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문화 거장들 (8)

한호산 감독: 독일 체육회가 선정한 7대 명감독에 올라

한호산 전 독일 유도국가대표 감독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화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독일에서 이룩한 성취와, 현재 각국은 체육 분야를 큰 틀에서는 문화의 한 분야로 인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호산 감독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문화거장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독일 한인사회 발전의 주춧돌과도 같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한인사회 대소사와 경조사에도 늘 함께 하며 한인사회의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파독광부 1진이 독일 도착하기도 전인 1963년 8월 니더작센 유도협회 선수이자 감독으로 독일에 오게 된 한호산 감독은 지난 62년의 독일생활은 바로 독일한인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3년 니더작센 유도협회 선수이자 감독으로 시작된 그의 독일 생활은 1965년부터 2001년 정년퇴임까지 36년을 독일 유도국가대표 감독을 지냈고, 은퇴 후에는 유도기술 및 지도자 세미나를 열며 유도 보급에 힘을 더하고 있다.

서독 유도대표팀 감독이 되다

한호산감독은 1965년 4월 독일체육회와 정식으로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직 계약을 하고, 서독 최초의 유도 전임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2001년까지 36년간 대표팀 감독을 하리라고는 한감독 스스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한호산감독은 개인 생활은 전무한 채 약 10년간은 남,여 국가대표선수, 주니어, 시니어 국가대표팀을 홀로 지도하여야 했고, 유럽 각국으로부터 강습요청에도 임해야 했다. 1년 가운데 두 달 정도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데, 그것도 훈련과, 대회, 강습 사이의 시간들을 합한 시간이었기에, 지금도 그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한호산감독에게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1967년 유럽선수권 대회의 종합우승이다.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아 당당히 종합우승을 일구어 낸 것이었다. 서독 정부도 이를 높이 인정하여 그해 체육계 최고의 영광인 “Silbernes Lorbeerblatt” 상을 한호산 감독에게 수여하였다.

196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에 이어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세계 선수권대회에서의 준우승은 당시 독일 유도계분만 아니라 체육계 전체의 큰 경사였으며, 독일 제1TV 방송인 ARD의 “Sportschau”에도 한호산 감독이 출연하였으며, 서독 유력 주간지인 “Spiegel” 에서도 “Tiger Han”이라는 제목으로 한감독에 대해 전면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1984년 LA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Frank Wieneke 선수가 연속해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도 경험하였다.

독일 통일은 스포츠 세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동서독 출신으로 인한 갈등도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후 동서독 통합 유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하는 한호산감독에게는 실력 이외에 그 어떠한 요소도 선수 선발에 있어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통독 후 처녀 출전한 1991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7월·바르셀로나)에서 독일이 종합준우승(금3·동2)을 차지하자 독일매스컴들은 앞 다퉈 이 사실을 체육면 톱으로 보도하였다. 독일의 대표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FAZ은 “적어도 유도에선 동·서독이란 용어가 사라졌다.”(「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차이퉁」지 1991년 7월30일자)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며 나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한국인으로 독일 유도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며 여러 일화들이 있다. 한두 가지를 소개해본다.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3-4년 뒤였다. 한 일본 외교관이 독일 유도협회에, 일본이 유도의 종주국이고, 훌륭한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다며, 일본이 기꺼이 독일에 지도자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전하였다. 당시 독일 유도협회장은 이를 한호산감독에게도 알리며, 독일은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니며, 현재 한호산 감독이 독일 유도 국가대표들은 잘 지도하고 있다며,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내게 우호적인 독일유도협회장도 선수선발과 관련 한감독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1978년 유도협회장의 지역 선수가 그 해 독일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그러나 한감독은 그를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고, 당시 독일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출하여 유럽선수권 대회를 준비시켰다.

유도협회장은 이에 불쾌함을 느껴,유럽선수권 대회가 끝나면, 바로 해고하겠다며, 비서를 시켜 한호산감독의 국가대표 감독직 계약해지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드디어 유럽선수권 대회가 시작되었다. 마침 그 선수 체급의 경기가 대회 첫날에 펼쳐졌는데, 당당히 모든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유도협회장은 제일 먼저 한감독에게 다가와,강하게 포옹하며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이런저런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한호산감독은 1965년부터 2001년까지 36년간 독일 유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그 시기 나와 나의 선수들은 올림픽과 유럽선수권, 국제대회 등을 통해 56개의 금메달을 포함, 200개가 넘는 메달을 독일에 안겨주었다.


한류의 바람이 세계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 문학, 영화, 드라마, K-Pop, 한식, 웹툰, 화장품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알리고 있다. “한국 문화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 말이 그리 큰 과장이 아닌 듯 여길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류의 세계 진출과 함께 꼭 돌아보아야 할 인물들이 있다. 각 국에서 그들의 주류 문화 속에서 당당히 거장의 위상을 확보한 한국인들이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독일 안에서 ‘거장’의 위상을 확보한 한국인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독일문화 속 한국의 거장’의 탄생을 기원해 본다.

1422호 28면, 2025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