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4)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김 진호(프란치스코)

글을 써보려고 준비하려는데 왠지 오늘 따라 마음이 우울해지며 중요한 무엇인가를 잊었을 때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답답해온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나이 탓일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마음은 더 우울하고 머리가 더 복잡해온다. 무엇인가 해결해야할 문재가 풀리지 않을 때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온다.

왜 그럴까 하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생각하게 한다. 역시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외로운 마음을 채우지 못한 체 허전함 속에서 무엇인가에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다.

옛말에“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는데…” 하고 자신과 속삭여보지만 아쉽게도 고향에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가 없어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고 조용히 침묵 속에서 두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얼마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살아온 지나간 추억들이 조용히 나를 부르기에 하나씩 기억해보려고 한다.

순간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52년 전 김포공항에서 가족들과의 이별하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도려내고 뼈가 아려오는 고통스러운 아픔이 나를 울린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독일에 가면 돈을 벌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모든 고통 속에서도 무난히 참고 견딜 수가 있었다.

그 순간들을 돌이켜 기억해보면 젊은 나이에 파독광부로 독일에 올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했다. 얼마나 가난했냐 하면 먹을 것이 없어 하루에도 굶어죽는 이들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우리는 가난했다. 그러니까 광부들이 파독되던 1963년도 우리나라 국민소독 76불, 평균수명 52.6세, 쌀 한 가마에 3000환, 지방공무원 월급 4000환, 국민 78% 직업이 농업이었고 국민 80%의 가정에서는 전기조차도 사용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전화, 냉장고, 세탁기 등 전자제품은 국민 1%가 사용했으며 전국에 자동차 3만대 세계에서 인도 다음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였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에 젊은이들은 독일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파독광부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출세라도 하는 줄 알고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광부생활은 기대했던 것처럼 자랑스러운 삶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함께 힘겨운 막노동을 견디어야만 했다.

어렵게 시작한 파독광부의 삶은 날이 갈수록 더 힘들고 더 불편하고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에 견디기가 힘들어 자신을 원망 저주하며 크게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 자신과의 고통스러운 삶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몸에 힘겨운 막 노동이었다. 거기에다가 말까지 통하지 않아 여러모로 불행함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열심히 살다가보니 생활 모두가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비록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식생활이 다르다 할지라도 결국 독일생활도 함께 어울려 살다가보니 마음이 통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배우고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내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기억해보면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추억들만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생각해보면 즐겁고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들도 많았다.

다만 사람들은 힘들었던 추억들을 마음속에서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실망하며 저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힘들고 고통스럽던 추억들 보다 즐겁고 보람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독일을 떠나지 못하고 독일이 좋아서 독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52년 전 독일 광부로 살게 되었을 때 부모님을 또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원망 저주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야했다. 그래도 어쩌지 못하고 독일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무렵 독일에서 우리에게 수령되는 월급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10배가 많았고 또 우리나라 장관급월급과 같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어렵게 시작한 독일에서 반 백년 동안의 삶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맨 먼저 감사하고 싶은 것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우리에게도 독일 사람들처럼 똑 같이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개인이 필요한 날짜에 따라

연 6주간의 자유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과 주말에는 휴일이라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거기에다가 사고로 일을 할 수 없을 때와 개인이 몸이 아파 병가로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도 회사에서 100% 월급을 지불받는다고 했다. 아울러 주말이나 야간근무 또는 연장근무시간에는 50%~100% 수당을 받는다는 것과 주 40시간 근무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각종보험이 보장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 파견 된 광부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들을 듣고 배우면서 독일에서의 삶과 우리나라에서의 삶을 비교하고 계산하면서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면서 독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금의환향의 꿈을 설계하고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다.

이렇게 한 달이 두 달이 지나면서 독일생활에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만족하게 받고 있는 월급에다가 유럽에 유명관광지 이탈리아 로마, 불란서 파리에도 아니 더 많은 관광지들을 방문할 때마다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파독광부로 오지 못하고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 모두가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럽에 많은 나라들과 아프리카나, 캐나다,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 같은 많은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30년간의 골프운동도 생각해 본다. 역시 내생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지금도 독일 함부르크에서 잘 살고 있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반백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다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도 많았지만 처음 독일에서의 삶을 시작하던 순간들을 기억해보니 내 욕심대로 만족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5명의 손자손녀와 함께 12명의 대가족을 이루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아름다운 함부르크에서 잘살고 있다는 것에 크게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