누구의 삶보다 아름답다.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어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라는 이준관의 시처럼, 구부러진 길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

해로가 지난 10년 동안 걸어온 길은 잘 포장된 곧은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때로는 발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지만, 그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함께 걸어가는 동행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이 무거울 때 대신 들어주는 동역자와 봉사자들, 그리고 항상 버팀목처럼 지지해준 회원들과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웃으며 기쁨으로 섬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함께 걸은 것이다. 울퉁불퉁해서 힘들고, 구불구불해서 느리지만 가야 할 목적지가 같은 동행이 있기에 때로는 함께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했고, 때로는 함께 울고 웃으며 계속 걷다 보니 10년이 되었다. 빠르게 걷다 보면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이 많지만, 해로가 걸어온 길은 느렸다. 덕분에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는 불편하고 약한 분들과 함께 걸으며 우리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충실히 할 수 있었고, 함께 걷는 분들과 마음의 보조를 맞추어 걸어왔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할 수 있다.

해로의 10주년 기념행사는 소박하지만, 그동안 함께해온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행사로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해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서로 감사하고 격려하였고, 다시 힘을 내서 걸어가야 할 10년의 비전도 함께 꿈꾸는 내용으로 진행했다.

10주년 행사는 <해로가 걸어온 길> 사진전으로 시작했는데, 해로가 해온 일을 대표적인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하였다. 방대한 사진 자료들을 모두 전시할 수 없어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집에 가셔서 여유 있게 보실 수 있도록 QR코드로 만들어 배포해 드렸다.

우리 어르신들은 사진을 보러 오셔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사진전에 오셨다 집으로 가시면서 “아, 사진을 못 보았네!”하셨다. 해로가 사랑방이 되고 있어 좋다. 그동안 계속해온 인지능력 향상프로그램의 날에는 관심이 있는 가족들도 오실 수 있도록 참관 수업으로 진행했고, <봉사자의 날>에는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은 선물과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하며 격려하였다.

<회원의 날>은 회원총회를 하면서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다음 10년을 내다보며 더욱 투명하고 효율적인 해로가 되도록 운영위원회를 신설하였고 앞으로의 비전과 새로운 계획을 회원들과 나누었다.

10주년 행사 중에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야심 차게 시도한 프로그램은 <이웃의 날> 행사였다. 그동안 노인 돌봄을 하는 해로하우스에 관심을 보여온 이웃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을 초청하여 브런치를 대접하며 해로가 하는 일을 소개하고, 앞으로 이웃들도 함께 돌보기 위한 소통의 장을 열었다. 많은 이웃분이 오셔서 식사와 차를 나누며 해로의 활동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담소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이웃의 날 오후에는 전문 성악가들로 구성된 베를린 선한목자교회의 음악선교팀의 거리 공연이 있었다. 해로하우스 옆길은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야외 공연이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동네 주민들은 물론 지나가는 분들까지도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회를 즐겼고, 주변의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발코니에 나와서 끝까지 음악회를 감상하기도 했다.

‘홀로 아리랑’을 비롯한 한국 노래와 베를린 사람들이 좋아하는 독일 노래와 신나는 유명 가곡 등을 불렀는데, 주민들은 큰 박수로 호응하였고 아는 노래가 나올 때는 신이 나서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성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캐롤과 성가를 부를 때에는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있었다. 수준 높은 음악회를 동네에서 듣게 해준 해로하우스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더욱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서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은 이웃들을 품고 봉사하게 되기를 바란다.

해로 10주년 행사는 <존탁스카페>에서의 감사예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까지 해로가 많은 발전과 귀한 섬김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을 주님께 맡기며 사명을 잘 감당하게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우리가 좋은 계획을 세우고 달려간다고 해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믿는다.

앞으로 해로는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우리 파독 1세대를 포함한 이웃들과 동행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동역자인 회원들과 후원자, 그리고 봉사자들과 한마음으로 동행할 것을 다짐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사진: 해로 10주년 행사 (회원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