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나 (재독시인, 수필가)
대림절은 성탄절 전 네 번째 일요일에 시작하여 성탄 이브까지 성탄절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교회력 절기이다. 대림(Advent)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us, 오다)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를 번역한 말이다.
대림절 첫째 주일을 앞두고 시내에 있는 마인츠 대성당 광장에 나갔다. 마인츠 성탄 시장은 1788년부터 Nikolose Markt 라는 이름으로 열렸는데 오늘날의 시장은 1975년부터 열렸다고 한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어우러진 웅장한 마인츠 대성당 탑 아래 펼쳐진 성탄 시장은 그 중앙에 아기 그리스도로부터 성탄의 빛이 펼쳐지듯 어둠을 밝히는 전구의 불빛이 사방으로 뻗어있어서 매우 낭만적이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볼거리 먹거리 넘치는 때가 성탄시장이 열리는 때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마인츠 성탄 시장은 마인츠와 주변 시민들이 성탄절이면 몰려오는 만남과 축제의 장으로 해마다 발전해 왔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함께 저녁때 성탄 시장에 갔더니,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꽉 찼던 적도 있었다. 마인츠 성탄 시장의 상징이 된 11m 높이로 된 크리스마스 피라미드는 2003년에 세워졌다.
이 피라미드는 성탄 시장 입구에서 천천히 돌아가며 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해 주는 듯하였다. 층마다 목조로 만든 사람들이 서서 천천히 돌아가는데 마인츠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과 위인들을 조각한 것이다. 그중에는 물론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요한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도 볼 수 있다.
이 피라미드를 지나면서 세워진 수많은 동화 같은 상점들을 보면서 “Alle Jahre wieder…” 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독일 성탄 노래를 떠올렸다. 올해도 다시 성탄절이 돌아오는구나!
이 대광장에서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11월 27일부터 성탄 이브 하루 전인 12월 23일까지 화려하고 정겨운 성탄 시장이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열리고 주말에는 저녁 9시까지 문을 연다.
작은 상점 곳곳을 기웃거리며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할 물건을 고르기도 한다. 겨울철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두터운 양말, 털목도리와 장갑, 거실에 장식할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나 양초 등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동화처럼 줄지어 모여 있는 모습이 정겹고 낭만적이다. 어린 시절에 한국에서 겨울철이면 군밤 장수 아저씨에게서 사 먹던 군밤도 이곳에서 먹을 수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오렌지나 베리 종류를 넣어서 따끈하게 데운 과일주나 계피와 정향 등 향신료를 넣어 따끈하게 데운 향기로운 글뤼와인 (Glühwein)은 성탄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수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글뤼와인은 감기나 몸살 등에 좋은 치료제였다고 한다.
특히 추운 날씨에 따끈한 감자전(Kartoffelpuffer)을 먹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다. 여느 겨울처럼 성탄 시장 출석 신고식 치르듯이 나도 그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감자전을 사서 먹었다. 지난해까지는 세 개에 5유로였는데 올해 6유로로 가격이 올랐다. 수년 전에 3유로일 때부터 매년 한 번은 사 먹었는데 올해로 딱 두 배가 올랐다. 그동안 매년 물가가 오른데다가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름값과 에너지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리라.
마인츠 성탄 시장에서 볼거리는 사람 크기와 같은 크기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구유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유라고 한다. 요셉과 마리아가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말구유에 누이고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메시아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동방 박사 세 사람과 들판에서 양들을 돌보다가 천사의 성탄 메시지를 듣고 찾아온 목동들도 서 있다. 이 구유 앞에서 어린이들과 부모들, 혹은 친구들과 연인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 서 있곤 한다.
지난주는 미국처럼 추수감사절 금요일인 Black Friday였고 백화점을 비롯한 쇼핑몰에서는 30%, 50% 세일이라고 빨간 글씨로 크게 쇼윈도나 안내판에 써 붙여서 고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가까워져 오면 알뜰하고 검소한 독일 시민들이 모처럼 지갑을 열어 필요한 옷이나 신발, 성탄 선물을 살 수 있도록 일주일 동안 대대적인 세일 광고를 한다.
나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백화점을 찾았다. 바지 한 벌이 필요하였는데 30% 할인해 주어서 바지값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돈을 번듯한 기분이 든다. 이 맛에 소비자들은 그동안 굳게 닫아둔 지갑을 기꺼이 여는 것이리라. 남편도 지난주 퇴근길에 추워진 날씨에 입을 두툼한 잠바를 사고 집에 돌아오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기후 온난화 현상으로 독일도 여름에는 예전보다 훨씬 덥고 겨울에는 바람이 매서워지고 추워졌다.
화려한 성탄 분위기가 시작되는 성탄 시장을 둘러보면서 올 성탄절에도 마음과 몸이 추운 겨울을 보낼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3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가자 분쟁, 며칠 동안 폭우가 내린 태국과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의 홍수와 홍콩의 대화재로 가족을 잃고 보금자리를 잃은 많은 이재민, 미국의 반이민 정서와 정책으로 미국에 설 땅이 없어진 난민들과 불법 입국자들, AI의 등장으로 혹은 경기가 좋지 않아 해고되는 수많은 노동자, 회사 직원들 …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방 한 칸 구할 수 없어서 베들레헴의 한 작은 외양간의 말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성탄의 축복이 특별히 그들과 함께하시길 기도하는 대림절 첫 주말이다. 가족과 이웃의 평안과 행복, 특별히 전쟁 중에 희생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네 개의 빨간 양초에 매주 한 개씩 불을 붙이며 새 희망과 새 마음으로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1437호 18면, 2025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