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42)

제국의 도시, 슈파이어(Speyer) 마지막회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슈파이어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슈파이어 대성당과 팔츠 왕위계승전쟁(9년 전쟁이라고도 함 1688-1697) 이다.

슈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바로 살리어가문(Salier Familie)의 힘이다.

신성로마 황제의 초대 가문인 오토(Otto)가의 하인리히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자, 보름스(Worms)와 슈파이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살리어(Salier) 가문에서 신성로마황제가 배출되게 된다. 1024년 즉위한 콘라드 2세이다. 이후 슈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수도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제국회의가 60차례 슈파이어에서 열렸고(Reichstage zu Speyer), 신-구교의 갈등이 첨예했던 1500년대에만도 5차례(1526, 1529, 1542, 1544, 1570)가 열릴 정도로 슈파이어는 중세시대 유럽의 중심도시로서 군림하였다.

그러나 슈파이어 500여년의 영화는 팔츠왕위계승전쟁으로 한 순간 잿더미로 변하고 만다.

태양의 왕이라 알려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팔츠선제후 계승문제에 개입하며, 당시 유럽의 대부분의 제후국들과 전쟁을 치르는데, “9년 전쟁”, 또는 “팔츠 왕위계승전쟁” 이라 불리는 전쟁이다.

당시 루이 14세는 슈파이어를 정복하고,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한다. 이 때 슈파이어 대성당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루이 14세는 이에 더해 모든 슈파이어 시민들을 강제로 퇴거시켜 이들을 프랑스로 압송한다(1689년). 그리고 9년 후에야 비로소 슈파이어 시민들은 고향에 돌아올 수가 있었고, 이들은 궁핍과 눈물 속에서 폐허가 되어버린 슈파이어 시를 재건한다. 슈파이어의 자부심인 대성당은 1778년이 돼서야 완전히 복구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역사적인 두 키워드, 슈파이어 대성당과, 전쟁이후 바로크풍으로 재건된 막시밀리안 거리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막시밀리안 거리의 주변을 살펴보며 슈파이어 역사산책을 마치도록 한다.

막시밀리안 거리 좌우의 골목으로 들어가보자

슈파이어 대성당과 옛 성문(Altpörtel) 사이의 막시밀리안 거리의 주 도로뿐만 아니라, 이 거리의 좌,우 양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슈파이어의 소박한 모습과,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존 하며 발전한 교회, 그리고 유대인들의 역사적 사적을 살펴볼 수가 있다.

우리는 슈라이어 대성당에서 옛 성문으로 가는 방향으로 먼저 오른 편 골목으로 들어가 슈파어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본다. 이후 옛 성문을 지난 믹시밀리안 거리의 왼편 뒤편의 유적들을 찾아가 본다.

피쉬 마르크트(Fischmarkt) 광장과 홀츠 마르크트(Holzmarkt)

다른 도시에 비해 구 시가지에 광장이 많지 않은 슈파이어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광장을 꼽으라면 단연 피쉬 마르크트 광장(Fischmarkt)이 꼽힌다. 그 이름대로 중세에 생선을 사고팔던 시장이 열리던 장소였다.

일찍이 1290년에 “forum piscium”으로 언급된 수산 시장은 슈파이어 개천(Speyerbach)을 따라 뻗어 있었다. 중세 후기에는 수산시장 뿐만 아니라 목재 시장이 이곳에 있었기에, 넓은 광장에는 늘 목재가 샇여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광장에 더 이상 수산시장은 없지만 옛 주택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광장의 분위기는 참 아늑하다. 특히 물고기 모양의 분수가 유명하다.

또한 인근에는 슈파이어 개천을 건너는 해다리(Sonnenbrücke)가 있는데, 다리 위에는 슈파이어 수호 성인인 니콜라우스 성인(HL. Nikolaus)의 동상이 서있다.

삼위일체 교회(Dreifaltigkeitskirche)

1717년 지어진 삼위일체 교회(Dreifaltigkeitskirche)는 규모는 작지만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한 교회로 꼽힌다.

삼위일체 교회는 프랑크푸르트의 카타리나 교회(st. katharinenkirche frankfurt)를 모태로 하고 있다. 팔츠왕위전쟁 때 슈파이어에서 쫓겨난 개신교도들은 프랑크푸르트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들은 카타리나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전쟁이 끝나고 슈파이어로 돌아와온 개신교도들은 카타리나 교회를 본 따 삼위일체 교회를 건축했다. 이 삼위일체 교회는 전쟁후 제일 먼저 건축이 시작된 공공건물이다.

