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귀띔: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28)

Dipl.-Ing. WONKYO INSTITUTE

미국 앤드류 존슨 부통령의 재임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이유는 링컨 대통령이 연극을 관람하던 도중에 피살되는 사고에 그가 후임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존슨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암살로 인해 대통령에 오른 첫 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대통령에 오른 3번째 사람이 되었다.

최초로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이 16대 에이브라함 링컨 (1865년 4월 14일 사망) 이었고 두 번째로 암살당한 대통령이 20대 제임스 가필드 (James Garfield, 1881년 3월 4일 사망)였는데 그는 역대 두 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으로 10개월 동안 재임했다,

세 번째로 암살당한 대통령은 25대 윌리엄 매킨리 (William McKinley, 1901년 9월 14일 사망) 이고 네 번째로 암살당한 대통령은 35대 존 F. 케네디 (John F.Kennedy, 1963년 11월 22일 사망) 였다.

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이 공화당과 연합하여 전국연합당을 창당했다. 그들의 창당목표는 남부의 주들이 연방 정부로부터 탈퇴하는 것을 막아 보려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부지역을 안고 가겠다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민주당 출신인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테네시주 출신인 앤드류 존슨은 민주당원이면서도 남부지역이 연방 정부로부터 탈퇴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던 인물이다.

링컨은 남부 출신 앤드류 존슨과 손을 잡음으로서 전쟁이 끝난 후 남부와 북부간의 화해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1860년 링컨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의 고향 테네시주도 합중국에서 탈퇴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존슨은 남부의 흑인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의적인 생각에서 합중국을 지지하고 있었다. 존슨은 테네시주를 순회하면서 합중국에서 탈퇴하지 말아 주기를 연설하며 다니다 보니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1861년 테네시주가 합중국에서 탈퇴할 때까지 순회연설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합중국에 반대하는 불충성적인 테네시주에서 충성적 상원의원으로서 연방국회가 있는 워싱턴 D.C. 에서 의원생활을 해나갔다.

이렇게 용기 있고 충성스러운 그가 링컨 대통령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재선에 나선 링컨 대통령은 런닝 메이트 (Running Mate)로 그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링컨이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불과 6일만에 포드(Ford)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에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바로 다음 날인 1865년 4월 15일 앤드류 존슨이 제 1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뜻에 따라 남부의 주들을 연방정부에 재통합시키고자 노력해 갔다. 이 과정에서 존슨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지 않으려는 남부출신 의원들과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예해방 문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결국에는 부통령 지명마저 하지 못했다.

그는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남부 주들이 합중국으로 복귀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관대한 조건들을 내걸었고 흑인 노예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법안들을 스스로 막아 주기도 했다.

농장이 많은 남부지방에서는 흑인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이었고 링컨 대통령이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선거권까지 줄 것이라고 발표하자 남부는 미국 연방정부에서 탈퇴하려 했던 것이며 종국에는 링컨대통령을 암살까지 했던 것이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 자신도 목장 소유자로서 흑인 노예들을 절대적 노동력으로 이용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합중국을 지지하고 있었다. 노예문제로 남북전쟁 중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는 남부를 위해서 싸웠음에도 거국적인 생각으로 합중국을 지지한 가장 뚝심 있는 남부인이었다. 링

컨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대통령이 된 존슨은 정치적 안정에 노력하면서 끝까지 남부지역을 합중국에 통합시키고자 심혈을 기울여 갔다.

1867년 4월 9일 윌리암 H. 수어드 국무장관은 소련의 알라스카를 사들이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민은 “쓸모없는 동토를 왜 사려고 하느냐” “자연 냉장고” 다 하면서 적극 반대하고 나섰지만 당시 돈 720 달라에 매매계약을 마쳤다.

소련은 알라스카를 쓸모없는 땅으로 여기고 있다가 곰과 물개 가죽이 돈이 된다는 소문으로 밀렵꾼들이 알라스카로 몰려들어 한 때는 번창하는가 싶었지만 그 공급이 확 줄어들게 되자 다시 쓸모없게 된 땅을 팔아 버리기로 했다. 알라스카는 원래 곰과 물개들의 세상이었다.

그 가죽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 수렵꾼들이 몰려들어 마구잡이로 사냥하다보니 그들의 생태계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동네에서 잡을 수 있었던 동물들을 점점 멀리 나가야만 포획할 수 있게 되자 알라스카는 다시 쓸모없는 동토의 땅으로 변한 것이다.

쓸모없다며 내버려졌던 동토의 땅에서 금과 은, 석탄이 발견되고 기름까지 발견되어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주가 될 줄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인들 그때 알고 있었을까 ?

노예가 해방되었다고 하더라도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버스를 탈 수 없었고, 백인 동네에서 살 수도 없었으며 학교마저 차별을 받으면서 다녀야 했다.

흑인이 미국에서 인간답게 살기 시작한 것은 “I have a dream” 을 외치며 흑인의 권리와 인권을 외치던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4월 이후부터 이다.

역사가들은 존슨의 대통령 임기를 미국 역사상 가장 허약한 정부 중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지만 전 국민이 반대하다시피한 알라스카를 뚝심으로 밀어붙여 사들인 치적도 포함이 된 건지 의심스럽다.

1440호 22면, 2025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