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골목길

류현옥
류현옥

사립문을 나서면 자연석 돌다리가 있었고 그 아래로 고랑물이 흐르고 있었다. 뒷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와 졸 졸 노래하듯 돌다리 아래를 지나 먼 곳으로 흘러갔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초가집과 연결된 세상이다. 아버지가 선산에서 보고 온 자연석을 일꾼을 데리고 가서 지게에 지어 운반해온 돌다리였다. 돌다리는 세상과 우리 집의 경계선이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을 따라 골목길옆으로 흐르는 맑은 도랑물은 사철 내내 마르지 않았고 밀챙이들이 헤엄을 치며 살고 있었다.

집 뒤의 쌈 상치가 자라는 텃밭으로 가려면 돌다리를 넘어 탱자 나무숲이 어우러진 담벽을 돌아가야 했다. 고랑 물은 둥천 길을 흐르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먼 바다로 흘러갔다. 돌담이 기역자로 꺾이면서 길이 갈라지는 곳에 성류나무 두 그루기 서있었다.

나는 해마다 유난히도 예쁘게 피는 석류꽃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돌담 뒤에 이웃집 외양간이 있어 거름물이 석류나무 뿌리에 스며들어 꽃이 예쁘다고 했다.

성류가 열러 석류모습으로 커가기 시작하면 지나갈 때 마다 바라보며 얼마나 더 컸는지 지켜보았다.

여름내 자라던 성류는 가을이 되면 더 클 수가 없어 터지고 구속에서 익은 석류알들이 이처럼 내다보였다. 어머니와 나들이갔다 돌아오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서서 처다 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시어서 먹지 못하는 과실이다. 어서가자 ” 하셨다. 나는 단 한 번도 그잘 익은 석류 알을 먹어보지 못하고 그 골목길을 떠나 왔다 .

내가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던 때다.

어머니가 유대인인 동료 타베아는 호스피스 파티가 있을 때마다 석류 디저트를 만들어왔다.

타베아는 그냥 먹을 수 없을 만큼 신 것과 순하고 단맛이 곁든 두 종류의 석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두 종류의 성류를 섞어 큰 쟁반에 예쁘게 담고 민츠 잎으로 데커레이션을 하고 중간 중간에 참외를 섞어 색깔을 내었다

역시 두 가지 드레싱을 준비하여 식성에 맞게 먹게 했다. 요구르트에 꿀을 섞은 것과 커피쟈네를 석류 위에 올려 먹게 하는 방법이다.

그 이후부터 나도 석류를 보면 사와서 꿀과 요구르트를 섞어 먹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석류나무가 선 돌담길과 우리 집을 생각했다.

내가 유난히도 석류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챈 타베아가 어느 날 나의 고향 한국에도 석류나무가 자라는지 물었다.

나는 타베아 에게 석류나무가 선 돌담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해마다 익어터진 석류를 보면서 먹어 본적이 없이 그곳을 떠났다고 하자 그곳에 다시 갈수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나의 고향집은 그 동네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게선 신도시가 되었다고 말했다.

타베아는 석류나무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그녀어머니가 만든 석류 디저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며칠후 타베아가 <석류> (Der Granatapfel )라는 제목의 시화집을 나에게 선물했다

1906년에 태어나 1970년 이태리 Postitano에서 생을 마친 독일 문학자 Stafan Andres 씨가 유대인 부인과의 이혼을 거절하고 나치독일을 떠나 이태리로 망명 가 살면서 실향의 슬픔을 석류 그림과 시로 애도한 책이다.

시 내용 중에는 새가 석류 씨를 뱃속에다 넣고, 입에 물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씨를 뿌려 새 석류나무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서 평화의 세상이 올 것을 소망을 노래한 시에 석류를 그려넣은 시화집이다

작가는 내가 고향을 떠나오던 해 세상을 떠났건만 그가 남긴 시화집이 내 기억속의 돌다리가 되었다.

그의 시는 읽다말고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는 나를 끝없이 평화스러웠던 내 유년기의 석류가 익어가는 돌담골목길로 데리고 갔다. 나의 손을 잡아 끌고 그때의 시골소녀의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끝)

1299호 14면, 2023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