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 원장의 건강상식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혹은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갑자기 천장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공포를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 컵을 탄 것처럼 세상이 요동치고, 속이 울렁거려 식은땀까지 흐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환자분이 이런 증상을 겪으면 “혹시 뇌졸중이나 뇌종양 같은 큰 병이 아닐까?” 겁을 먹고 응급실로 달려오시거나, 혹은 “내가 요즘 기력이 딸려 빈혈이 왔나 보다”라며 철분제나 보양식을 챙겨 드시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움직일 때만 나타나는 회전성 어지럼증의 90% 이상은 뇌나 혈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귀 깊숙한 곳에 있는 아주 작은 돌멩이가 제 자리를 이탈해서 생기는 질환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이 질환의 정식 명칭은 양성 돌발성 두위 현훈(Benigner paroxysmaler Lagerungsschwindel 혹은 BPLS)이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이석증’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귀 안쪽의 전정 기관에는 우리 몸이 수직으로 움직이는지 수평으로 움직이는지를 감지하는 미세한 칼슘 결정체, 즉 ‘이석’들이 젤리 같은 막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런데 노화, 스트레스, 외부 충격,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돌가루들이 떨어져 나와 평형을 담당하는 반고리관이라는 파이프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반고리관은 오직 림프액만 차 있어야 하는 공간인데, 여기에 돌멩이가 굴러다니게 되니 고개를 돌릴 때마다 돌이 림프액을 거세게 출렁이게 만들고, 이 자극이 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어 심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이석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특정 움직임을 통한 어지럼증 유발과 짧은 지속 시간입니다.
가만히 TV를 보거나 앉아 있을 때는 괜찮은데, 유독 잠자리에 눕거나, 자다가 옆으로 돌아누울 때, 혹은 높은 선반의 물건을 꺼내려고 고개를 젖힐 때 갑자기 세상이 돕니다. 그리고 그 어지럼증은 보통 1분 이내로 짧게 지나갑니다. 이는 굴러다니던 이석이 중력에 의해 어딘가에 멈추면 자극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환자분들은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가 없다”고 하실때가 있는데, 이때 환자의 눈을 보면 눈동자가 특정 방향으로 떨리는 ‘안진(Nystagmus)’ 반응이 나타납니다. 독일 병원에서는 바로 이 눈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딕스-홀파이크 검사(Dix-Hallpike-Manöver)를 시행하여, 이석이 세 개의 반고리관 중 어디에 들어갔는지를 정확하게 찾아냅니다.
CT나 MRI 같은 고가의 장비보다, 의사의 숙련된 손과 눈이 훨씬 더 정확한 진단 도구가 되는 질환입니다.
많은 분이 “어지러우니 약을 먹어야 낫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구토감이 너무 심하면 진정제를 쓰기도 하지만, 이석증의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치료법은 약물이 아닌 ‘이석 치환술(Befreiungsmanöver)’입니다. 엉뚱한 곳에 들어간 이석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치료방법입니다.
이는 환자의 머리 위치를 순차적으로 바꿔가며 중력을 이용해 돌을 빼내는 방법으로, 정확하게만 시행된다면 단 1~2회의 시술만으로도 90% 이상의 환자가 거짓말처럼 어지럼증에서 해방됩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약물 처방을 최소화하고 이 물리적 치료를 최우선으로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치료 후에도 며칠간은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나 멍한 어지럼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는 큰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예민해진 전정 신경이 안정을 되찾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과격한 머리 움직임만 피하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시면 자연스럽게 호전됩니다.
과거에는 치료 후 며칠간 앉아서 자라고 권하기도 했으나, 최신 독일 및 한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치료 직후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가벼운 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평형감각의 회복을 돕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석증 환자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재발’입니다. 이석증은 한 번 앓은 환자의 약 30~50%가 1년 내에 다시 경험할 정도로 재발률이 높습니다. 특히 최근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 D(Vitamin D) 부족이 이석증 재발의 강력한 위험 인자로 밝혀졌습니다.
독일은 한국보다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적어 비타민 D 결핍이 오기 쉬운 환경입니다. 따라서 이석증이 자주 재발하는 교민 분들이라면 혈액검사를 통해 비타민 D 수치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영양제 주사나 보충제를 통해 수치를 적극적으로 올려주는 것이 발현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골다공증이 있는 중년 여성에게서 이석증 발병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뼈가 약해지면 귓속의 돌도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갱년기 여성분들은 칼슘이 풍부한 우유, 치즈, 멸치 등을 섭취하고 적절한 근력 운동을 통해 뼈 건강을 챙기는 것이 귀 건강까지 지키는 일석이조의 방법입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것도 이석 이탈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머리를 세게 흔드는 운동이나 안마기 사용은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석증은 삶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공포스러운 질환입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고 나면 이보다 치료가 명쾌한 질환도 없습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팔다리에 마비가 오는 증상 없이, 오직 움직일 때만 어지럽다면 그것은 이석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이비인후과를 찾아 간단한 교정술을 받으신다면, 흔들리던 세상은 금세 다시 평온한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가 어지러움 없이 단단하고 중심 잡힌 하루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고자 김종휘원장의 건강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김종휘 원장은 베를린의 의학대학 Charité에서 의학과 졸업 및 의학박사 학위취득을 하였고, 독일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며, 현재는 프랑크푸르트 HNO Privatpraxis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www.hnopraxis-frankfurt.de
1442호 25면, 2026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