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간호학교 제 36 동문회 에 다녀와서

강 옥순

근 9년 동안 한 번도 참석할 수 없어 나 스스로의 과거에만 남아있는 동문들의 모임. 올해는 몇 번째의 동문회인지도 생각치 못했다.

다시 아픈 무릎 때문에 이번에도 또 갈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출발 직전까지 컸지만 마음먹고 했던 신청을 취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작정해 버렸다.

동문회 모임 장소로 가는 길, 깊은 옛 상념에 빠져 보고 싶었던 여러 얼굴들이 하나하나 눈에 선하다. 좋은 이웃친척 모임에 가듯 가벼운 마음을 가져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남편이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되었다고 새삼스레 노파심이 생겼을까? 여러 가지가 그저 귀찮고 더구나 집을 떠나 움직일 수 있는 자유조차도 달갑지 않은 묘한 상태에서 Schwäbisch Hall에 도착하였다.

회장님과 부회장님의 남편 두 분께서 활짝 열린 얼굴로 날 맞아주셔서 즉시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곳 동네들의 아름다움에 놀란 내게 지리적인 특수함까지 설명해주셔서 학교시절 배우던 자세로 유심히 이곳저곳 둘러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회의는 이미 진행된 상태, 구면 초면 서둘러 경황없이 인사드리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모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돌려보니 어떻게 모두 하나같이 이토록 곱게 나이 드셨을까 신기한 마음이 든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런 계기를 갖게 된 것에 우선 고마움이 들었다. 그동안 누누이 내게 꼭 한번 참석하여 동문들과 함께 며칠만이라도 함께 숨 쉬어보라고 꾸준히 권해준 동기, 내 친구 그의 인내가 참으로 고마웠다.

살다보면 삶의 교차로는 끝없이 바뀌고 그때마다 변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고수하거나 혹은 다른 방향으로 시점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할 때 동문회는 산기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러운 만남의 광장으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리 나이가 들어서야 절감하였던 이번 동문회 모임. 이삼 일간 함께 움직이며 느낀 예측하지 못했던 정서적 수확이 신기하고 동시에 감사히 여겨졌다.

수십 년을 독 일땅에 사는 동안 몇번 만나고 헤어졌을 때만해도 무척 큰 섭섭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처럼 따뜻한 마음의 교류를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나이 때문인가?

Würzburg Residenz, Rothenburg ob der Taube, Schwäbisch Hall Comburg, 중세교회 등을 방문하면서 아직은 건강하여 가능함을 새삼 절실히 느꼈다.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닐지니 얼마나 감사한가.

사고를 당해 참석치 못한 동문에 대한 섭섭함을 함께 논하고 한국에 가 계신 선배님 근황을 영상을 통해 즉시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세상, 수십 년 전의 독일과 한국의 그 큰 간격이 이렇게 축소되었음도 동기들과 함께 경험했다.

심하게 병고에 시달리는 선배언니와 그토록 착하고 성실히 그녀를 돌보는 남편을 보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그 선배가 기억하고 있는 그 옛날 노래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억 속에서 꺼내어 함께 불렀다. 그 순간마다 반짝이며 기뻐하던 그 언니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추억일 것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요를 부를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시들지 않는 꽃다발이 아닐까?

원컨대 우리 모두 건강히 수년간 앞으로도 이런 모임을 할 수 있는 체력이 허락되기를 바란다.

큰 사업을 여전히 열심히 하시고 잘 견디어 나가시는 걸 보면서 감탄아래 한마디 떠오른다! “Chapeau! Hut ab!”

모임의 사흘은 빨리 지나갔다. 여러 가지 상념을 머리 속에 안고 집으로 오는 길, 동문들 모두에게 감사하며 다들 어떻게라도 건강을 유지하시라는 기원만이 제일 뚜렷이 가슴에 새겨졌다

1424호 17면, 2025년 8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