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 60년, 고난의 시간을 넘어 새로운 출발로
본. 파독 한인간호사 60주년을 맞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보트롭 등 독일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6일 본 여성박물관(Frauenmuseum Bonn)에서 ‘본에서의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기념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은 오후 2시 30분부터 본 한인회(회장 차순녀 박사)와 국제여성재단(IFZ, 이사장 Elke Apelt)의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차순녀 회장은 행사에 앞서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지난 60년을 재조명하면서 파독간호사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이제는 연금 이후의 삶을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이번 기념포럼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차 회장은 파독간호사의 역할을 한국과 독일이라는 두 측면에서 설명했다.
한국을 위해서는 ‘산업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한국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억만리 독일로 떠난 간호사와 광부들은 3교대의 고된 노동을 견디며 한국으로 송금했고, 이는 대한민국 초기 경제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독일에서는 동양에서 온 ‘백의의 천사’로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환자들을 돌봤다. 이들의 사랑과 친절은 독일 사회에서 신뢰와 호평을 얻는 계기가 됐다.

차 회장은 “과거의 역사만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파독간호사들의 오늘날 삶을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는 현미경과 같은 자리가 되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파독간호사들을 향해 “이 자리에 함께하신 본 가족 여러분, 참 고맙습니다. 잘 견뎌주셔서 감사드리며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했다. 한국어와 독일어로 낭독된 시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축사에서는 본시(市) 가브리엘 쿤체 시장이 “독일 경제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든 본 한인회 회원들과 가정에 한가위만큼이나 풍성한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본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어울려 모범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을 격려했다.
주독대사관 본 분관의 변철환 분관장은 “60년 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대한민국과 독일 양국의 가교가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60년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의료인으로서 보여주신 도전정신과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오신 삶을 함께 되새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파독간호사들의 지난 60년 발자취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성박물관 설립자이자 관장인 마리안네 피첸(Marianne Pitzen) 씨도 축사에 나섰다.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오른 피첸 관장은 “현재 몸이 많이 좋지 않지만, 이곳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 저를 간호해주실 분들이 이렇게 많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축하공연에서는 장지우 선생이 25현 가야금을 연주했다. 한가위 연휴를 맞아 ‘도라지’를 연주한 장 선생은 섬세한 손놀림과 잔잔하면서도 청명한 가야금 소리로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본에서의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기념포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패널로는 1966년 본에 도착해 본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세 명의 파독간호사가 참여했다. 한인가정을 꾸린 김계숙 씨, 한독가정을 이룬 이(힘스테트) 양순 씨, 그리고 싱글 대표로 이종심 씨가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본 대학병원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풀어놓았다.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 익숙하지 않은 독일 음식인 ‘밀히라이스(Milchreis)’를 먹어야 했던 기억, 독일 남부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과 몸짓으로 소통했던 경험 등 60년 전의 희로애락이 참석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당시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순간들도 이제는 웃으며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이 됐다.
객석에서도 패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그때는 정말 고생이 많았지만, 지금은 연금 생활자로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어 기쁘다”며 지나온 세월을 회상했다.
패널들은 시간 관계상 많은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본 시(市)에 한 가지 요청을 전달했다.
현재 본에서 운영되고 있는 ʻ시니어클럽ʼ은 매주 화요일 언어•문화 프로그램과 목요일 음악•체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공간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에 시에서 보다 넓은 장소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본시 측은 미소와 함께 긍정적인 답변을 전했다.
차순녀 회장은 “오늘 듣지 못한 이야기는 시니어클럽에서 더 나누도록 하자”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어 “오늘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며 참석자들에게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를 기원했다.
행사 후에는 주최 측이 마련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전시된 오래된 사진들을 감상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사진 속 젊었던 자신의 모습과 당시의 동료들을 떠올리며 지나온 60년의 세월을 회상했고, 행사장은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한편 여성박물관 입구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녀상이 세워져 있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오애순 기자
1477호 8면, 2026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