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6월은 싱그럽다.
오늘 6월 4일, 폴란드는 카톨릭 축제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Boże Ciało)’을 맞이한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카톨릭 축일로, 목요일로 지정되기 때문에 폴란드인들은 금요일에 연차를 써서 4일짜리 긴 황금연휴(Długi weekend)를 즐기곤 한다. 반평생 가까운 29년 동안 폴란드에서 살아온 나에게 오늘 같은 날은 폴란드라는 나라의 영혼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맺어온 깊은 인연의 실타래를 돌아보게 만든다.
국가 위기마다 방패가 되어준 폴란드 카톨릭의 역사
폴란드 역사에서 카톨릭은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신적 지주이자 방패 역할을 해왔다. 1795년부터 1918년까지 123년간 러시아(동방정교), 프로이센(개신교), 오스트리아에 의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도, 폴란드인들은 카톨릭 신앙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 아래 공산화되었을 때 역시 성당은 반공산주의 운동의 중심지였다. 특히 1978년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주었으며, 이는 훗날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연대노조(Solidarność)’ 운동의 위대한 기폭제가 되었다.
외세의 압제와 민주화, 데칼코마니 같은 두 나라의 궤적
폴란드와 한국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역사의 궤적이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았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숱한 침략을 받았고, 영토 분할과 식민지라는 피눈물 나는 아픔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두 나라는 독재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 끝내 ‘민주화’를 이뤄냈다.
한국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이 있었다면, 폴란드에는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시작된 ‘연대노조’ 운동이 있었다. 무력과 총칼 앞에 비폭력 저항으로 맞섰던 두 나라 국민들의 투지, 그리고 마침내 평화적인 체제 전환을 이뤄내며 아시아와 중동부 유럽의 민주화 기적을 쏘아 올린 모습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이 민주화 여정 속에서 흥미로운 인연도 피어났다. 연대노조를 이끌며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영웅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대한민국 현 이재명 대통령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및 경기도지사 시절, 한국을 찾은 바웬사 전 대통령과 만나 노동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논하며 뜨거운 연대를 나눈 일화는, 우리 교민 사회와 현지 정계에서도 ‘민주주의라는 공통분모’가 맺어준 뜻깊은 만남으로 회자되곤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하느님의 마라톤 선수’, 세계를 품은 글로벌 교황
폴란드 민주화의 심장에 바웬사가 있었다면, 그 뒤에서 거대한 정신적 방패가 되어준 분은 바로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본명 카롤 보이티와)이다.
그는 1523년 하드리아노 6세 이후 1978년에 455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었다. 그는 바티칸에만 머물던 기존 교황의 틀을 완전히 깨고, 재임 기간 동안 지구를 약 30바퀴 도는 거리에 해당하는 129개국을 방문해 ‘하느님의 마라톤 선수’라 불렸다.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카톨릭을 전 세계적인 종교로 체감하게 만들었다.
또한 카톨릭 역사상 최초로 유대교 회당(시나고그)과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공식 방문하여 종교 간 화해에 앞장섰다. 특히 2000년에는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대인 박해 등 카톨릭 교회가 과거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전 세계 앞에 고개 숙여 사죄했다. 이는 ‘교황 무오설'(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있어 오류가 없다)이라는 교리적 정서가 남아있던 카톨릭계에서 엄청난 파격이었다.
1979년의 조국 폴란드 방문, 냉전 종식의 열쇠가 되다
교황 즉위 이듬해인 1979년, 그는 공산정부의 우려를 뚫고 조국 폴란드를 방문했다. 당시 바르샤바 광장에 모인 수백만 명의 인파 앞에서 그는 역사적인 설교를 남겼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Nie lękajcie się!)
성령이 임하시어 이 땅, 폴란드를 새롭게 바꾸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방문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두 가지 엄청난 심리적 변화를 가져왔다. 감시 아래 서로 눈치만 보던 이들이 광장에 모인 수백만 명의 서로를 확인하며 “우리가 저 권력자들보다 훨씬 다수구나”라는 연대감과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정권이 주는 공포심보다 신앙과 인간 존엄성이 더 우위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의 문을 열고 세계와 소통한 ‘행동하는 교황’이었으며,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조국 국민들에게 자유를 쟁취할 용기를 불어넣어 냉전을 종식시킨 열쇠였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한 교황의 구원
그가 조국 폴란드의 공산주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엄청난 구체적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격동의 시기였던 1984년과 1989년, 교황은 역대 최초로 한국을 두 번이나 찾았다. 1984년 김포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에 입을 맞춘 뒤, 유창한 한국어로 첫인사를 건넸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순교자의 땅, 자비의 땅, 한국 국민 여러분, 예수가 전한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1984년 방한 당시, 교황은 주위의 만류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이 일어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은 광주를 직접 방문했다.사직공원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희생자 유가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위로했다. 5·18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광주 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유가족을 위로했던 교황의 행보는, 당시 고립되어 있던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세계가 당신들과 함께한다”는 든든한 도덕적 지지대가 되었다.
또한 바티칸의 철칙을 깨고 한국 현지에서 거행한 103위 순교자 시성식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카톨릭을 단숨에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현지 국가에서 시성식을 직접 거행한 것은 카톨릭 역사상 최초였다. 이로 인해 한국은 단숨에 전 세계에서 4번째로 성인을 많이 배출한 국가가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은 ‘자신과 닮은 조국 폴란드’ 같은 곳이었다.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독재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교황은 큰 유대감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와 위로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터널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촛불을 밝혀준 고마운 등불이었다.
2027년 서울, 교황이 심은 ‘세계 청소년 대회’의 씨앗이 피어나다
이 깊은 카톨릭의 교류와 인연은 이제 미래로 이어진다.
오는 2027년, 전 세계 카톨릭 청년들의 대축제인 ‘세계 청소년 대회(WYD·World Youth Day)’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마닐라 대회 이후 무려 32년 만에 열리는 메가 이벤트다.
특히 이 세계 청소년 대회는 다름 아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5년에 처음 만든 대회이다. 폴란드 출신 교황이 심은 씨앗이,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또 다른 조국 같은 나라인 한국에서 거대한 꽃을 피우게 되는 셈이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서울 방문을 예정하고 있어, 분단된 한반도 땅에 다시 한번 평화와 화해의 강력한 메시지가 울려 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곳 폴란드의 젊은 카톨릭 신자들도 벌써부터 “내년에 서울에 간다”며 들떠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앞으로 펼쳐질 두 나라 젊은이들의 활발한 교류가 기대되어 가슴이 벅차오른다.
휴전선을 넘어 북녘땅까지 전해질 연대의 온기
폴란드에서 살아온 29년은 나에게 ‘연대(Solidarność)’의 가치를 몸소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종교와 언어는 달라도, 자유를 향한 갈망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 아래 두 나라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영혼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성체 대축일의 향기로운 꽃길을 걸으며 기원해 본다. 폴란드의 거리를 채운 이 평화와 사랑의 온기가 서울로, 그리고 휴전선 넘어 북녘땅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란다. 두 나라의 아름다운 동행이 앞으로도 대를 이어 지속되기를 민주평통 협의회장으로서 마음 깊이 소망한다.
Niech żyje Polska! (폴란드는 죽지 않는다)
대한민국 만세
민주평통 중동부유럽협의회장 남종석