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한독문학공간 청로세대 연극공연
– 아침이 있는 저녁 풍경, 세대를 잇다 –
“현자야! 이국만리에서 고생이 많을 걸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는대로 고국으로 돌아와라. 네 어미가 몹시 편찮으시다.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을 줄 알고 마음이 심히 상심이 되겠지만 어쩌겠니? 인간의 운명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구나. 마지막 가는 길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지키는 게 도리일 것이다. 부디 비행기편을 수소문해 조속히 돌아오길 바란다. 네가 돌아오기 전까지 어머니가 숨을 거두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파독 간호사 계약기간 3년이 되어갈 무렵, 한국에서 당숙 어르신의 편지가 도착한다.
현자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이 담긴 글귀를 읽고 급하게 귀국하게 된다. 하지만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현자는 다시 독일에 오게 되는데….
파독 간호사를 중심으로 한, 이전과 이후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옥비녀 Ⅱ>가 지난 12월 6일 독일 베를린 슈피랄레 공연장에서 막을 올렸다. 연말이라 여러 행사가 겹친상황에서도 이날 공연장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차 문전성시를 이뤘다. 관객의 연령도 남녀노소 구분없이 다양해 여러 세대의 관심을 받은 걸로 평가되었다. 그것은 이 연극이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을 넘나들며 세대간 간극을 줄이고 해학과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독간호사와 파독광부가 직접 열연해 전문 연극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진솔하고 열정적인 몸짓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역사는 거대한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한 개인의 무더기다. 먼저 살았던 이들의 삶이 곧 역사고 역사가 곧 삶이다. 이 연극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분단을 뛰어넘는 사랑과 그리움, 치유와 회복이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에도 사랑은 존재했고, 가난했던 시절에도 희망은 꿈틀거렸다.
이번 연극에 출연한 배우는 총 16명으로 만 7세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연극의 시작과 함께 장례식을 상기시키는 ‘지전무’(춤: 박화자)는 고요하고 은은한 춤사위로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허문다.


1막은 현자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현실과 환타지를 넘나들며 시공간의 격차를 줄인다. 1막이 끝나는 막간에 파독간호사의 병동생활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아리랑>과 <고향의 봄> 노래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2막에서는 파독광부 창수의 출연이 통통튀는 재미를 더한다. 파독간호사와 광부의 사랑을 익살스럽게 그려 아릿한 추억을 불러온다. 4막은 현자의 어머니 홍이와 아버지 조태구의 만남을 그림자 연극으로 보여주며 과거의 한 장면을 회상하는 듯한 효과로 극대화시킨다.
6막에서는 옥비녀를 부러뜨린 십대 손자 준서의 내면세계를 그린다. 무용수(춤: 박시온)의 퍼포먼스와 준서의 독백이 하일라이트다. 이어 6막 2장에서는 옥비녀 관련 전시를 기획하는 갤러리 장면을 통해 우리 세대의 치유와 회복을 드러낸다.
우리 역사가 파란을 겪어도 가열차게 살아남은 이유는 세대마다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서 독일에 사는 파독 간호사 현자는 우리 시대의 희망과 회복의 아이콘이다.
이 연극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나뉜 듯 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장면마다 나름의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의 시선을 끈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청춘을 소환하고, 누군가는 이미 하늘로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물을 쏟아낸다. 한국전쟁에서 죽어간 조태구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리움, 향수, 상실과 거부, 금기와 욕망으로 점철된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짧은 한 시간의 연극으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 말하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현실이기도 하다.
연극은 더이상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4세대 소년 준서를 통해 미래를 품는다. 학교에서 실수로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옥비녀를 부러뜨리고 다시 잇고자 하는 시도는 두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만들자는 다음 세대의 염원으로 이어진다.
최근 <인간의 법정/Human Court> 책 북토크 관련 베를린을 방문 중인 조광희 작가는 이날 연극을 관람하며 나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연극 정말 잘 보았습니다. 독일에 사는 동포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잔잔하고 소박하지만 삶의 궤적에 따르는 진정성이 느껴져서 눈물을 흘렸네요”
한편 한독문학공간(KD_ Litkorea)이 파독 간호사 연극단 빨간구두(단장 김금선)와 함께 한 이번 연극은, 재외동포청 지원으로 베를린 한인회, 베를린 간호요원회, Hanl Verlag 등 한인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받았다. 2026 년 파독 간호사 60주년 기념을 위한 준비공연으로 올려졌으며, 앞으로 연극의 열기는 식지 않고 계속될 예정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응원을 무조건 환영한다. (후원문의 : kd.litkorea@gmail.com)
기사제공: 한독문학공간
1439호 18면, 2025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