한편 기념 교회(Gedächtniskirche der Protestation)를 세울 때 원래 삼위일체 교회를 크게 확장하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식적으로 분리된 1529년의 제국의회가 열린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어, 기념 교회를 그곳에 신축하게 되어, 삼위일체 교회의 본모습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삼위일체 교회는 내부의 화려한 제단, 그리고 천장 벽화가 특히 유명하다.

옛 우체국(Alte Post)

옛 성문(Altpörtel) 앞의 광장은 포스트 광장(Postplatz), 즉 “우체국 광장”이다. 버스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인데, 광장 앞 건물이 옛 우체국(Alte Post)이기 때문에 우체국 광장으로 불리는 것이다.

옛 우체국 건물은 1901년에 지어졌으며, 흡사 궁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규모의 바로크 양식이다. 2002년까지 우체국으로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우체국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옛 우체국”으로 불린다. 2012년부터는 포스트 갈러리(Postgalerie)라는 이름이 정식 명칭으로 현대식 백화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요제프 교회(St.Josephskirche)

슈파이어에서 대성당(Speyerer Dom)이 워낙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교회가 두 곳 있다. 하나는 가톨릭교회, 하나는 개신교 교회. 그런데 마침 두 교회가 바로 이웃하고 있고, 서로 다른 양식으로 다른 멋을 뽐내고 있다.

그 중 가톨릭 교회는 성 요제프 교회(St.Josephskirche)이다. 슈파이어에서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가톨릭 교회로서 정면의 두 개의 탑은 90m, 후면의 작은 탑도 40m에 달한다.

비교적 최근인 1914년에 완공되었고, 바로크와 고딕,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까지도 섞어 익숙한듯하면서도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엄숙한 내부는 중앙의 제단 조각이 유명하다.

기념 교회(Gedächtniskirche)

19세기 말 세계의 개신교도인들은 개신교가 태동한 현장 즉 1529년 제국의회가 열린 Speyer에 개신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1529년 카톨릭이 중심이 된 슈파이어 의회에서 개신교에 불리한 정책이 의결되자 이에 개신교 세력이 항거하였고, 그 저항이 오늘날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기원이 되었다. 기념 교회는 개신교에서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고자 만든 것이다.

개신교 태동 375년을 맞는 1904년 신고딕 양식으로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오스트리아 빈(Wien)에 있는 포티프 교회(Votivkirche)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포티프 교회는 두 개의 탑이 있으니 탑이 하나인 기념 교회와 전체적인 모습은 큰 차이가 있겠으나, 그 탑의 모습이나 교회의 전체적인 외관은 포티프 교회와 유사성이 많다.

내부 역시 신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쾰른 대성당(Kölner Dom)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온 창문을 뒤덮고 있다.

중앙 제단 뒤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특히 화려하고, 양편 창문 역시 회화를 보는듯한 정교함이 인상적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중에는 독일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와 그의 왕비가 기부한 것도 있다고 한다.

입구 앞, 그러니까 첨탑의 아래에 해당하는 곳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이 있어서 개신교의 기념 교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정식 명칭은 저항 기념 교회(Gedächtniskirche der Protestation)이다.

유덴호프(Judenhof)

유덴호프(Judenhof)는 슈파이어에서 중세 유대인 구역의 중앙 지구였으며 여성 학교, 회당 안뜰 및 유대인 고등교육기관인 yeshiva가 있었던 지역이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목욕 의식이 치러진 mikveh가 유명하다.

1104년에 지어진 회당 바로 옆에는 1250년에 지어진 여성들을 위한 교회(Synagoge)가 있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는 110년부터 1120년 사이 지어진 유대교 의식의 하나인 목욕의식이 거행된 Mikwe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장식적인 요소에 있어서 당시의 기독교 건물과 유사하다는 점으로, 이는 기독교 장인들과 유대교 공동체의 긴밀한 협력을 시사하고 있다.

Judenhof는 2021년부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물에는 유덴호프(Judenhof)라고 적혀있고, 슈피라 박물관(Museum SchPIRA)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팔츠 역사 박물관(Historisches Museum der Pfalz)

팔츠 역사 박물관은 슈파이어가 위치한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지역의 역사를 총괄하는 박물관이다. 슈파이어 대성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성, 도는 궁전과도 같은 그 독특한 외관으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박물관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이 지역의 역사와 풍습, 출토 유물 등 100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풍부한 컬렉션, 상설 전시 및 주제별로 다양한 특별 전시를 통해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 박물관 중 하나이다. 연간 20만 명이 넘는 방문객(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에는 100,000명)이 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황금모자(Der Goldene Hut)인데, 1835년 슈파이어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 출토된 유물로 그 연대가 기원전 13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였던 당시 종교의식의 장식으로 쓰여진 것으로 파악된다.

1299호 20면, 2023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