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와 연대, 평화의 다짐… 광주의 정신, 유럽을 잇다

제46주년 재유럽 오월 민중제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베를린 소재 Jugendherberge Berlin-International에서 열렸다. 독일 각지는 물론 한국과 덴마크 등지에서 모인 15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5월 민중제의 시작은 언제나 처럼 각지에서 모여드는 참여자들간의 반가운 만남의 시간과 더불어 영화제로 전야제의 문을 연다. 올 해는 5.18의 마지막 수배자 고 윤한봉 선생의 치열한 삶과 그 발자취를 기록한 다큐영화 “진달래 꽃을 좋아합니다.”로 개막했다.

본격적인 오월제 행사가 열린 16일은 1부 추모제, 2부 강연과 분과토론, 3부 문화공연과 친교의 시간으로 알차게 채워졌다.

개회사와 여러 개인 및 연대 단체들이 보내온 뜨거운 응원과 연대의 인사는, 오월의 광주가 오늘 우리를 어떻게 이어주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독일 대사관의 박영서 총영사님은 기념사에서 정의의 승리, 대동 정신, 용서와 통합을 오월 정신의 핵심 가치로 꼽으며, 그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것을 강조했다. 또한 베를린에서 돌아보는 오월의 의미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진 추모제에서는 묵념과 함께 참석자 전원이 헌화와 분향에 참여하며 마음을 모았다. 참가자들은 광주와 4.16 세월호,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그리고 유럽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전에 헌화와 분향을 올리며 추모의 뜻을 나누었다. 또한 그 뜻과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함께 다지는 시간도 가졌다. 이렇게 1부 추모제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2부 강연과 분과토론은 어느 해보다도 알차고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광주항쟁 기간 동안 광주 시민들과 함께했던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돌린저(임대운) 박사의 생생한 증언은 참석자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고, 참가자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깊은 몰입과 집중 속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한국의 우익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하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온 이병권 작가의 강연 「미국 극우와 한국 극우의 연원과 구조」는 깊은 통찰과 명쾌한 설명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 그의 강연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병폐와 극우 세력의 폐해, 그리고 그 역사적·사회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아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권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 그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임민식 박사는 「국제정치 상황과 한반도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깊은 열망이 담긴 이번 강연은, 격변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패권국가의 몰락이 현실화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강대국 간 헤게모니 경쟁, 패권국가들의 침탈 전쟁 양상을 짚어주었다.

또한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가 직면한 전쟁 위험을 경고하는 한편,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에 대해서도 함께 성찰하게 했다. 이번 강연은 국제정세와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한층 더 넓혀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처럼 뜻 깊었던 세 강연에서 가장 크게 아쉬웠던 점은 단연 ‘시간’이었다. 강연자들과 참가자들의 열정과 문제의식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참가자들은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분과토론 형식으로 논의를 이어갔고, 이를 통해 강연의 내용과 문제의식을 더욱 깊이 있게 확장할 수 있었다. 각 분과에서는 활발하고 열정적인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분과별 논의 내용을 정리해 전체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덕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다른 분과의 토론 내용까지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이러한 분과토론은 해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이다. 무엇보다 참가자 모두가 능동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변함없이 가장 큰 인기를 끈 순서는 역시 문화공연이었다. 베를린에서 나고 자란 우리 3세들의 쟁강춤과 기원무, 그리고 간호사로 독일에 오신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무악’의 살풀이춤이 선사한 감동은, 그 자리에 직접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깊고 뜨거운 것이었다. 관객들은 기원무의 느리고 우아한 춤사위에 흠뻑 매료되었고, 이어진 쟁강춤의 빠른 호흡과 힘찬 에너지, 발랄함과 탄력 넘치는 움직임에는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또한 어르신들의 살풀이춤에서는 끊길 듯 이어지는 섬세한 흐름과 고요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담긴 깊은 내면의 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관객들은 그 절제된 아름다움과 삶의 무게가 배어 있는 몸짓에 깊이 빠져들었다.

무대는 어느새 실내에서 마당으로 옮겨졌고, 우리 사물놀이팀의 신명 나는 판굿이 모두의 흥을 한껏 북돋웠다. 그렇게 피어오른 공동의 흥과 어울림 속에서, 광주의 정신인 ‘대동세상’은 베를린 한가운데 자리한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 마당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는 현실이 되었다.

광주의 얼과 정신을 가슴에 품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마지막 날 오전에는, 오랫동안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연구하고 계승·전파하는 일에 힘써온 청년 음악인 정은비의 발제 <청년이 바라보는 윤이상 선생이 남긴 과제>가 진행되었다.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적 업적, 그리고 동백림사건 재심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의 진행 상황에 대한 발표 후, 질의 응답이 많은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오월민중제를 통해 함께 나눈 고민과 결심을 성명서로 채택하며, 광주의 정신이 참가자들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를 향해 힘 있게 울려 퍼지기를 다짐했다.

기사 제공: 재유럽 5.18민주항쟁협의회

1461호 12면, 2026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