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귀띔: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17)

Dipl.-Ing. WONKYO INSTITUTE

씨씨(Sisi) 암살

오스트리아-항가리의 엘리자벳(Elisabeth) 황후 “씨씨(Sisi)”는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태어난 독일의 공작부인이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애밀리 유진(Elisabeth Amilie Eugenie) 이지만 상당한 미녀였던 그녀에게 “씨씨” 라는 애칭을 붙였다.

씨씨는 독일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요셉의 둘째 딸로서 여름에는 스테른베르크(Sternberg) 성에서 수영, 승마 등으로 지내고 겨울에는 뮌헨에서 보냈다. “씨씨”가족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ph)에게 <씨씨>의 언니인 헬레네(Helene)를 시집보내려고 했다.

처녀 때 씨씨는 리하르트 (Richard) 백작을 좋아했으나 그의 낮은 신분 때문에 엄마의 극성으로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고 리하르트는 얼마후 결핵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프란츠 요셉 1세와 언니 헬레네는 약혼식을 치렀다. 이때 프란츠 요셉 1세는 언니 헬레네를 따라서 같이 약혼식장에 참석했던 <씨씨> (SiSi) 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우 모집에 친구 따라 갔다가 정작 배우에 응모했던 당사자는 떨어지고 따라갔던 친구가 붙는 경우가 있다. 선보러 나갈 때도 예쁜 친구 데리고 가지 말라는 얘기는 헬레나와 씨씨처럼 신부가 바꿔치기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ph I)는 헬레네(Helene) 보다 <씨씨> 가 더 마음에 들었다면서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양가의 부모들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것과 같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씨씨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 결혼식은 1854년 4월 2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아우구스틴(St. Augustin) 성당에서 있었다.

정작 결혼을 하고 나자 보수적인 황실과 자유롭게 자란 씨씨와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오스트리아 귀족들이 황실 예법에 맞지 않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씨씨를 비웃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씨씨는 외톨이 생활을 하던 사이에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다.

엘리자벳 황후 <씨씨>는 선천적으로 매우 허약한 체질이었으면서도 첫째 딸을 순산하고 나서 둘째를 가졌는데 역시 딸이었다. 이후 남편 요셉의 외도를 알아 챈 씨씨는 화난김에 포쎈호펜(Possenhofen)으로 가버렸으나, 친정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남편에게로 다시 돌아 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씨씨는 마데이라(Madeira), 몰타(Molta), 트리에스테 (Trieste) 등지를 혼자서 여행하며 소일하였고 비엔나로 돌아와 잠시 남편 곁에 있었지만 곧 코르푸(Corfu) 섬에서 혼자 2년 동안을 지내기도 했다.

황후 <씨씨>는 거식증을 치료하기 위해 1898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바트 나우하임(Bad Nauheim) 요양원에 입원하기도 했었다.

스위스 제네바 호수 근처에서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치료를 계속해 보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마을 주민들은 씨씨가 투숙할 “보-리바쥬(Beau Rivage) 호텔” 앞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했다. 프랑스 사람인 뤼기 루케니(Luigi Lucheni)도 엘리자베스 황후 <씨씨>가 제네바의 보-리바쥬 호텔에 체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케니는 불란서 파리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사람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스위스에 입국해서부터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현 정치체제를 부정해 왔으며 왕정 자체를 경멸하면서 거지같은 생활로 ‘동가식 서가숙’ 하던 사람이었다.

루케니는 이탈리아왕 움베르토 (Umberto) 1세가 지난 5월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데모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장본인이라며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불란서에서 이탈리아로 갈 여행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무산되었다.

옴베르트왕 대신에 루케니의 암살계획에 걸려든 사람이 불란서의 오를레앙파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던 도를레앙 (d’Orleans) 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개인사정으로 제네바로 오려던 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러던 차에 엘리자베스 황후 <씨씨>가 제네바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엘리자벳 황후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 앞에 잠복해 있다가 황후가 밖으로 나오는 기회를 노려 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엘리자베스 황후가 불란서의 코(Caux) 휴양지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암살자와 부딪치게 되었다.

이때 암살범 루케니는 정확하게 엘리자벳 <씨씨> 의 심장을 찔렀고 치명적인 상처로 인해 코(Caux) 휴양지로 떠나려던 배위에서 씨씨는 6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루케니는 몇몇의 인원만 그녀의 주변에 있었기에 여행 온 그룹인줄 알았지 씨씨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지역 신문에 이미 씨씨황후가 제네바 보-리바쥬 호텔에 체류 중이라는 것이 보도된 뒤였으니 씨씨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암살도구 쇠꼬챙이는 그 길이와 뽀족함에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할 정도로 예리하며 누가 만들었고, 이 쇠꼬챙이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암살했는지에 관한 쪽지 설명과 함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루케니는 재판장에서 사형을 내려 줄 것을 원했지만 무기징역이 언도되었고 이에 상고하였지만 다시 무기징역을 받았다.

루케니는 1910년 10월 19일 허리띠로 만든 벨트를 이용해 형무소에서 목매어 자살했다.

1429호 22면, 2025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